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삶은 계속 된다.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최근에 나온 투자와 투기의 역사를 다룬 책 제목을 빌려 말하면 지금의 사회는 “투자 권하는 사회”다. 도전을 권장하고 혁신과 변화가 규범이 된 사회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반대 현상도 보인다. 한눈팔지 않고 자기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직장인과 전문가, 더 나아가 장인과 달인을 칭송하는 기사나 방송 프로그램도 많다. 이런 혼란스러운 두 현상은 미디어를 통해 재생산 된다. 구인구직 사이트 광고에선 이직과 전직을 긍정하다 못해 부추기기까지 하지만, 다른 광고에서는 평생 한 길을 걸어온 부모님에게 존경을 표현하기도 한다. 유재석과 조세호가 하는 <유퀴즈> 같은 프로그램을 봐도 그렇다. 저번 주에는 수십 년 한 길을 걸어온 장인을 소개하며 감탄 하다가, 이번 주에는 직업과 직장을 자유롭게 바꾸며 사는 사람, 본업과 N잡을 병행하는 사람의 변화무쌍한 이야기를 들으며 감탄한다.

만약 내가 이제 막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이라면 혼란스러울 것 같다. 소위 운명과 같은 직업, 즉 천직을 만나 묵묵히 한 직업의 길을 걸어 결국엔 장인의 소리를 듣는 삶이 행복하고 좋은 삶인지, 그도 아니면 좋은 연봉과 다가오는 기회를 마다하지 않고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삶의 경로를 바꿔가며 살면서 악착 같이 돈을 모아 투자를 잘 해서 젊은 날에 부자가 돼서 직업과 직장의 현장에서 벗어나 한가롭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것 같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일까?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일까? 영화 <트루먼쇼>를 중심으로 이런 삶도 저런 삶도 생각해보려 한다.

트루먼 쇼(The Truman Show,1998) 스틸컷.
트루먼 쇼(The Truman Show,1998) 스틸컷.

진짜 삶과 가짜 삶


완벽한 삶이다. 사랑스러운 아내, 죽마고우, 안정 된 직장, 정갈하고 아름다운 집, 친근한 이웃이 있는 고향에서 낳고 자라 누리는 어른의 삶이다. 부족한 것이 없다. 사건 사고도 없다. 소위 화이트칼라 직장인으로,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한다. 그런 삶에 의심이 찾아온다. 완벽해보였던 삶에 균열을 일으키는 사건들이 발생한다. 그 균열 끝에 주인공은 문득 깨닫는다. 이 공간, 이 삶을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음을,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마을을 둘러 싼 바다 너머의 세상에 가 본적 없다는 사실을, 새로운 세계, 그 세계에서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음을 말이다. 주인공은 탈출을 꿈꾼다. 다른 삶이 가능한 다른 세계로 향한다. 예전에 한번 말한 것 같은데 한 자동차 광고에서, 성공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 광고에서 창업을 위해 퇴사하는 중견 간부를 내려다보는 동료들 중 한 명이 “밖에 나가면 뭐 있는 줄 아나.”라고 비웃는다. 트루먼이 문으로 나가기 직전까지 겪어야 했던 수많은 장벽과 만류도 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트루먼을 만류하고 탈출의 장애를 창조해냈던 그들은 연기자였다. 자, 함께 곰곰이 생각해 보자. 트루먼이 살았던 그 가상의 도시에서 진짜 삶을 살았던 사람은 오직 트루먼 한 명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연기자였다. 그의 아내도, 친구도, 아버지와 어머니도, 직장 상사와 고객과 이웃과 그에게 아침마다 덤벼들던 이웃의 개도, 심지어 바다와 달과 태양도 모두 인위적이고 인공적이었다. 그들에게 그곳은 직장이었다. 저 위, 천장에 자리 잡고 있는 조정실에 있는 PD에게 캐스팅 당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었으며, PD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그 공간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산 사람은, 그러니까 조물주이자 신과 같은 존재였던 PD의 지시를 받지 않고 자신의 자유 의지로 삶을 살아냈고 살고 있던 사람은 오직 한 사람, 트루먼뿐이었다. 인위와 인공을 삶의 자연적이 요소로 인식하고 주어진 삶을 살아낸 사람은 오직 그 뿐이었다.

진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또 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가 트루먼에 집중하는 동안 놓쳤던 것은 세계인의 삶이었다. 감독이 이 시청자의 삶과 트루먼의 삶을 병행해서 보여준 건 진짜 삶과 가짜 삶의 대조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삶이든 저 삶이든 진짜 삶임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그 진짜 삶을 사는 세계의 시청자가 트루먼을 지켜보는 동안 두 개의 진짜 삶은 계속 됐다.

