K-POP 아이돌의 뉴스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한창 아이돌에 빠져 있는 딸 덕분에 궁금하지 않은 K pop 가수들의 근황을 알게 된다. 이들의 뉴스는 저녁 뉴스엔 잘 나오지 않는다. 아이돌 근황을 전하는 음악 전문 채널과 유튜브 채널에서 주로 다룬다. 이들의 뉴스를 볼 때마다 해외 토픽보다 더 신기하게 보곤 한다. 이름도 낯선 아이돌 그룹이 멕시코와 페루에서 최고 인기다. 국내에선 보이지 않아서 뭐하나 궁금했던 아이돌 멤버가 다른 나라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찍고 해외 유명가수의 음반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런 한국 아이돌 그룹의 근황을 딸의 어깨너머로 보다보면 이게 한국 연예 뉴스인지 해외 연예 뉴스인지 헛갈리곤 한다.

블랙핑크 @코첼라(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도시. Coachella) 공연. (사진=블랙핑크 공식 인스타그램)
블랙핑크 @코첼라(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도시. Coachella) 공연. (사진=블랙핑크 공식 인스타그램)

딸은 이런 뉴스를 당연시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이 해외 투어 중일 때는 지금 어느 나라에 있다고 말해주곤 한다. 어제는 일본에 있다가 오늘은 미국에 있고 내일은 남미로 간다. 그러다 다음 주엔 호주에서 공연을 한다. 올 봄, 블랙핑크는 미국의 최대 음악 축제인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서 헤드 라이너로 공연을 했다. 딸이 헤드 라이너가 뭐냐고 물었다. 그 의미를 설명하면서, 이 축제의 포스터와 브로슈어의 1면을 한국 아이돌 팀이 장식했다는 사실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딸과 함께 블랙 핑크의 공연을 잠깐 보니 규모와 연출이 내 상식 밖이었다. 그런데 딸은 이 또한 당연히 여겼다. 블랙 핑크라면 이런 축제에서, 이 정도 규모로, 이 정도 시간을 할애 받아 공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같은 나라에 살고 있지만 딸과 나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난 배철수의 음악 캠프를 통해 내한한 팝 가수들의 육성을 들으며 설레곤 했었다. 그전엔 김광한씨가 진행하는 <쇼비디오자키>에서 보여주는 뮤직비디오를 보기 위해 TV 앞자리를 사수했었다. 그 아저씨가 소개해주지 않으면 어디서도 그런 뮤직비디오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엔 다른 나라의 청소년들이 우리나라 가수의 소식을 들으며 설렌다. 신곡이 출시되자마자 유튜브로 뮤직비디오를 보고 곡의 콘셉트와 안무, 무대 의상을 꼼꼼히 뜯어본다. 하루 이틀 지나면 안무를 가르쳐주는 영상이 뜨고, 뮤직비디오의 의미를 설명해주는 영상이 뜬다. 노래의 가사와 영상에 나온 의상과 효과, 사물의 의미를 연결시켜 소위 가수의 세계관과 이번 앨범의 콘셉트를 아주 진지하게 설명한다. 딸은 안무 영상을 보면서 춤을 익히고 후자의 영상은 마치 추리 소설 읽듯이 집중해서 그 설명을 듣고 학습한다. 딸만 이러는 게 아니다. 전 세계의 K POP 팬들이 같은 행동을 한다.

세상이 바뀌긴 바뀌었다.


바뀐 세상이다. 처제가 사는 텍사스엔 한국의 반도체 공장이 세워져서 그야말로 지역 전체가 호황이라고 한다. 한국의 유명 빵집이 진출한지는 오래됐고 비비고와 같은 한국의 식음료 브랜드들도, 처제의 표현을 빌리면, 없어서 못 판다고 한다. 물론 그전부터 세상 참 변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아 왔다. 우리나라 기업과 공장을 유치하려고 소위 선진국인 미국은 물론이고 여러 나라가 경쟁한다는 뉴스를 볼 때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미국 내의 여러 주에서도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는 뉴스를 볼 때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최근엔 자국의 전기자동차 사업을 살리고 중국을 견제하겠다고 미국 대통령이 한국 반도체 기업의 CEO들을 직접 불러 대화를 하고 협상을 하는 걸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진짜 세상이 변했구나.

