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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기의 법률광장(2)]

글/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서울시 소비자정책위원)

형사범죄에는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라는 것이 있다. 반의사불벌죄라는 것은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수사기관이 수사해서 재판을 받게 하는 등 처벌할 수 있는 죄이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표명할 경우 처벌을 못하는 죄를 말한다. 폭행죄가 대표적인데, 피해자의 의사 표시 없이도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소, 고발이 있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친고죄(親告罪)'와 구별된다.

폭행과 상해 차이는 상처 유무

폭행사건과 상해 사건의 차이는 똑같이 맞았어도 상처를 입었느냐의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즉 상해진단서가 있으면 폭행죄가 아닌 상해죄로 처벌하는 것이다(실무상 폭행치상죄로 처벌하는 경우는 드물고 상해죄로 처벌한다). 그런데 앞서 말한 것처럼 폭행죄는 반의사불벌죄이기 때문에, 피해자와 합의만 되면 처벌을 받지 않는다. 반면에 상해죄는 피해자와 합의가 되더라도 처벌받는 범죄이다. 상해진단서라는 종이 한 장 때문에, 합의를 하고도 전과자가 될 수 있다.

상해진단서가 고소장에 첨부되거나 법정에서 제출되면, 일단 가해자가 이의를 하지 않는 한 검사든 판사든 상해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전문가의 의견이기 때문이다. 가해자 측(피고인)이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그들은 상해진단서를 믿는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의 변호인이 이 상해진단서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면, 재판장이나 공판검사의 표정이 굳어지고, 변호인에게 강렬한 눈빛을 보낸다. 재판장은 “꼭 진단서를 증거로 하는데 부동의 하셔야 겠습니까?”라고 묻는다. 변호인이 진단서를 증거로 하는데 동의하지 않으면, 의사를 법정에 불러서 진단서를 진정하게 작성한 것인지를 물어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사들은 도통 법원에 증인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는다. 병원에 매여 있는 몸이기 때문이다. 법원에서 증인 출석 거부에 대한 과태료를 부과해도, 출석을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재판이 지연되기 때문에, 법원에서는 변호인이 상해진단서를 증거로 하는 것에 부동의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피고인의 입장에서 자신이 가한 폭행이 경미한데도 상대방이 상해를 입었다고 나오면, 상해진단서를 불신할 수밖에 없다. 이런 불신의 원인이 되는 것이, 형사사건에서 많이 등장하는 이른바 ‘2주 짜리 상해진단서’이다. 상해진단서에 기재되는 상해의 일시·장소, 상해의 원인은 환자의 진술에 따라 기재한다. 환자가 상처가 난 원인을 ‘타인의 구타’라고 말하면 의사는 그대로 상해진단서에 기록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해진단이 2주가 나왔다고 2주를 입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환자가 아프다고 주장하는 부위나 상처가 난 부위를 의사가 진단하고, 이 상처가 다 나을 때 까지 대략 2주일 정도 걸리겠다고 예측하는 것이 바로 2주짜리 상해진단서이다. 의사가 2주라고 예측을 했어도, 1주일 만에 완치가 될 수도 있고, 3주가 걸려 완치가 될 수도 있다. 예측은 예측일 뿐이다.

상해부위와 관련해 논란이 되는 것이 ‘요추부 염좌’, ‘경추부 통증’ 같은 것이다. 요추부 염좌는 허리가, 경추부 통증은 목이 아픈 것이다. 이 부분은 평소 때도 디스크 등의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부위다. 그러다 보니,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2주짜리 상해진단서를 불신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판례, 상해진단서 증명력 부정

최근에 이런 상해진단서에 대해 주목할 만한 판결이 나왔다. 사안은 다음과 같다. 피해자는 폭행 사건이 있은 후, 병명이 ‘요추부 염좌’로 기재된 2주짜리 상해진단서를 가지고 사건이 발생한 후 7개월이 지난 후에 피고인을 고소했다. 피해자는 병원에서 치료만 받고 진단서를 발급받지 않았다가 고소일 직전에 상해진단서를 발급받았다. 재판에서는 내내 이 상해진단서의 신빙성이 문제됐다.

피해자를 진단한 의사는 ‘방사선 촬영검사 결과 일자형 요추가 확인되기는 하였으나 퇴행성, 즉 노화의 흔적도 보였고 일자형 요추가 있다고 해서 바로 요추부 염좌라는 진단을 내릴 수 없지만 피해자가 요추부 동통을 호소하였기 때문에 요추부 염좌로 진단한 것이며, 통증은 환자가 호소하는 대로만 기록하고 환자가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 요추부 염좌 2주 진단은 얼마든지 나갈 수 있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그리고 피해자는 문진과 방사선 촬영검사 외에 물리치료 등 그가 호소하는 통증에 대해 별다른 치료를 받은 바가 없고, 처방받은 약품도 구입하지 않았으며, 이후 다시 병원을 방문하거나 허리 부위와 관련해 치료를 받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법원은 위 사건에서 상해진단서의 증명력을 부정하면서 “상해진단서가 주로 통증이 있다는 피해자의 주관적인 호소 등에 의존하여 의학적인 가능성만으로 발급된 때에는 그 진단 일자 및 진단서 작성일자가 상해 발생 시점과 시간상으로 근접하고 상해진단서 발급 경위에 특별히 신빙성을 의심할 만한 사정은 없는지, 상해진단서에 기재된 상해 부위 및 정도가 피해자가 주장하는 상해의 원인 내지 경위와 일치하는지, 피해자가 호소하는 불편이 기왕에 존재하던 신체 이상과 무관한 새로운 원인으로 생겼다고 단정할 수 있는지, 의사가 그 상해진단서를 발급한 근거 등을 두루 살피는 외에도 피해자가 상해 사건 이후 진료를 받은 시점, 진료를 받게 된 동기와 경위, 그 이후의 진료 경과 등을 면밀히 살펴 논리와 경험법칙에 따라 그 증명력을 판단하여야 한다”고 기준을 제시했다.

필자는 형사사건의 변호인으로서 위 판례를 환영한다. 물론 과중한 업무량에 허덕이는 하급심 법원에서 위 판례의 기준을 적극적으로 적용해서 재판을 하는 것이 가능한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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