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은 봄과 새 생명을 알리는 전령사이다. 초목에 물이 오르고 만물이 동면에서 깨어나는 이 시기에 이르면, 겨울잠을 자던 동식물과 벌레들도 꿈틀거리기 시작하며 완연한 봄의 시작이고 청춘남녀의 가슴마저 설레게 한다. 그래서 ‘놀랄 경(驚)’에 '겨울잠을 자는 벌레 칩(蟄)'자로 경칩(驚蟄)이라 한 모양이다. 경칩은 24절기 중 입춘·우수에 이어 세 번째의 절기며 태양의 황경(黃經)이 345도에 이르는 때로 동지 이후 74일째 되는 날이다. 보통 양력 3월 5일경으로 금년은 양력 3월 6일이다.



겨울잠 깨는 날 ‘경칩’

토종(土鐘) 연인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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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하중호(칼럼니스트, 국립목포대학교 초빙교수)



경칩은 봄의 전령사


봄을 맞아 개구리들이 물이 괸 곳에 까놓은 알을 먹으면 아픈 허리와 몸에 좋다며 농촌에서는 산이나 논의 물이 괸 곳을 찾아다니며 경칩날 개구리(또는 도롱뇽) 알을 찾아 건져먹기도 하고, 토역(土役,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해서 담벽을 바르거나 담장을 쌓기도 했다. 특히 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하여 흙벽을 바르기도 하고, 빈대가 심하면 물에 재를 타서 방 네 귀퉁이에 놓아두면 빈대가 없어진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백성들은 새봄을 맞아 집 구석구석을 단장한 셈이다. 경칩은 사람과 동물뿐 아니라 식물인 보리, 밀, 시금치, 우엉 등 농작물들도 월동에 들어갔던 생육을 다시 개시한다.


생명의 시동과 사랑의 축제

이처럼 산천의 봄은 바야흐로 시작된다. 씨 뿌리는 수고가 없으면 결실의 가을에 거둘 것이 없을 것이므로 경칩 때부터 부지런히 서두르고 씨를 뿌려야 했으며, 경칩 날에 보리 싹의 성장상태를 보아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하였다. 또한 예나 지금이나 새봄의 통통한 미나리 맛은 봄의 싱그러운 먹거리며, 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 수액은 위장병이나 성병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약으로 먹었는데 요즘도 고로쇠나무의 물은 많이 애용되고 있으며 인기도 여전하다. 이처럼 경칩 날은 봄의 상징이자 생명의 시동이었다.

누군가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사랑의 축젯 ‘연인의 날’이 전해져온다. 고대 로마에서는 2월 보름께 ‘루페르카리아’라는 축제날에 젊은 아가씨의 이름을 적은 종이쪽지를 상자에 넣고 동수의 총각이 뽑아 짝을 지어 주는 ‘사랑의 날’이 있었다. 초콜릿을 주고받는 서양 ‘밸런타인데이’도 봄의 길목 2월 14일에 있고, 히말라야 고산족은 2월 보름날에 활쏘기 대회를 벌이는데 마을의 젊은 아가씨들은 그 현장에서 맘에 드는 사수(射手)를 지명하여 달밤에 짝을 지어 춤추며 신 나게 밤을 새웠다고 한다.


우리 토종 연인의 날

우리 겨레에도 이 같은 ‘사랑의 날’이 있었을까? 우리나라는 예부터 남녀의 만남에 엄격했으면서도 토종 ‘연인의 날’이 있었다. 만물이 깨어나는 경칩 날이면 은행나무 주위를 돌며 은밀히 사랑을 다지면서 은행 열매를 나눠 먹는 풍습이 있었다. 천년세월을 산다는 은행나무의 열매를 연인끼리 주고받으며 영원한 사랑을 고백했다. 은행나무는 암수가 따로 있어 마주 보고 서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 설혹 가까이 있지 않고 마주 보고만 있어도 사랑이 오가고 결실을 맺는 은행나무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상징이다. 사탕이나 초콜릿보다 더 달콤하고 가히 한국적인 은은함과 싱그러움이 배어있는 토속 ‘밸런타인데이’인 셈이다.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Valentine's Day)’의 유래는 고대 로마시대 성 발렌티누스(St. Valentinus) 사제의 이야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1910년 안중근 의사가 일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일제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기도 하다. 우연인지 1958년 일본의 모 과자회사가 “이날 하루는 여자가 남자에게 자유로이 사랑을 고백하자”는 캠페인으로 교묘하게 초콜릿선물을 하도록 유도한 날이고, 초콜릿장사로 재미를 보자 1970년대에 “2월 14일 초콜릿으로 받은 사랑을 3월 14일에 남자가 보답하자"고 광고한 것이 ‘화이트데이’가 되었다고 전해온다. 이 풍속이 1980년대 중반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유입되었다.


전통은 지키는 자의 것


우리 겨레가 고대부터 누려왔던 민족문화의 전통은 다채로웠다. 우리가 일제강점기까지 근·현대를 거치며 억압되고 실종된 문화는 헤아릴 수 없다. 국적불명의 기념일을 흉내 내고, 상술에 휘말리기보다 일제강점으로 일시 중단되고 잘살아보자는 구호 속에 잠시 잊힌 전통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겨볼 때이다. 전통과 문화는 지키는 자의 것이며, 미래는 과거와 현재가 만들어내는 결정체이다. 돈과 상술이 사랑하는 마음을 희롱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데이’가 아닌 아름다운 민족혼과 사람 냄새가 나는 세상을 그려본다. (경제풍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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