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트 아우돌프가 극찬한 곳

[최영훈 칼럼니스트 @이코노미톡뉴스] 아내조차 배달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는데 익숙해져가던 작년 9월쯤의 일이다. 페이스북 친구인 자영업자 한 분이 “늘어난 테이크아웃 고객들이 배민은 왜 안 하냐고 묻는데 해야 하나?”하는 고민의 심정을 페이스북에 풀어 놨다. 나이가 들어 오지랖이 넓어진 탓에 대뜸 댓글을 달았다. “주문 불편하고 접근성 떨어지고 희소한 것도 매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도도하고 까칠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있듯이, 그런 온실 같은 카페는 문턱이 좀 높아도 됩니다. 배민이라뇨.”하고 말이다.

이쯤해서 이 자영업자의 매장을 소개해야 할 것 같다. 아, 그 전에 먼저 소개할 사람이 있다. 바로 피트 아우돌프다. 피트 아우돌프는, 상투적인 표현을 빌리면, 네덜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로 소위 자연주의 정원의 대가다. 이 대가가 2022년 한 해 동안 울산광역시 태화강 국가정원에서 사계절 정원 프로젝트를 한다. 그의 아시아 첫 무대다. 이를 위한 답사 차 작년 가을 내한했을 때 일부러 찾아왔던 레스토랑이 바로 이 자영업자의 매장, <상일상회>다. 피트 아우돌프는 틈틈이 사진을 찍으며 이 곳을 돌아본 뒤 "Dream Restaurant!"이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자, 이런 곳에서 파는 커피와 음식을 테이크아웃해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배달 앱으로 배달시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시국이 시국이라도 말이다.

(사진=필자제공)
(사진=필자제공)

차별화와 제3의 공간


어떤 커피는 배달을 시키거나 테이크아웃해도 되고, 왜 어떤 커피는 꼭 그곳에 가서 마셔야만 할까? 유행 타는 마케팅 관련 책을 대부분 내다 버리고 팔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갖고 있는 책 중 하나에서 “차별화”라는 답을 찾을 수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종신 교수인 문영미 교수가 쓴 <디퍼런트>에선 차별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서 문제는 진정한 차별화, 즉 지속적으로 유지 가능한 차별화는 이러한 평준화와는 정반대의 길로 나아가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즉, 차별화란 불균형의 상황을 더욱 불균형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특정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 진리를 명심해야한다.”고.

특별한 공간의 가치를 다룬 다른 책에선 두 번째 답을 얻을 수 있다. 세계적인 공간 연출가이자 무드 매니지먼트 전문가인 크리스티안 미쿤다는 그의 책 <제3의 공간>에서 그 곳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런 곳들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적 짜릿함과 내 집 같은 편안함은 여러 사람들이 이용하는 그런 대중적 시설들을 개인의 공간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제3의 공간’ 개념이 등장하였고, 그렇게 ‘연출된 공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활력소가 되었다.”고. 그는 이와 관련 된 대표적 사례로 레스토랑에 한 챕터를 할애했다.

사라진 0리단길의 교훈


지자체마다 0리단길 발굴과 조성 경쟁이 치열하다. 자연스럽게 조성 된 길을 발굴하기도 하고 정책적으로 걷기 좋은 거리를 만들어 그런 거리를 조성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0리단길은 전자에 가깝고, 부산의 전포동 카페거리와 울산의 왕생이길은 후자에 가깝다. 이런 길들의 성공 확률은 그리 높지 않고 성공하더라도 그 수명이 짧다. 비단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만은 아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와 세계 어디에나 있는 익숙한 브랜드가 길의 개성을 지우는 동안 젊고 감각적인 아티스트와 고객들이 다른 길과 동네로 사라져 버린 과거의 뉴스들을 떠올려 보자. 2010년대 중반, 홍대의 아티스트들이 서교동-합정동-망원동-문래동 순으로 그 거처를 순차적으로 유랑하듯 떠밀려갔다는 뉴스를, 이태원 경리단길과 신사동 가로수길의 공실률이 최고치라는 뉴스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봤던 기억이 있지 않던가?

