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관계자들이 지난 2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상장주식 양도세 과세대상 기준 조정과 관련해 주요 내용을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획재정부 관계자들이 지난 2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상장주식 양도세 과세대상 기준 조정과 관련해 주요 내용을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경진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정부가 연말 증시 폐장을 앞둔 시점에 여야 합의로 유예시켰던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을 일방적으로 대폭 완화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지난 달 시행된 주식 공매도 중단에 이어 이번에도 정작 주무부처 장관들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이 여론전을 펴고 금융정책 결정을 주도하면서 관련 부처 장관들은 들러리로 밀려난 셈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1일 상장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을 기존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완화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내년 1월1일 이후 양도분부터 개정안을 적용할 계획이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단일 종목을 10억원 이상 보유할 경우 대주주로 간주해 양도차익에 대해 20~25%의 세금을 부과했던 대상자 기준 금액을 50억원으로 높이는 것이다.

대주주 주식양도세 과세는 2000년 종목별 100억원 이상 보유자를 대상으로 시행했다가 단계적으로 기준을 낮추면서 기준을 강화해오다 2020년 4월부터 10억원 이상으로 적용하고 있다. 

기재부는 이번 시행령 개정이 매년 연말 대주주 지정을 회피하기 위한 매도 물량으로 인해 주가하락으로 피해를 보는 소액 개인투자자들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고금리 환경 지속과 대내외 불확실성 증대 등 자본시장 상황을 고려하고 과세 대상 기준 회피를 위한 연말 주식매도에 따른 시장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체 개인 투자자의 0.05%에 불과한 일부 고액 투자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이번 시행령 개정을 위해 여야간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데다, 정부조차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 완화 효과에 대해 "어떤 정책을 발표하면 그것에 따라 매도한 분도 있고 안 한분도 있다"며 "행태변화를 사전에 정확히 예측해서 사전에 알면 좋겠지만 그런 부분은 미리 알기는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자마자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이 발표된데다, 구체적인 효과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개정안은 '총선용'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시행령 개정안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정작 주무 부처인 기재부 장관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고액 투자자에 대한 주식 양도세 기준 완화 입장에 대한 질문에 "현재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 시장 등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에 현재 그런 얘기를 듣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이 발표되는 과정은 지난달 초 금융위원회가 갑작스럽게 '공매도 전면 금지'를 발표한 상황과 비슷하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휴일이었던 지난달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내년 상반기까지 공매도를 전면 중단한다고 밝혔다.

당시 금융당국은 시장 불확실성 확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증시의 공정한 가격 형성을 위해 공매도 전면 금지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이같은 결정은 기존의 입장을 뒤엎은 일이었다. 금융당국은 그동안 전세계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하는 나라가 거의 없는데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에 공매도 제한이 장애물이 되고 있다면서 사실상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올해 국정감사에서 "외국인 투자가 중요한 나라에서 외국에서 아무도 안 하는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시스템을 만들어서 거래를 어렵게 만드는 게 과연 개인 투자자를 보호하는 이런 정책인지 저는 정말 자신이 없다"면서 공매도 중단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공매도 전면 중단에 이어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 완화 정책이 발표되는 과정에서 정작 해당 주무 부처의 장관들은 사실상 반대 입장을 취하거나 내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추측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용한 금융정책이 당국의 판단보다는 여권과 대통령실의 입김에 좌우되면서 주무부처 장관들을 들러리로 만드는 상황은 크게 우려스럽다. 정책 효과보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밀어붙이기 식으로 이뤄지는 금융정책 결정이 향후 국가경제와 국민들에게 미칠 부작용을 감안해서라도 잘못된 시스템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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