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5월호]

지금 改憲(개헌)타령할 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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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宋孝彬 편집위원(송효빈 한국기자협회 고문)

失業者(실업자)는 거리를 헤매는데…

을씨년스런 날씨에다가 경제가 어려우니 고통받는 것은 민초다. 미국경제의 침체와 일본의 장기불황은 엔화의 급락과 달러화의 폭등을 가져왔고 한때 주가가 500선까지 붕괴됐다. 23개월만의 수출감소와 함께 물가마저 불안, 나라 살림에 적신호가 켜졌다. 거기에다 대우그룹이 무너지고 현대마저 파산지경에 이르게돼 1백만명이 넘는 실업자들이 거리를 헤매고 있다.

이런 판국에 정치권이 민생문제는 제쳐둔채 한가롭게 개헌론에 불을 당기고 있으니 짜증이 난다. 경제파탄과 정국의 난맥상이 5년 단임을 규정한 현행헌법 탓이란 말인가. 총체적 위기와 단임제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가. 눈앞에 大權만 보이고 백성의 신음소리는 들리지 않는가. 한심스럽다.

현행헌법은 87년 전두환정권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적 저항에 굴복, 간선제 체육관 대통령선거를 직선제 5년 단임으로 바꿨다. 현행헌법의 장점은 1인 장기집권에서 오는 폐해를 막을 수 있고 여야로의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높여준데 있다.

성군 아닌, 폭군 8년 重任은 지겨워

개헌을 공개적으로 맨처음 제기한 사람은 한나라당의 김덕룡 부총재다. 그는 지난달 22일 정·부통령 중임제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여당의 중진과도 만나 논의하겠다고 폭탄발언을 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당의 이인제와 김근태 최고위원이 김 의원이 불을 지핀 개헌론에 부채질을 했다. 한화갑, 김근태 최고위원과 박상규 사무총장까지 가세했다. 자민련도 변웅전 대변인을 통해 내각제를 포함해서 개헌문제를 공론화하자고 거들었다.

개헌론은 차기대권에 몰두하는 제2인자가 자기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당론과 배치되는 소리를 내거나, 재집권을 위한 여당이 전국 득표전략과 맞물려 정·부통령의 짝짓기 개헌론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 명분을 얻지 못해 국민으로부터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개헌론은 시의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명분도 없고, 물리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더 좀 자세히 개헌론의 부당성을 지적해 보자.

첫째 권력구조를 바꾸는 개헌문제는 특정 정당과 정치인의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서 제기돼서는 절대 안된다. 그런데 당권을 장악하지 못한 비주류가 제기하고 있는 개헌론은 국가보다는 개인의 정치적 입지를 높이기 위해서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명분이 없다. 특히 대권주자가 많은 여당에서는 정·부통령제로써 지역연합의 가능성을 높여주고 또 대통령 아니면 부통령 후보라도 돼보겠다는 심산에서 개헌을 들고 나왔다고 보여진다.

정·부통령제가 지역감정을 해소할 수 있다고 하나 영호남의 짝짓기 연합후보는 오히려 전국민을 지역선거에 끌어들이는 역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둘째 중임제가 레임덕현상을 막고 정권의 안정적 운영과 책임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있으나, 5년 단임제로도 차기정권 재창출에 혈안이 되고 있는 판국에 4년 중임제로 헌법을 뜯어고치면, 큰 하자가 없는 한 현직대통령의 중임은 따놓은 당상일 것이고, 첫 임기 4년 내내 재선을 위해 선심행정에 기울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5년 단임이 8년 단임과 같은 꼴이 되기 십상이고 정권교체에 대한 신선한 기대도 없어진다. 훌륭한 성군이야 8년도 모자라지만 민심을 떠난 폭군은 5년 단임도 너무 길고 지겹다. 레임덕은 정권의 도덕성이 상실됐을 때 발생하는 자연현상이다. 이를 막으려면 국민을 하늘처럼 받드는 깨끗한 정치를 이룩하는 길 밖에는 다른 왕도가 없다.

셋째 대통령의 제왕적 군림은 단임제 때문이 아니며, 오히려 우리나라 대통령의 정치적 후진성에서 오는 통치행위의 그릇된 관행 때문이다. 부통령제로 대통령의 독선과 군림적 자세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다. 제1공화국때 이승만 대통령과 이시영 부통령과의 ‘시위소찬론’을 보면 알 수 있다.

필요하면 대선에서 심판 받아라

국민들은 개헌하면 우의, 마의를 동원한 발췌개헌안과 사사오입 개헌 등 독재종권의 정권 연장을 위한 권모술수를 떠올린다. 결국 실현성이 희박한 개헌론은 야당분열의 빌미만 제공하여 이합집산을 통한 정계개편의 실마리가 되기 십상이다.

지금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데다, 벌써부터 임기말 레임덕현상까지 겹쳐 힘없는 백성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정치권이 진정으로 국민주권을 존중한다면, 더 이상 개헌문제로 국정을 어지럽히지 말라. 물론 5년 단임제가 지고지순한 헌법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행헌법이 지금으로써는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지 않은가.

국가 장래를 위해서 중임제 개헌이 꼭 필요하다면, 내년 연말 대통령선거때 당당히 선거공약으로 내세워 국민의 심판을 받아라. 지금 총체적 난국으로 나라의 대들보가 무너져 내려앉을 판국에, 민생문제의 해결엔 눈감은 채, 현행헌법을 어떻게 뜯어고치는 것이 대통령이란 안방자리를 차지하는데 유리할 것인가에 골몰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대권을 꿈꾸는 여야 정치인들이 민의를 무시하고 개헌문제를 정략적 목적으로 계속 끌고 간다면, 준엄한 국민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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