이태원 경리단길의 교훈을 잊지 말자. 주목받고 인기 있는 길은 차별화 된 맛과 멋으로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장소들로 이뤄지고, 이태원 경리단 길 역시 전통주와 수제맥주에 미쳐 살던 주인들과 그 술의 가치를 발견해준 마니아들로부터 시작됐음을 잊지 말자. “0리단길”이 유행한다고 아무 길에나 무턱대고 “0리단길”이라는 이름부터 갖다 붙일 게 아니다. 어떤 길이 그 이름을 얻고 명성을 날리기 위해선 먼저 그 이름에 걸 맞는 가치를 창조해낸 사람과 그 사람이 공을 들여 창조해낸 고유의 공간이 먼저 존재해야한다. 그런 곳이 없으면 그 길도 의미를 잃고 사라진다. 잠시만 생각해봐도 자명한 이치다. 몇 곳 안 남은 헌책방 거리 중 하나인 부산의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개발 열풍에 헌책방이 밀려 사라지면 근대사를 품고 있는 그 거리의 아우라와 의미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나? 전국 곳곳의 카페 거리에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만 가득하면 거리마다의 개성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나? 전주 한옥마을에서 전통의 맛과 멋이 사라진다면 객리단길의 에너지가 어떻게 유지 되겠나?

울산 중구 성남동 골목 모습. (사진=필자 제공)
울산 중구 성남동 골목 모습. (사진=필자 제공)

사람이 만드는 장소 정체성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뭔가를 가지고 있는 곳이 있다. 부산의 경성대학교와 부경대학교 사이의 문화골목도, 경주의 황리단길과 그곳에 있는 <어서어서>같은 서점도, 울산의 성남동 일대와 <상일상회>도 그런 고유의 느낌이 있는 곳이다. 그곳 고유의 느낌은 그 장소 바깥의 법칙과는 다른, 그들만의 법칙으로 정성들여 쌓아온 느낌이다. 이것을 한 단어로 함축해 말한다면 장소 정체성(identity of place)이라 할 수 있다. 캐나다의 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는 그의 책 <장소와 장소 상실>에서 장소 정체성은 장소와 그곳을 경험하는 주체인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했다. 그렇다. 결국 도시와 거리의 가치를 만들고 그 장소 고유의 이미지를 만드는 건 사람이다. 그래서 개성을 가진 거리가 그 고유의 정체성을 잃는 순간은 사람보다 정치와 자본의 논리가 앞설 때일 것이다.

이 차별화 되고 특별한 곳에서 한 잔의 커피와 한 끼의 식사뿐만 아니라 장소의 정체성과 문화까지 누리기 위해 필요한 건 뭘까? 이 시국을 버티며 몸에 배어버린 조급함 대신 여유로 채워진 기다릴 줄 아는 마음 아닐까? 어쩌면 <상일상회>를 시작으로 화단 꾸미기에 진심인 카페와 레스토랑이 줄지어 생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주변이 태화강국가정원과 어울리는 정원 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조바심을 누르고 조금만 기다려 준다면 말이다. 그러니 스마트 폰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해보자. 그 온실 같은 카페로 쏟아지는 오후 두 시의 햇살을 배달시킬 수 있을까? 그 공간의 여백이 선사하는 마음의 여유를 배달시킬 수 있을까? 온 직원이 정성들여 가꾼 나무와 꽃들의 향기를 배달시킬 수 있을까? 새로운 직원이 오면 의자를 직접 조립해주는 사장의 사람 좋은 미소를 배달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든 전하고 싶은, 손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배달시킬 수 있을까?

사족을 하나 달자면 피트 아우돌프의 정원은 올 봄부터 태화강국가정원에서 볼 수 있다. 이 정원은 자연주의 정원이어서 사계절 내내 다른 꽃과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러니 이 정원을 만끽하기 위해선 최소한 계절마다 한번씩, 네 번은 가야 한다는 것. 그냥 참고하시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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