분명 지리적 공간은 같다. 나나 딸이나 한국에서 태어나서 계속 살고 있다. 쓰는 말도 같고 먹는 음식도 같다.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도 내가 배웠을 때랑 교육의 방법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은 비슷하다. 그러나 뭔가 다르다. 내가 딸만 했을 때는 아시안 게임도, 올림픽도 열리지 않았을 때였다. 그 당시의 대학 진학률은 20퍼센트 정도였고 내가 대학을 갈 때쯤의 대학 진학률도 겨우 50퍼센트를 넘길 정도였다. 해외여행이 자율화 된 건 1989년이고 내가 대학 졸업 여행 갈 때쯤 해서 동남아와 일본 여행이 대중화 됐다. 일본의 대중문화가 개방된다고 해서 다들 영화와 음악 산업이 망할 거라고 죽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작고한 강수연 배우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가 1987년이었고 이천 년대 들어 이창동 감독의 영화가 세계의 영화제를 휩쓸고 다녔다. 그러나 내게 있어 그런 현상은 한두 명의 천재, 그야말로 불세출의 인물들이 만들어낸 해프닝이었다.

반면 딸이 태어나고 자란 2010년대의 대학 진학률은 80퍼센트 정도 된다. 학교 밖 청소년과 다른 진로를 모색한 학생들을 고려하면 거의 백 퍼센트의 진학률이라는 전문가도 있다. 딸은 방학 때마다 어딘가로 여행을 가는 건 당연하게 생각하고 나보다 더 많은 나라와 도시를 갔다. 비행기 타는 걸 두려워하지도 않고 오래 타고 갈수록 좋아한다. K POP이 세계 음악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실제로 그런 현상을 보고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우리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타고 감독상을 타는 것도 봤다. 세계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드라마를 보고 외국의 유명 프로축구 팀에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이 뛰는 것도 봤다. 그것도 여러 명이. 난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 기념으로 찍은 사진을 보고 혹시 합성 아닐까 하고 의심했었다.

고싸움(@제1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1975년). (사진=국가기록원)
고싸움(@제1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1975년). (사진=국가기록원)

 

같은 운동회, 다른 풍경


5월 초, 딸의 초등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렸다. 이 학교의 운동회는 학예회와 번갈아 격년제로 열리는데, 딸이 1학년 때 학예회를 했으니 2학년 때 열려야 했으나 코로나 시국에 취소되어 무려 4년 만에 열리는 운동회였다. 전교생을 다 합쳐봐야 6백 명이나 될까? 오전, 오후반으로 나눠 등교 시켰던 시절에 “국민학교”를 다녔던 아빠가 보기엔 조촐한 규모였다. 그래도 풍경은 비슷했다. 그러나 달랐다. 게임의 진행과 구성, 준비는 이벤트 업체가 맡아서 했다. 사회도 마찬가지였다. 입담 좋은 선생님이 구령대에서 진행하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던 사람이 보기엔 낯선 풍경이었다. 진행 순서를 보니 고학년들의 기마전이 없었다. 아내에게 고싸움도 없다고 했더니, 아내도 놀란다. 내가 잠시 다녔던 파주의 “국민학교”에서인가, 아니면 그 뒤에 다녔던 의정부의 “중학교”에서인가는 고싸움도 했었다. 이제는 안전 문제와 준비 과정의 번거로움 때문에 그야말로 민속놀이 행사에서나 볼 수 있게 된 모양이다. 도시락을 싸와서 나눠 먹는 풍경도 없었다. 운동회를 동네잔치로 여겨, 커다란 나무 그늘 밑에 앉아 아이들 재롱을 보면서 권커니 잣거니 막걸리를 드시던 할아버지들의 모습도 없었다. 깔끔한 진행 속에 종목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계획했던 열한시 오십 분에 정확히 끝나 아이들은 급식을 먹고 집에 왔다. 역시, 다른 세상이다.

다른 세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건 세대차이가 아니라 세상 차이다. 드라마 제목을 패러디하여 말하자면 그들이 사는 세상과 내가 사는 세상이 다른 것이다. 같은 나라에 살아도 성장의 경험이 다르면 당연히 가치관도 다르다. 가치관이 다르면 생각도 다르고 표현도 다르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묶어 별칭 하여 구분한다. MZ세대니 꼰대니 하는 표현은 결국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그래서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걸 인정 못하여 발생한 결과에 불과할지 모른다. 한 이불을 덮고 자도 동상이몽이다. 한 나라에 살아도 우리는 기적이라 부르는 현상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대가 있다. 우리는 감동하여 뭉클한 일을 보고, 그 정도 성과와 영광은 당연히 한국과 국민이 누려야 하는 것이라 여기는 세대가 있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사는 이들 사이에 대화가 필요하다. 이해를 위해, 그리고 이 좁은 나라에서 함께 어울려 살며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싫든 좋든 한 직장, 한 지역에서 함께 사는 이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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