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우는 아기 예뻐 않는 사회

인구절벽 잿빛뉴스 속
선심공약 꽃빛정책들
문제는 우는 아기 예뻐 않는 사회

글/전성자 (한국소비자교육원장)

잿빛 뉴스

2017년 미래 전망이 잿빛이다. 우선 인구절벽 원년이란다. 그에 따른 소비절벽의 위협도 받아놓은 밥상 같다. 2012년 이래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015~16년 이태 우리의 생명선인 수출이 6.1% 감소하면서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금년도 전망도 우울하다. 1958년 이래 역성장을 기록한 점은 예사롭지가 않다.
올해부터 생산인구 감소라는 초유의 타격도 우리를 당황케 한다. 그러리라 예견했던 바지만 막상 들어서고 보니 맘이 허탈하다. 15~64세의 생산가능인구가 2016년 3,763만 명을 변곡점으로 금년부터 내리닫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우리 활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노년층 점유비가 14%로 커지면서 고령사회로 들어선다는 보도이다.
출산율이 1990년대 1.57, 2001년 1.3, 2010년 1.23으로 낮아지고 있다. 지금도 1.2~1.3 부근으로 세계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 내리막은 더욱 비탈질 거란다. 더 우울케 하는 것은 작년 출생아수가 역대 최저인 40만6천명, 금년엔 40만 명 선이 깨질 가능성이 크단다.
재앙이다 싶다. 더 무서운 예고도 풍문으로 들은 적이 있다. 앞으로 한 700년쯤 후에는 “한국인 인구 제로”시대가 오리라는 못 된 예상을 한 이도 있었단다. 분명 다시 말해도 재앙이다.

우는 아기를 예뻐하지 않는 사회

이 재앙을 넘을 방도는 한 가지, “아기를 많이 낳자!”이다. 하지만 아기를 구경할 수가 없다. 우는 아기는 더더욱 볼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은 아기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한다. 입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내심은 그렇지 못하다.
아기 엄마들은 아기를 데리고 외출도 하지 못 하는 형편이다. 민폐가 될까봐 그렇다. 아기를 데리고 모임이나 방문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하는 것으로 안다. 그래 애기를 봐줘야 할 사람이 부부 말고 꼭 따로 가정에 있어야 엄마가 육아 고립을 면할 수 있다. 애기를 데리고는 보통식당에도 가기가 불편하다. 아기와 동행하려면 상류 생활을 해야 한다. 아기 바구니와 아가방 이나 탁아실을 운영하는 공공시설이나 교회나 법당은 별로 없다.
우선 사람들이 아기를 싫어하는 것 같다. 참아주지 못한 사람들이 사는 고장이다. 웃는 아기 잠자는 아기는 예쁘다고 신기한 듯 들여다 본다. 우는 아기는 질색이다. 공공의 장소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나면 아기 엄마를 교양 없는 여자로 흘겨본다. 데리고 나가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다. 온 방안 사람들 상이 찌푸려진다. 아이 안고 있는 여성은 기피의 대상이다.
아이 낳기 좋은 나라들은 안 그런다. 아기 울음소리가 나면 주변 모든 사람이 함께 미소 지어 준다. 아기 엄마가 민망해 하지 않도록 연민의 선한 표정을 보낸다. 지역사회 모임에는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것이 예사로 양해하는 듯하다. 아기울음소리를 감상하는 듯한 표정이다. 아이 울음소리를 가지고 또 하나의 대화를 나눈다.
자가용 없이는 아이를 낳지 말라는 것이 여성 사회의 돌림 말이다. 순산했다하더라도 산부인과를 떠나면서부터 고생과 비용이 쏟아진다. 감내해야 한다. 그런 돈 나올 구멍을 마련해 놓지 않고는 아이 낳기는 다른 데 가서 알아보란다. 조리원을 나오면서부터가 걱정이다. 주거 안정이 없는 사람은 아이 낳을 엄두를 내지 말란다. 아기 때 만 생각해 봐도 그 정도다. 그래 서민층 가임부부들은 애 낳기를 아예 포기한다. 대화할 때마다 “아직은 안돼요~”다.
아기 낳는데 선결할 문제들이 태산처럼 앞서있다.

