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500년, 수도행정 수장
최종인 편저, 벼슬디딤돌역사 분석

한성판윤(漢城判尹)
한성판윤(漢城判尹)

[배병휴 회장 @이코노미톡뉴스] 왕조시대 수도의 행정 최고책임자는 한성판윤(漢城 判尹)으로 오늘날의 서울특별시장 벼슬이다. 조선조 500년간 한성판윤은 무려 2209대에 걸쳐 1027명이 재임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태조 이성계가 1392년 조선을 개국한 후 3년 뒤에 고려왕조 잔영이 서린 개경을 떠나 한양으로 천도한 후 초대 판윤으로 고려조 중신인 성석린을 임명했다. 그로부터 정2품인 한성판윤은 마지막 2209대, 친일파 장현식까지 1027명이 재임한 기록이다.

한성판윤은 집권세력 내 문벌가문에서 도맡아 판서, 정승으로 가는 권력의 디딤돌 역할을 했던 모양이다.

성씨별로 한성판윤을 많이 배출한 가문으로 보면 진주 강씨, 안동 권씨, 안동 김씨, 광산 김씨, 파평 윤씨, 여흥 민씨, 연안 이씨, 전주 이씨, 풍양 조씨, 청주 한씨, 남양 홍씨 등등이 꼽힌다. 왕조시대 과거 합격자가 많이 나오고 정승, 판서 벼슬 및 왕비가 많이 배출된 성씨와도 일치하는 세도 가문이다.

초대 성석린 판윤은 개국공신으로 좌우 정승 및 영의정을 거쳐 세종조까지 86세로 장수했다. 이어 2대 정희계에서 8대 강서까지 모두가 개국공신 출신이 맡았다.

이밖에 제38대 판윤 황희는 최고의 명재상, 44대 맹사성은 최고의 청백리, 120대 한치형은 양녕대군 사위에다 한명회의 조카, 인수대비의 4촌 오빠, 134대 신준은 영의정 신숙주의 아들이다. 반면에 137대 유자광은 서자 출신으로 세조의 신임을 얻어 남이장군을 모함하여 죽음으로 내몬 간신이다.

한성판윤은 실권이 별로 없었지만 집권세력 내부 권력구조 유지나 변동 따라 임명과 해임이 교차한 모양이다. 총 연계 대수 2209대에 실제 재임 판윤이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치는 1027명에 불과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임명 후 사실상 집무실적도 없이 해임된 경우도 있고 겨우 1주일 만에 교체된 사례도 있었다. 이와 반대로 한번 임용된 후 계속 연임 중임한 사례도 부지기수였다.

개국 초기 권력요동기를 지난 인조, 숙종기에는 한번 발탁되면 최소 4~5대, 7~8대 중임에다 11대까지 중임한 사례도 있었다. 제543대 이정영 판윤이 8대, 618대 이언강 판윤은 11대를 중임했다.

조선 후기 명재상 채제공은 1009대 판윤이 되어 6대를 중임 후 정승이 됐고 남태제, 김문순 등은 무려 11대를 연임했다. 강화도령 철종조 김학성 7대 연임, 이가우는 8대 중임, 반면에 개화기의 박규수 판윤은 겨우 9일, 윤치호는 8일 집무, 박영효는 석달 만에 퇴임했다.

이 책은 (사)서울문화사학회 최종인(崔鐘仁) 대표의 편저로 지난 1994년 서울 정도(定都) 600년 기념 서울역사 편찬원이 발간한 ‘조선시대 한성판윤 선생안’을 기본으로 분석, 정리한 역사문화이다.

편저자는 이들 자료를 바탕으로 가문과 학문, 일생 일화 등을 요약, 정리했다. 또 90여명의 판윤들은 초상화를 발굴 소개하고 조선조 말기의 2139대 충정공 민영환 등 일부는 사진으로 소개했다.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한성판윤 출간을 수도 서울의 역사문화를 탐구하는 ‘서울학’의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라고 축하했다. (도서출판 보청, 2022. 6. 발행. 150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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