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란 의병장등 충효의 인물들 배출

[이코노미톡]


유엔 사무총장 배출
반석평(潘碩枰) 가문
임란 의병장등 충효의 인물들 배출

 

글/최종인 서울문화사학회 전문위원

 

2006년 10월 13일 CNN은 한국의 반기문 대통령 외교안보수석이 유엔 사무총장에 선임되었음을 전 세계에 타전했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하던 사실이 보도되자, 낭보를 접한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잔잔한 흥분 속에 자긍심을 뿌듯하게 느끼던 순간이었다.
여러 방면에서 세계에 진출한 한국인 가운데 가장 우뚝한 상징적 인물로 반기문이 등장한 것이다. 정통 외교관 출신으로 입신한 그는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외무부에 들어가 인도 대사관 1등 서기관을 시작으로 견실한 승진을 거듭한 끝에 외교통상부 장관에 올라 외교관으로서 화려한 경력의 정점을 찍고, 드디어 세계 외교무대의 중심인 국제연합(Nnite Nations), 곧 UN의 수장인 사무총장에 등극한 것이다. 이 역사적 사실은 한 가문의 광영을 넘어 국가적 영예를 증명하는 것이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사뭇 고양하는 이 시대의 통쾌한 현실이라 하겠다.

▲ 장절공 15대손 (전)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의 고향은 충청북도 음성군이며 광주반씨 장절공 행치파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원래, 반씨(潘氏)는 고려 때 원나라에서 귀화한 성씨로서 기성(거제)을 본관으로 삼아왔는데, 조선개국원종공신 반충(潘忠)이 광주백(光州伯)에 봉해지면서 광주를 관향으로 분파하여 새로운 문중을 이루게 되었다. 조선 중기에 청렴하고 겸공하며 유능한 관리로 이름난 반석평이라는 입지전적 인물이 있는데 이 분이 반충의 5세손이며 유엔사무총장 반기문의 15대조이다.

삼형제의 한양 길과 경천지교

반석평(潘碩枰)의 자는 공보(公父), 호는 송애(松厓), 시호는 장절(壯節)이다. 아버지는 증이조판서 서린(瑞麟)이며 어머니는 회미장씨이고, 형 석정은 대흥현감을, 아우 석권은 영춘현감을 지냈다.
석평 3형제는 전라도 옥구에서 군관을 지내던 아버지를 어려서 일찍이 여의고 어머니를 따라 한양으로 올라오게 된다. 홀로 된 모친 장씨는 남편이 공신가의 자손으로서 현달하지 못하였음을 늘 안타깝게 마음에 새겨, 자식들을 가르쳐 출세시키고자 서울로 이주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한양의 남산골에 어렵게 살 집을 마련한 어머니는 아들들이 공부에 태만하거나 공부를 중단하려고 할 때는 길쌈을 하던 명주의 가운데를 써억 소리가 나도록 잘라내 엄히 경책했다고 한다. 이때의 사정을 모재(慕齋) 김안국은 이렇게 비유하였는바, '모친은 궁벽한 시골에서 서울로 옮겨와 길쌈을 해서 음식과 옷을 마련하여 공부를 시켰는데 마치 맹자와 묵자의 어머니와 같다' 라고 했다. 실로 맹자 어머니의 삼천지교(三遷之敎)에 비견하여 석평의 어머니 회미장씨의 경천지교(京遷之敎)라 한들 무엇이 다르다 하겠는가!

▲ 장절공 반석평 영정.

