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호수… 좌파 생떼, 거짓의 악취
국정원마저 남파사실 거부감에 놀라

▲ 광주사태 당시의 5.18 무장 시민군들의 모습.

[이코노미톡뉴스=배병휴 회장] 1980년 5.18 광주사태 시 남파됐던 북한 특수군 출신이 뒤에 탈북하여 증언한 5.18 체험담이 ‘보랏빛 호수’라는 제목의 논픽션으로 출간됐다. (2017.5. 비봉출판사) 주인공 정순성(가명)씨는 당시 북한 1010 군부대 전투원으로 이름 대신에 ‘019’ 번호로 남파되어 파견대장 호위역할을 맡아 임무수행 후 북으로 돌아가 김일성으로부터 공화국 영웅 칭호와 메달을 받았다.

5.18 남파 사실 자백이 죄가 되어…

정씨는 북한에서 40년, 남한에서 12년을 살아온 실제 상황을 사실대로 증언했다는 점을 몇 번이나 강조한다. 특히 북한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5.18 사태 시 남파 사실을 말한 것이 오히려 죄가 되어 국가권력, 좌파 정치권, 일부 언론으로부터 린치 당하고 사기꾼으로 불리며 조롱과 규탄의 대상이 됐노라고 말했다.
그는 탈북 후 국정원 ‘대성공사’에서 조사받을 때 광주사태 개입사실을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자백했을 때는 마음이 가뿐 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조사관이 “사회에 나가 광주사태 남파 사실을 이야기 하겠느냐”고 묻길래 미리 짐작한 사실이 있어 “그게 무슨 자랑거리라고 말합니까”라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이에 조사관이 “옳게 생각했소. 그런 말을 해도 믿어줄 사람도 없고 오히려 국군이나 시민을 죽인 살인자로 낙인 찍혀 재판받고 감옥으로 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예 서약서 쓰고 하나원으로 이관되어 교육 받고 사회로 진출하여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 있다고 말한다.
주인공 정씨의 체험담을 ‘보랏빛 호수’라고 표현한 것은 “어쩌다가 나라가 이토록 역겨움이 진동하는 호수처럼 변했느냐”는 한탄으로 이를 고발하는 심정으로 출간했다는 뜻이다. 그는 5.18 관련 진실증언 이후 무려 350여개 관련 단체들로부터 고소, 고발당하고 SNS에서는 ‘역적’과 ‘애국자’로 뒤섞여 논란의 대상이 되어 있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 시민군들 다수가 군복을 입고 지프차와 군용차량을 타고 있었기에 광주 시민들은 군인과 시민군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국정원이 왜 북한군 남파증언 거부할까

정순성씨에 앞서 그의 여동생 정순애씨는 3개월 먼저 태국을 거쳐 입국하여 국정원 대성공사 조사 때 이미 “오빠가 5.18 때 광주로 파견되어 활동했었다”고 증언했다.
정순애씨는 이때 뜻밖에도 조사관이 “그런 말을 누가 해요”라고 반문하기에 “오빠한테서 직접 들었다”고 말했지만 “그건 북한 당국이 꾸며낸 거짓말”이라고 반박하는데 놀랐다. 그래서 다시 “오빠가 혼자 아닌 200여명과 함께 파견됐으며 그 일로 해서 김일성으로부터 공화국 영웅 칭호도 받아 메달과 기록문서가 집에 있었다”고 거듭 밝혔지만 조사관은 끝내 북측의 날조극이라 우기면서 “사회에 나가 그런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마시라”고 주의를 주더라고 증언했다.
정순애씨는 첫날 4시간에 걸친 조사에 이어 다음날, 또 다음날 계속 조사를 받은지 7일째 되는 날은 진술서를 작성하여 손도장을 찍으라고 해서 그냥 찍고 하나원으로 이관됐다. 그런데 진술서를 다 읽어봐도 오빠가 광주사태 때 파견됐었다는 증언이 한마디도 기술되어 있지 않았다. 순애씨는 이때 “참 이상하다. 국정원이 왜 오빠의 남파사실을 그토록 부정하려는지 의심스럽다”고 생각했노라고 증언한다.