트루먼 쇼(The Truman Show,1998) 스틸컷.
트루먼 쇼(The Truman Show,1998) 스틸컷.

진짜 삶은 계속 된다.


그러나 영화 속 시청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트루먼이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세상을 향한 문을 열고 나갔을 때, 이 영화를 본 모든 관객들, 그리고 트루먼쇼를 본 세계의 시청자들은 트루먼이 진짜 삶을 찾아 진짜 세계로 나갔다고 생각했다. 가짜 세상에서 진짜 삶을 찾아 떠나는 트루먼을 향해 진심어린 응원을 보냈다. 나도 그렇게 이 영화의 마지막을 보고 해석했다. 뭉클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다시 보니 트루먼은 진짜 삶A에서 진짜 삶 B로 이동하기로 선택한 것에 불과했다. 그는 그 돔 안에 꾸며진 가상의 도시에서도 전력을 다해 살았다. 모두가 각자 맡은 연기를 할 때, 그만 오직 자신의 삶을 살았다. 전 세계 시청자들이 이 쇼를 보며 웃고 울고 했던 건 트루먼의 삶이 진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돔 밖의 삶도 생중계를 할 수 있다면, 그러니까 트루먼이 돔 밖으로 나간 뒤에 스스로 꾸려가는 삶도 계속 중계할 수 있다면 여전히 시청률이 높았을 것이다.

부연하자면, 트루먼의 선택은 가짜 삶에서 진짜 삶으로의 진보가 아니다. 삶 A에서 삶B로의 전환이다. 연기자들은 삶과 연기를 오간 것이고 트루먼은 기존의 삶에서 다른 삶으로 도전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진짜 궁금해야 할 것은 돔 밖에서의 트루먼의 삶이 아니라 PD와 연기자의 삶을 궁금해야 한다. 사실 우리가 연예인들의 일상, 진짜 삶을 궁금해 하며 소위 리얼리티 쇼라는 걸 열심히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연예인 부부가 나와서 지지고 볶고 사는 걸 보고 혼자 사는 연예인의 일상을 들여다보지만 그건 다 가짜다. 트루먼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못한 채, 아니 카메라의 존재 자체를 모른 채 살아냈던 삶, 그 진짜 삶을 시청자들이 봤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허위 리얼리티다. 그것은 만들어진 리얼이다.

우리가 트루먼의 삶을 진짜다 가짜다 판단하며 이렇게 옥신각신 할 수 있는 건 그 삶이 영화화 되어 그 삶의 전모를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다 앎에도 불구하고 그 삶 중 어떤 삶이 진짜 삶인지, 어떤 삶이 행복하고 삶다운 삶인지 알 수 없다. 삶과 행복의 평가는 타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에게 있기 때문이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1994)'
영화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1994)'

고통 없는 삶은 없다.


우린 타인의 삶의 한 순간을 보고 질투할 때가 있다. 누군가 고급 승용차를 몰고 지나간다거나 몸매가 좋은 남녀가 지나갈 때, 또는 누가 투자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거나 심지어 연예인의 화려한 삶을 보고 질투를 하고 동경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린 순간을 볼 뿐이다. 그 순간이 그 사람의 삶의 진실한 순간인지 꾸며진 순간인지 우린 알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 순간, 그러니까 그 찰나 같은 순간을 위해 그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수했으며 그 순간이 지난 후 얼마나 많은 고민과 걱정을 할지 우린 모른다.

어떤 결정이든 매번 스스로 그 결정을 내리는 삶은 주도적이고 능동적 주체다. 안이든 밖이든 지구의 끝을 향하든 전쟁의 끝을 향한 결정이든 말이다. 만약 트루먼이 모든 걸 알고도 남기로 결정했다면 그건 거짓된 삶인가? 사표를 쓰고 나가든 대신 회사와 조직 안에 남기로 결정하든 그 모든 결정 뒤에도 진짜 삶은 이어진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의 우연적 선택이 역사의 순간과 개인사의 기적을 만들었듯 트루먼의 선택과 내 개인의 선택도 그러하다. 우리의 선택은 삶의 기적을 만들고 사회와 나라의 기적을 만든다. 다만 우리가 사는 동안 그 기적의 현장을 보지 못할 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오늘 해야 할 건, 어쩌면 제대로 된 선택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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