선심 공약 보고 아이 낳으려 할까?

지난번 대선의 주요 이슈는 복지 확대였다. 올 대선의 열기는 “아기 낳기 좋은 세상”이란 슬로건에서 불꽃이 튀길 듯싶다. 후보마다 묘책이 화려하다. 아이 낳기 좋은 사회란 곧 모든 사람들이 살아 봄직한 사회를 의미하는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애기 까지도 잘 태어나 어렵지 않게 자라고 모두가 축복해 주는 사회란 말 풀이가 될 것이다. 그 밑그림이 곧 대선 경쟁력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단순한 프로파간다가 아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니즈를 읽은 잠룡들은 여러 면에서 원인을 진단해 내고 있는 듯하다. 일자리 늘리기에 방점을 찍는 이, 주택 문제에서 길을 찾는 이, 아기 기르기 노역을 양성이 평등하게 분담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 양육비 국가 부조를 늘려야 한다는 이, 경력 단절이 출산기피 원인이라는 이, 등등... 그래서 여러 가지 “출산장려의 묘약”을 내세우고 있다. 어떤 이는 임금 감소 없는 워킹맘 근무시간 단축을, 다른 이는 민간기업의 육아휴직 확대를 최대 3년간 3회까지 나누어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안들을 주 공약으로 내세웠다. 밤이 있는 사회에 눈을 맞춘 이도 있다. 남성의 육아휴직을 의무화하는 ‘슈퍼우먼 양산예방법(?)’도 등장했다.
문제는 현실성이다. 제도나 법이 있어도 적용 되지 못하고 사문화되는 판에 새 공약 더 만들어 효과 나겠느냐는 핀잔이 여성들의 입살 이다. 육아휴직 제도가 있다지만 인사상 불이익이 겁나고 대체인력 확보가 어려워 워킹맘 10명 중 4명이 사용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복직 후 회사에 자리 잡을 가능성이 60%도 되지 않는다. 남자가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따라오는 ‘못난 놈’이라는 뒷 담화를 견뎌낼 자신이 없어 웬만한 뚝심 아니면 엄두를 못 낸다. 현실은 부실한 데도 새 공약이 너무 찬란하다. 사측엔 물어도 안보고 말이다. 워킹맘이 과로도 호소하지 못하는 판인데 공약이 화려하다 해서 여성들이 표도 주고 아이도 낳자고 자원하고 나설지 모르겠다. 문화가 문제인데 거기엔 눈이 빠졌다 싶다.

독립적 사회문제란 없다

올 거다, 올 거다 하던 인구절벽은 마침내 오고야 말았다. 출산율을 높여보자고 고령사회의 도래를 조금이라도 늦춰보자고 무던히도 목소리를 높였지만 예견보다 좀 빨리 오고 말았다.
사회경제적 문제들은 단일 원인에서 발생하는 현상은 없다. 초저출산 문제만 해도 그렇다. 많은 사람들은 결혼기피현상 때문이라고 단순 정의하려 한다. 이 문제도 헤집고 들어 가보면 사회 경제적 주체간의 능력 양극화, 소득 양극화, 실업대란, 비정규직의 급증, 가계부채, 주택문제와 하우스 푸어, 노사문제와 고용·임금제도, 7포 세대라는 용어로 표현되는 청년문제, 답이 없는 입시과열, 높은 과외비와 생활비에 따른 가계압박, 부실한 사회부조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이 상호 작용하고 연계된 결과로 발생한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나타나고 있는 “사회적 타협”의 어려움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였다.
원인이 복합적이라면 그 해결 방안도 종합적 프로그람을 상호 항진적이 되도록 처방해 내야 할 것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 청춘 남녀들이 즐겁게 사랑할 수 있고 무서움 없이 결혼을 할 수 있고 기쁨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이런 삶을 맘껏 축하 해주는 문화와 의욕을 높여 줄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고대해 본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11호 (2017년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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