김대중 대통령 만들어야 연방제 통일

한편 정순성씨는 북에서 고향 친구의 딸이 중국 가서 치료받을 수 있게 도와준 사실이 드러나 국가안전보위부 조사를 받고 당원자격 박탈 및 출당, 회령시 보안서 과장직 해임 처분을 받았다. 이어 수갑을 채워 정치범 수용소인 22관리소로 호송되는 과정에 죽기살기로 호송원들을 제압하고 탈주하여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도피했다. 이 과정에 부인과 딸을 잃고 여동생을 먼저 한국으로 보낸 후 자신도 석달 뒤에 입국한 것이다.
정순성씨는 국정원 조사 때 자신이 25년간 간첩양성 등 전 과정에 참여하여 ‘인간병기’로서 역할을 했노라고 솔직하게 실토했다. 구체적으로 회령시 남문고등중 3학년 때인 1976년 8월 군에 입대하여 대남 간첩훈련소들을 총괄하는 중앙당 제5과 소속 112훈련소에서 온갖 강훈을 다 받았다. 1년여 후에는 중앙당 연락소 제2처 전투정찰대로 배치되어 제1처 요원들의 전투진입 작전(남조선 침투)과 복귀과정까지 신변보호 임무를 수행했다.
광주사태 남파는 1980년 5월 19일 비상소집으로 시작되어 정씨가 속한 12명 조는 파견대장 호위대 역할을 맡아 광주에서의 북한특수군 작전을 전반적으로 지원했다.
정순성씨가 광주사태 파견 전투병으로 선발된 것은 1010 군부대 문제심 중장(한국군 소장)이 당 중앙군사위 비상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와 김일성의 ‘우수 전투원’들을 선발하라는 지시에 따른 조치였다. 당시 비상회의 때 김일성은 “남조선 정세는 박정희가 죽고 나서 하늘이 준 기회”라고 말하고 “그동안 남조선 혁명가, 민주인사들에게 투자지원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가 남조선을 타고 앉든가, 아니면 김대중을 남조선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연방제식 통일을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대중은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도록 물심양면으로 많이 지원해 두었다”고 밝혔노라고 한다.

무등산 증심사 중 손성모 폭동길 안내

정순성조가 속한 파견대장 호위팀 등은 황해남도 장연군 장산곶 해안을 통해 남파됐다. 광주시에 진입한 후 조장이 앞장서서 안내한 곳이 알고 보니 무등산 증심사라는 절이었다. 절간에 들어서자 까까머리 중이 남조선 말씨로 파견대장한테 깍듯이 인사한 후 서로가 포옹했다.
이를 보고 정순성씨는 “저 중도 우리편 사람이구나”라고 여겨 안심했다. 이어 문제심 대장이 중과 대화할 때 ‘019’번인 정순성씨는 입구에 보초를 섰다. 이때 문 대장이 “7번 동무, 수고가 많았소. 김일성 동지께서 공화국 영웅 칭호를 내렸소”라고 말하자 중이 너무나 감격하다면서 굽실 거린 후 그동안의 전투성과를 보고했다.
각 경찰서 습격으로 총 5,400정 노획, 시민군 무장, 아시아자동차 공장 습격으로 장갑차 4대, 트럭, 버스 등 300대 탈취, 폭약저장소의 폭약 10톤, 도화선 4만대, 뇌관 35만개 확보 등등.
이날 무등산 증심사에서 ‘7번 동무’로 불린 중이 바로 손성모로 북한특수군이 각 곳을 습격하고 폭동을 확산토록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이듬해인 1981년 문경새재에서 체포되어 19년간이나 감옥살이를 겪었다. 그러다가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이 그의 석방을 요청하여 1999년 가석방, 2000년 비전향 장기수로 북송됐다. 이에 김정일은 그에게 조국통일상과 공화국 영웅 칭호를 부여하고 대대적인 평양시 환영 대회를 베풀었다.

광주를 ‘골육상쟁 마당’으로 작전성공

▲ 북한의 평양룡성 기계공장에서 만든 1만톤 프레스에 ‘ 5.18 청년호’ 라는 휘호가 박혀 있다.

광주에서의 작전은 호위팀에 대한 집합명령이 떨어진 후 파견대장 작전지휘로부터 개시됐다. 대장일행이 도청 광장 가까이에 이르자 평안도 억양의 장발 청년이 거수경례로 맞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호위팀이 주변을 관리하는 사이 대장일행은 지하로 내려 2시간에 걸쳐 문제심의 작전지시가 하달됐다.
현지 인민군 타격대 지휘관 보고를 받은 문제심이 제1 타격대는 공수부대 군인들, 제2 타격대는 시민군 쪽으로 겨냥, 사격함으로써 양쪽 사망자가 나오게 하라고 지시했다. 이로부터 그의 작전계획은 기가 막히게 돌아갔다.
단번에 광주시는 마치 골육상쟁(骨肉相爭)의 마당으로 변했다. “전두환이 광주시민 70%를 죽여도 좋다고 했다”는 악성 유언비어가 퍼져나갔다. 또한 “전두환을 찢어 죽이자”는 플래카드도 만들어 게시됐다.
문제심의 현지작전은 1980년 5월 30일에야 종료되어 철수작전을 통해 문경새재를 거쳐 6월 3일 휴전선 철조망을 절단, 북으로 귀환했다. 주인공 정순성이 월북과정의 부상을 치료받고 퇴원하자 1010 군부대 당 위원회가 그의 5.18작전 공로를 평가하여 조선로동당 ‘화선입당’을 결의했다. 이는 특별공로 입당으로 후보당원 기간 없이 바로 입당을 승인한 특례이다.
이어 6월 15일에는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김일성, 김정일이 참석한 5.18 광주폭동 총화 행사가 열렸다.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추도사를 낭독한 다음 김일성이 “1주일간 광주시를 인민해방구로 만들어 미제와 전두환 도당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고 치하하고 “작전 중의 전사자들에게는 모두 공화국 영웅 호칭을 부여하고 ‘영웅묘지’를 만들어 안장시키라”고 지시했다.
정순영이 공화국 영웅 메달을 받는 순서에 이르자 김일성이 “몇 살이냐”고 물어 “19세”라고 답변하자 장하다며 어깨를 두들겨 줬다. 실로 정순성은 6.25전 이후 최연소 공화국 영웅 군인으로 기록됐다. 정순성이 속한 호위조의 조장 리상국 상위는 3중의 영웅 메달을 기록했다.
그는 1977년 남조선 이리역 화약폭발사건 공로, 5.18작전 공로 등 2개의 영웅 메달을 받고 얼마 뒤에는 다시 미얀마 아웅산 묘지 폭파사건 공로로 3번째 영웅 메달을 받았다.

