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5월호]

김정일 답방 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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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南時旭 (남시욱 언론인)

‘전쟁은 없다’는 발언 시비

지난 4월 3일 임시국회에서 행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대표연설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은 전례 없이 험악한 것이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국회에서 야당 총재가 정부를 비난하는 연설을 했을 때 여당 대변인이나 청와대 대변인이 반박하는 논평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으나 이번처럼 청와대측이 정식 발표를 통해 뼈에 사무치는 듯한 어조로 공식 대응을 보인 것은 그 예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청와대 박준영 대변인은 5일 공식브리핑에서 “이 총재의 연설은 대안은 물론 진실에 바탕 한 것이 거의 없다”고 주장한 다음 “정치지도자로서 양식과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격렬하게 비난했다. 박 대변인은 이 총재의 언명 중 “김 대통령이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다’고 말한 것은 주한미군이 필요 없다는 뜻이냐”라는 대목이 진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변인에 의하면, 김 대통령은 작년 6월 15일 평양방문을 마치고 돌아와 행한 대국민 보고에서 “우리 국민이 더 이상 전쟁은 없다…는 각오를 가지고 북한을 대해 달라”고 말했을 뿐이며, 주한미군은 통일 후에도 있어야 한다고 북한 김정일 위원장에게 말해 동의를 얻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총재가 김 대통령의 발언을 거두절미하여 왜곡했다는 의미이다.

김 대통령의 그 날 보고 중 문제의 대목 전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이 “더 이상 전쟁은 없다. 적화통일도 용납하지 않지만 우리도 북한을 해치지 않겠다. 반드시 같이 공존공영해서 우리 한 민족이 한번 새로운 21세기에 같이 손잡고 크게 세계 속에서 일류 국가로 웅비해 보자. 주변 4대국이 이제는 제국주의가 아니라 전부 우리 시장이다. 한민족이 기지고 있는 뛰어난 지적 기반, 문화적 기반을 가지고 정보화시대에 지식기반시대에 이런 거대한 시장을 개척해 나가자” 하는 각오를 가지고 여러분께서 북한을 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더 이상 전쟁은 없다”는 대목이 어떤 의미로 쓰였느냐 하는 점이다. 청와대측 주장대로라면 이 대목의 진의는 “더 이상 전쟁은 없다”라는 예측이나 전망이 아니라, “더 이상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국민적 각오와 결의를 강조한 것이 된다. 그러나 위 문장을 훑어보면 ‘각오’ 운운은 “적화통일도 용납하지 않지만 우리도 북한을 해치지 않겠다…” 이하의 공존공영 대목에 걸린다고 보는 것이 정상적이다. 결국 청와대 말대로 라고 하더라도 표현의 미숙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다.

평화에 대한 장비 빛 전망

그런데 김 대통령은 열흘 후 6·25 제50주년 기념사에서는 “저는 말했습니다.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6·25와는 또 다르다. 극도로 발달된 대량실상 무기에 의해서 민족은 공멸한다. 우리는 이제 적화통일도 흡수통일도 꿈꾸어서는 안 된다. 오직 양측이 다같이 상생하는 평화공존 평화교류 평화통일의 길을 가야 한다’고 역설했으며, 북측도 이에 공감했다는 것을 저는 여러분에게 보고하는 바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해 8월 1일 남북정상회담 사진전(寫眞展)에서의 축사에서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전쟁의 위협을 막고 남과 북이 평화공존의 틀을 마련한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이 땅에서 전쟁의 비극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되며, 한반도의 평화공존과 번영을 위해 남과 북의 정상이 함께 노력할 것에 뜻을 같이 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또 8월 30일의 새천년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에서는 “저는 6·15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두 번 다시 동족끼리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 전쟁의 원인이 되는 적화통일이나 흡수통일 그 어느 것도 꿈꾸지 말아야 한다…’고 제안했으며 김 위원장의 전폭적인 동의도 얻었습니다”고 밝혔다.

이러한 김 대통령의 말을 종합해 보면, 그의 장미빛 대북인식이 잘 나타나있다. 그의 말은 그 자신과 김정일 위원장과 합의로 이제 전쟁은 없으니, 국민들은 오로지 남북의 공존공영만을 생각할 각오를 하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을까.

이상징후의 남북관계

김 대통령 말대로 김정일이 어떤 경우에도 전쟁이나 남조선 혁명을 통한 적화통일을 하려는 의사를 가지지 않았다면--즉 남측과 평화공존을 할 의지가 있다면--당연히 평양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남한을 답방하고 남북관계를 한 단계 높여야 한다. 아무리 늦어도 6·15평양공동선언 제1주년이 되는 이번 6월까지는 서울을 방문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여러 징후들은 그의 서울 방문 가능성에 부정적이다. 이미 합의되었던 각종 남북회담 일정이 아무 이유 설명 없이 취소되는가 하면 북경의 한반도 소식통을 인용하여 김정일의 연내 답방이 어렵다는 언론보도도 나왔다.

이와 관련하여 김정일이 지난 번 김 대통령의 방미 과정에서 실망하여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주장이 있다. 이 때문에 그가 지금 불쾌감의 표시로 남측에 대해 무례하게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건 저렇건 우려할 사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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