팔도 감사와 오도 병사

반석평은 중종2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 사헌부 감찰, 공조좌랑, 사간원 정언을 거쳐 경연관으로 참여하다 경차관으로 함경도에 파견되었으며 돌아와 호조, 형조, 예조의 정랑을 역임하고 경흥부사로 나아가는 것을 시작으로 경원부사, 만포진첨절제사, 함경남도병마절도사를 거쳐 병조참의, 함경북도병마절도사 그리고 경연특진관에 이어 충청도관찰사에 제수되었다.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예조참판과 전라도관찰사, 경상도관찰사,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공조참판에 오른다. 이어 동지중추부사, 형조참판, 한성부판윤과 형조판서, 지중추부사 등을 지내게 된다. 이와 같이 8도 방백과 한성판윤 그리고 판서 등을 두루 역임한 청백리였다. 특히 조선왕조에서 8도 관찰사(감사:監司)를 모두 지낸 인물은 함부림과 반석평 두 사람 뿐인데, 반석평은 거기에 더해 5도 병사(兵使:병마절도사)까지도 지낸 매우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그리고 반석평의 생애에 일관하는 선비정신과 애민사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내직에 있을 때에는 균형감 있는 운신으로 정치적 기류에 현명히 대처하고, 외직에 나아가서는 목민관으로서 성실한 인품을 바탕으로 백성 위주의 행정을 펼친 행적을 살펴본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특히 변방의 수령으로 있을 적에는 「관산별곡」이라는 노래를 지어 백성들을 위로하고 그들과 함께 노래를 불러 단합함으로서 야인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였으며 국경의 치안을 안정시키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관료들은 대체로 중앙 정계에 머물기를 선호하고 지방에 파견되는 것을 기피하는 성향이 있었는데, 반석평은 오로지 국가적 소명에 따라 임지를 가리지 않고 경향을 오가며 사명을 다하는 그야말로 충직한 관리의 모범이었다.
반정(反正)으로 임금에 오른 중종(中宗)과 거의 동시대를 살아온 반석평은 사화(士禍) 등 민감한 정치적 사건에 휘말리지 않았고, 북방의 불안한 국경문제를 다룰 때에는 백성의 안위를 우선하여 대비하였다. 그는 조선 역사에 드물게 나타나는 문무 겸비의 올곧은 유장(儒將)으로서 고굉지신(股肱之臣)의 역할에 충실하여 조선중기에 접어든 당시의 불안한 내외 정세를 안정시키는데 기여한 명관(名官)이라 하겠다.

명문가 반열에 선 반씨 문중

유엔 사무총장이란 직책은 국제사회의 민감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세계의 대통령’이라는 권위를 함께 실감케 한다. 대한민국이 배출한 세계적 인물로서 노련한 외교 협상가 반기문 사무총장이 유연한 자세와 겸허한 처신으로 무난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아마도 그의 선조 반석평의 품성과 근실함을 이어받아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반씨 가문에서는 충효의 인물이 많이 배출되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반인후는 반석평의 손자이며 반중인·반중경 형제와 반관해 등은 이순신장군 휘하에서 활약해 15명의 선무원종공신이 나왔고, 정유재란 때에도 순국한 남편을 따라 자결한 부인들이 정렬의 표상으로 <동국삼강행실도>에 수록되기도 하였다. 구한 말 반하경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대로에서 할복자살하여 순국지사로 이름이 나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이 수여되었다. 이와 같이 문중사에 나오는 충효의 역사적 사실들을 기억하면서 오늘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반문(潘門)의 상징으로 올랐으니 반씨 또한 이 시대의 명문가로서 전혀 손색이 없고 당당하다 할 것이다.
반씨 문중의 현대 인물로는 국회의원을 지낸 반재현, 반형식씨가 있으며 양촌장학재단 이사장인 반석홍씨가 실업계에서 활약하고, 학계에는 반성환(경제학박사 서울대교수)&#8231;반병길(경영학박사 서강대교수)씨가, 군장성으로 반준석&#8231;반순렬씨가 있다. 반헌수(검사)&#8231;반용호(경찰국장)씨가, 육영사업가인 반상진(의학박사)와 반영환(서울신문편집국장) 등이 활약하고 있으며, 초대 종로문화원장을 지내고 전통문화의 보전과 계승을 위해 관련단체와 무형문화 기능보유자들을 음양으로 후원하고 있는 반재식씨와 훈민정음연구소장 반재원박사를 꼽을 수 있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10호 (2017년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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