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호]

[주한 외국인③]

한국인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니

때론 일본인인가 헷갈려요

하얏트 호텔 고문 小澤滿

“교과서파동, 일 젊은이들 신경안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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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자와 미쓰루 하얏트호텔 고문>

주한 18년 한국서 성공요인 체득

“제가 한국에 부임해 일 한지도 벌써 18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큰 과오 없이 업무를 수행하게 돼 행복합니다.” 그동안 그랜드 하얏트호텔 사장으로 근무하다 지난 9월 이 호텔 고문으로 자리를 옮긴 일본인 실업가 오자와 미쓰루(小澤滿·58)씨는 한국을 잘 아는 주한 외국인이다.

“한국 부임 초창기에 느낀 점은 호텔업에 대한 사회의 평가가 낮았다는 점입니다. 호텔업이 유교사상 때문인지 천직(賤職)으로 치부됐으니까요. 그만큼 호텔경영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88서울올림픽을 치르고 나서부터 인식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많은 외국인들이 입국해 호텔에 묵고, 여기서 수익을 창출해 국부 증진에 일익을 담당하다 보니 호텔의 중요성이 재인식된거지요. 이는 한국사회가 점차 성숙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한국에서는 기업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워낙 규제가 심하고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가 긍정적이지 못하는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기업의 한국 진출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에 진출했다가 실패한 일본기업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저는 실패한 원인이 한국자체의 여건때문이라기 보다는 진출기업 스스로에 더 많이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한국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IMF 이후부터는 성공한 일본 기업이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호텔의 경영기법이 그들에게 다소나마 귀감이 됐다는 생각도 듭니다.”

호텔사관학교로 자부

오자와 고문은 항상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한국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지 한국에 보답하고 기여한다는 각오라고 한다.

“우리는 매년 1천5백억원 가량을 일본이 아닌 한국에 재투자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종업원 복지 등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결과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얏트호텔은 세계 호텔업계서 중심 축에 올라섰다고 믿습니다.”

하얏트호텔은 ‘호텔사관학교’라고 자부한다. 호텔경영에 꼭 필요한 인재를 열성을 다해 교육해 호텔현장으로 배출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도 연 1천5백명 정도를 교육시켜 1급 호텔에 내보내고 있다.

“한국의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던 차에 호텔요원교육에 중점을 두기로 했습니다. 기업은 다른 기업과는 경쟁관계이기도 하지만 상생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가 호텔요원을 길러 다른 호텔에 보낸 면면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미 테러사건으로 손님 급감

미국의 무역센터 등에 가해진 테러는 세계 경제, 특히 관광산업에 막대한 타격을 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관광산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호텔업이 테러여파로 받는 타격은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 하얏트호텔도 결코 예외일 수는 없다.

“저희 호텔 손님가운데 70%정도가 미국과 유럽손님들입니다. 그래서 테러사건 이후 손님이 20?30%나 감소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 호텔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구미 손님이 주로 이용하고 있는 호텔은 우리와 비슷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자와 고문은 이런 호텔 이용객 급감현상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되면 곧 호텔의 옛 모습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다.

“한국에는 아직도 호텔 객실수가 절대 부족합니다. 호텔 수요는 엄청난데 공급량은 부족하다 보니 호텔 숙박료가 점차 올라갑니다. 또 호텔종업원들의 자질이나 서비스 수준도 아직은 미흡합니다. 여건이 어렵다면 고급호텔 수준은 아니더라도 값싸고 질 좋은 중급호텔을 많이 지어 외국손님들이 불편 없이 투숙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맞아 외국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입니다. 월드컵이 지방에서도 개최되므로 지방도시에도 많은 호텔을 지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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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자와 고문은 미테러사건에 따른 관광객 감소 현
상이 곧 해소될 것으로 낙관한다>

역사교과서 문제 별 영향 없어

최근 한일간에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 등으로 인해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그래서 가장 큰 고객인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줄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많다.

그러나 오자와 고문은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아직도 일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고 있는 곳이 한국입니다. 한국은 거리가 그 어느 나라보다도 가까워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관광과 쇼핑을 즐길 수 때문입니다.

특히 일본의 젊은 관광객들은 한국과의 ‘불편한 관계’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인 관광객들은 한번 한국에 오면 보통 2?3번씩은 반복해서 오는 경향이 있어 일본인들의 한국방문 전망은 밝은 편입니다.”

오자와 고문은 작년 한해동안 한국을 찾은 5백30만명의 외국인 가운데 45% 정도가 일본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올해는 총 외국인 관광객수가 5백90만명정도로 늘어날 것으로 보여 일본인 관광객도 이와 비슷한 비율로 증가할 것으로 그는 전망한다. 그러나 한국이 보다 많은 외국 관광객, 특히 일본 관광객들을 유치하려면 개선할 점도 많다고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무엇보다 비자면제 폭을 확대할 것을 주문한다. 현재 외국인에 대한 한국의 비자면제 기간은 2?3주인데 이를 좀더 연장하면 훨씬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들게 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일본도 비자면제 기간을 연장한 결과 외국 관광객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한국문화재 관광상품화 유망

오자와 고문은 또 문화재를 적극 발굴,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는 일도 급선무라고 충고한다.

“일본에는 교토와 나라, 유럽에는 로마 등지에 문화재가 많습니다. 이런 지역에는 항상 외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한국도 경주나 부여 등 고도에 있는 문화재를 적극 발굴해 관광상품화하면 많은 보다 외국인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서울-동경간 셔틀 항공기 노선을 개설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일본 관광객들은 마치 일본 국내를 여행하는 기분으로 한국을 방문할 수 있어, 많은 일본인들을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비행기내에서 전산으로 입국구속을 마칠 수 있는 시스템 도입도 권할만하다고 충고한다. 현재는 목적지에 가까워지면 기내에서 입국카드를 손으로 쓰느라 난리지만 이 시스템이 전산화되면 패스포드를 꺼내 보이기만 해도 수속이 간단히 처리된다고 한다. 그는 일본에서는 이 제도가 이미 시행되고 있다고 들려준다.

