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발전기에 가진 것 전부를 던져 헌신한 창업세대 원로 기업인들을 만난 이야기를 엮었다. 회장, 명예회장들은 시국을 걱정하면서 틈틈이 분노를 드러내 ‘늙은 피가 끓는다오’라는 제목을 달았다.

명예회장님들은 후진들을 향해 할 말이 많지만 ‘잔소리’로 들릴까, ‘노욕으로 비칠까’ 입을 아낀다고 말한다. 다만 살아온 나날들을 되돌아보면 일제 식민생활, 8.15와 6.25의 혼란과 격변, 4.19와 5.16의 정치적 변고 등 참으로 모진 세월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경제를 발전시켜 배고픈 국민이 허리를 펴게 되고 국력이 뻗어 국위를 선양하게 됐으니 ‘기업이 곧 국가다’라는 평판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인식이 너무나 곱지 못하니 고약한 세월 아니고 무엇인가.

월간지 경제풍월 제작과 관련, 때때로 면담했던 주요 기업인들과 일부 종교인, 국가안위를 걱정하는 군 출신 등 서른일곱 분을 모신 기록물로 엮었다. (기자주)

엄경호(嚴敬昊, 2016-5-26 별세) 前 제일합섬 사장. (사진=이톡뉴스DB)
엄경호(嚴敬昊, 2016-5-26 별세) 前 제일합섬 사장. (사진=이톡뉴스DB)

[배병휴 회장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이톡뉴스)]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에게 발탁된 엄경호(嚴敬昊, 2016-5-26 별세) 前 제일합섬 사장은 반공정신이 투철한 함북 나남(羅南) 출신이다. 엄 사장이 어떤 경로로 이병철 회장의 ‘제1주의’ 사장이 됐을까.

엄 사장은 6.25 참전용사이나 전역 후 맨발의 아프리카에 섬유류를 수출한 경력을 쌓아 세일즈 전문으로 삼성에 스카웃 된 것이다.

엄 사장은 경제풍월과 인터뷰를 통해 “김일성의 남침으로 나라가 망할 지경에 미군의 참전으로 살아남은 것이 국운”이라며 미국에 감사를 표했다. 엄 사장의 군 경력은 육군소위로 참전하여 낙동강 전선, 지리산 전투, 금화지구 전투를 거쳐 소령으로 전역했다. 국군 8사단 16연대 소대장 시절 지리산 전투 회고가 참으로 눈물겹다.

당시 국군은 거의 오합지졸형인 반면 인민군 진영은 숙련된 전사들로 쫓기면서도 여유만만 했다. 보급이라야 민간 보급대 등짐에 의존하니 끊어지기 일쑤이고 때론 주먹밥마저 보급 안 돼 허기와 싸우기도 했다. 빨래와 목욕은 생각할 수도 없고 월급도 받을 수 없었다. 1951년 언제쯤인가 모처럼 대구시내 출장을 갔더니 임관 동기들이 모두 중위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대위시절의 모습.
대위시절의 모습.

육본으로 달려가니 엄 소위도 진작 중위로 진급되어 통보했지만 지리산 전투현장까지 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엄 소위는 서울사대 영문과 재학 중에 육사 9기로 지원, 소위로 임관됐다. JP와도 동기지만 1년 먼저 육사 8기로 임관되어 선배가 됐다. 엄 소위 임관 동기는 윤성민 전 국방부 장관, 전병주 전 3군사령관 등이 대표격이다. 

가장 치열했던 경북 성주의 고지 쟁탈전에서 피 흘려 정상을 점령하고 보니 시커먼 포연 속에서 “경호야, 나야…”라고 부르짖는 ‘귀신’같은 소리가 들렸다. 인민군 소좌 계급의 자주포 대장으로 함남 나남국민학교 동기였다. 그가 “난 가망이 없으니 네 손으로 날 죽여 다오”라고 부탁했다. 옆에 있는 위생병에게 물어보니 손쓸 방도가 없다는 대답이었다. 이에 시골 골목친구를 사살하고 간단한 무덤을 만들어 줬다.

이 사실이 전장의 화제로 취재되어 국내 신문뿐만 아니라 외신에도 널리 보도됐다.
그 뒤 엄 소위는 소령으로 전역 후 여러 직장을 거쳐 해외 세일즈로 명성을 쌓아 삼성 이병철 회장에 의해 제일합섬 사장으로 선임되어 구미공장을 자주 방문하다 뒤편에 있는 옛 인민군 소좌 친구의 무덤을 확인하여 다시 손질해 줬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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