▲ 당시의 박충훈 국무총리가 광주사태 부상자들을 위문방문 했다. <사진=국가기록원>

김일성에 의한 5.18 영웅 조작들

그로부터 북한은 국가차원에서 5.18기념 각종 행사를 진행해 왔다. 사실상 김일성과 김정일이 주관한 행사였기에 실제 광주에서 보다 북한의 5.18 행사가 더욱 성대하게 치뤘다.
1983년 3월, 김일성이 강원도를 시찰하면서 특수 밸브를 생산하는 문천기계공장을 방문하여 ‘나라의 보배’라고 추켜세웠다. 이에 공장 지배인이 공장 명칭을 지어달라고 건의하자 김일성이 ‘5.18기계 공장’이라고 작명해 주었다.
공장 측에서는 이에 감동하여 높이 5m, 너비 10m의 화강석 돌문을 세우고 ‘나라의 보배 공장’이라는 김일성의 어록을 새겼다. 이를 계기로 5.18 브랜드는 곳곳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룡성기계 공장의 1만톤 프레스는 ‘5.18 프레스’, 철도 무사고 견인초과 운동은 ‘5.18 철도 무사고 운동’, 전기기관차는 ‘5.18 기관차’ 등으로 모조리 개칭되기 시작했다. 또 각 시군별로 매년 5.18 기념행사를 갖고 파철, 고철수집으로 ‘5.18 땅군 헌납운동’도 전개했다.
특히 각 시도와 공공기관들은 당위원회 주최로 5.18 광주폭동 희생자들을 영웅으로 추모하는 행사를 대대적으로 갖는다.

진보의 탈 쓴 악성 바이러스의 생떼

이 책의 필자 이주성씨는 부친이 북한 군수동원총국에서 무기생산-설계 책임자 지위에 있다가 김일성의 식량 배급제를 비판한 죄목으로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로 찍혀 출당, 철직되어 온 가족이 평양에서 회령시 유선탄광으로 강제 이주 당했다. 이에 이주성씨도 탄광촌에서 고등중학을 졸업 후 탄광, 건설 노무자, 어부 등을 거쳐 1987~94년에는 원산시의 문천기계공장(현 5.18기계공장)에서 근무했고 95~2002년에는 회령시의 전동기 공장에서 근무하면서 중국과의 보따리 무역을 익혀 무역회사를 설립 경영하기도 했다.
그 뒤 2006년 6월 탈북, 한국으로 입국하여 현재는 북한인권단체를 설립 운영하며 목장도 경영하고 작가로도 활동한다. 실화 장편소설로 ‘김일성, 광주사태 북한군 남파 명령’도 저술, 간행한바 있다.

저자는 ‘보랏빛 호수’ 머리글을 통해 자신이 직접 참가하여 보고 들은 진실을 증언했는데도 진보의 탈을 쓴 ‘악성 바이러스들’이 억지와 생떼질로 대한민국 국군을 살인자로 몰고 반면에 살인, 방화, 약탈, 관공서 습격, 국군 사살 등 폭도들을 민주화 열사로 추대하려 드니 ‘거꾸로 된 과거사’를 바로 잡고 싶은 심정이 간절하다고 강조했다.
저자는 보랏빛 호수의 발원지가 바로 대한민국의 전복을 노린 김일성과 그 앞잡이들의 모략에 의한 5.18사태라고 규정하고 그들 ‘악성 바이러스들’의 떼법으로 5.18 특별법이 제정되고 ‘5.18 민주화 운동’ 개선장군의 갑옷을 도둑질해 뒤집어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저자는 그들이 바로 5.18 특별법에 빨대를 박아놓고 국민 혈세를 빨아먹는 꼴에 비유하면서 ‘5.18 유공자 가산점 10%’로 각계에 진출하여 문어발식 이권을 챙기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저자는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그 무엇으로도 영영 가릴 수는 없다고 단언하면서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참담한 보랏빛 호수를 거르고 정화시켜 청결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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