주 5일제 관광산업 발전 한몫

“꿈같은 이야기지만 부산-시모노세키간에 해저터널을 뚫어 자동차로 양국간을 왕래하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합니다. 도버해협 밑으로 유럽대륙과 영국이 연결됐는데 한일간이라고 안될 리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이런 바람은 현재의 여건으로 봐서 단순한 ‘희망사항’ 이 아니겠느냐며 껄껄 웃는다.

그는 한국정부가 추진중인 주 5일근무제가 한국의 관광발전에 도움을 줄 것이라며 기대를 걸고 있다. “주 5일제가 시행된다고 해서 단기적으로는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관광산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봅니다.

“나는 과연 일본인인가”

“20년 가까이 한국에 살다 보니 내가 과연 일본인인가, 아니면 한국인인가하고 헷갈리는 때가 가끔 있습니다. 아직 한국말은 잘 하지 못하지만 늘 한국사람들과 만나고 한국식으로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한국인으로 동화된 느낌입니다. 주위에서 일본인들이 한국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걸 보면 괜히 화가 치밀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한국에 대해 긍정적 사고를 갖도록 그들(일본인)을 설득합니다. 왜 내가 한국을 이렇게 두둔하고 있는지 스스로 의아하게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내가 어느새 한국사람이 다 됐다는 생각입니다.”

오자와 고문은 일본인들이 서구인에 비해 한국에 대한 적응능력이 미약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서구인가운데서는 수십년동안 한국에 뿌리내리고 사는 사람이 많은데 일본인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적다는 점을 예로 들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한일간에 오래 지속돼 온 역사적 인식이나 배경 차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일 양국간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뭣이 있지 않습니까. 언젠가 일본말 잘 하는 한국인 친구가 절 더러 ‘당신은 한국에 오래 살면서 왜 한국말을 잘 못하느냐’고 질문하더라고요.

그러나 앞으로는 양국간 인식에 변화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일본인들일수록 한국을 이해하고 교류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머지 않아 일본인들도 오늘의 서구인들처럼 한국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명문 게이오대 출신 자부심

오자와 고문은 일본정부가 고교생 등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한일교류 활성화 촉직책을 추진중이라고 들려준다. 따라서 머지않아 그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그는 또 일본정부가 재일 한국인에 대해서도 일본내 부동산 취득을 허용하는 등 많은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고 덧붙인다.

현재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등으로 양국간에 다소 불편한 관계가 조성되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런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믿고 있다.

오자와 고문은 호텔일 외에도 일본 게이오(慶應)대 주한 일본인측 동창회(三田會) 회장직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회원은 모두 55명으로 대부분 대사관이나 종합상사, 금융기관, 언론사 등에 근무하고 있다. 게이오대는 개교 1백30년이 넘는 일본의 명문 사립대다.

그는 한국인·일본인 졸업생의 신년초 합동 모임을 비롯, 봄철 야유회, 게이오대 총장 초청 강연회 개최 등 많은 이벤트를 마련해 놓고 있다.

얼마 전에는 게이오대 교수 및 학생 40여명을 한국에 초청, 세미나를 개최했다. 또 게이오대 축구팀을 불러 연세대와의 경기를 갖도록 했다.

“일본에서 한국 유학생을 제일 먼저 받아들인 대학이 바로 게이오대학입니다. 한말의 개화파 김옥균도 게이오대 출신입니다.” 국내 최상급의 화이브 스타 호텔 하얏트 고문의 모교 자랑은 끝이 없다.

클린턴 방한시 보일러 폭발사고

오자와 고문은 지난 1967년 일본 게이오(慶應)대 상학부를 졸업, 후지다 건설(현 주식회사 후지다) 본사에서 비서과장과 해외재무과장 등으로 근무하다 지난 84년 서울 주재소장으로 발령나 서울 생활이 시작됐다. 그리고 다음해 그랜드 하얏트호텔을 운영하는 서울 미라마 이사가 됐다.

오자와 고문은 1천여 호텔직원들에 무엇보다 투명한 사명감과 봉사정신을 강조한다. 호텔업은 건물이나 룸 등 하드 부분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손님에 대한 봉사정신(소프트웨어)이 더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투철한 사명감과 직업의식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오자와 고문이 18년간의 호텔재임기간 동안 가장 잊혀지지 않는 일은 몇년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방한시 있었던 호텔 보일러 폭발사건이다.

당시 방한하는 클린턴 대통령이 하얏트호텔에 묵게돼 있었는데, 갑자기 보일러가 폭발하는 바람에 투숙이 취소됐다. 이 사고로 보일러공이 다치고 클린턴 대통령은 하얏트 호텔이 아닌 다른 호텔로 옮겼지만 사고가 그 정도에 그친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그는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 그 사고로 복구작업을 하느라 영업이 3개월간이나 정지돼 호텔경영에 막대한 차질을 빚었다.

“중국 격언에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말이 있습니다. 화를 당한 것이 오히려 복으로 바뀐다는 뜻이지요. 우리 호텔은 그 사고가 있은 후 직원들이 똘똘 뭉쳐 복구작업을 하게됐고, 이런 과정에서 애사심이 깊어져 오늘의 햐얏트호텔로 성장한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趙喜坤,조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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