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권 노동부 장관이 18일 열린 '30대 그룹 CEO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경제풍월DB).

[이코노미톡 최서윤 기자] “일자리 늘려 주세요.” 장관이 말했다. 30대 그룹 기업인들은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불경기의 연속이다. 미국 대선 결과 등에 따른 대내외 불확실성은 증가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기업인들 또한 힘들다는 볼멘소리가 높아지면서 장관의 요청은 공허한 메아리로 들렸다.

이기권 장관 “30대 그룹 선도적 노력 필요”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1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30대그룹 CEO간담회’에서 취업난 해소를 위해 상반기 채용계획을 결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장관은 이날 “일자리를 간절히 열망하는 청년들을 위해 부모세대와 노사, 정부, 정치권 모두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공약한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임금체계 개편, 능력중심 인력운영 확대, 일·가정 양립, 비정규직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 등 실천도 당부했다. 그는 “대기업은 직접 채용 근로자 뿐 아니라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근로조건, 산업안전, 고용안정이 개선될 수 있도록 사회적 책임의식을 갖고 적극 노력해 달라”며 “정부는 30대그룹의 실천 노력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가 공개한 2016년 우리 노동시장의 실상은 어둡다. 그간의 만성적·구조적 일자리 문제에 경기부진, 구조조정 등이 더해져 청년·중장년 등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노사관계는 완성차 업체의 장기파업, 공공부문 총파업 등으로 노사분규 건수 및 근로손실일수가 전년대비 증가했다.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구조조정 등 불안 요인도 여전하다. 우려했던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도 고용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에 노동부는 고용창출력을 높이고 격차를 해소하고자 지난해 9월 노사정 대타협을 토대로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할 계획이다. 올해에는 청년·중장년 등의 일자리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노동시장의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노동개혁 확산을 가속화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4차 산업혁명 등 미래의 일자리 준비도 추진 중이다.

이 장관이 이날 30대 그룹 소속 기업인들에게 협조를 요청한 사항은 ▲청년고용 확대 ▲원청·대기업-하청·중소기업간 상생협력 확산 ▲임금체계 및 이력운영 개편 ▲일·가정 양립 문화 확산 ▲비정규직 고용안정 및 처우개선 노력 ▲장애인 의무고용 이행 등이다. 장애인 고용의 경우 직접 고용이 어려운 기업을 대상으로 운영 중인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제도를 적극 활용하도록 했다. 현재까지 삼성·롯데·SK·효성·포스코 등 15개 기업이 표준사업장을 설립했다.

30대 그룹 기업인들 “우리도 힘들다”

이기권 장관의 채용 증가 주문에 30대 그룹 기업인들은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재벌 총수들이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줄줄이 불려 나가는 등 재벌들을 죄인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재벌이라는 이유로 맹목적 비난을 하는 모양새가 갖춰지면서 기업인들의 사기도 한참 꺾인 상태다. 특히 특검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한 데 대한 재계의 충격은 크다.

간담회를 주최한 김경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부회장은 “우리 기업들은 여러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면 줬다고, 안 주면 안 줬다고 기업을 때리고 있다”며 기업인들의 심경을 전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위기론이 대두되면서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와 경총 등 경제단체들은 기업에만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에 불편한 심기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앞서 지난 4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도 일련의 사태에 대해 사과 하면서도 “논란의 중심에 설 이유조차 없는 대다수의 성실한 기업들은 경제주체로서의 활기찬 맥박이 절실한 실정”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한 바 있다.

이날 행사는 ‘30대 그룹 CEO 간담회’였지만 정작 CEO의 참석률은 저조했다. 한화와 두산은 이태종·최성우 사장이, 삼성 강경훈·SK 조돈현·롯데 윤종민·신세계 김정식·KT 이대산·CJ 조면·효성 노재봉·풍산 류시경 부사장이 참석했다. 임원급도 많았다. 현대차 정형중·포스코 양흥열·금호아시아나 오근녕·대우건설 서병운·하이트진로 홍성암·만도 김광현 전무가, 현대중공업 한정동·GS에너지 심성도·롯데제과 정연학·앰코코리아 이경수 상무가 얼굴을 보였다. 박차규 쌍용자동차 전무와 윤재훈 종근당 상무는 이름만 있었고, LG·한진·부영·LS·대림·미래에셋·대우조선해양·현대백화점·S-OIL·OCI·KCC·KT&G 등은 아예 명단에 없었다.

참석한 기업 관계자들도 현상유지를 넘어선 이 장관의 일자리 증대 요청에 다소 난색을 표했다. 김경배 부회장은 국회 입법발의에 우려를 나타냈다. 김 부회장은 “주요국의 금리인상, 보호무역주의 강화, 내수부진, 제조업 위기 등 요인에 정치·사회적 불안까지 중첩되고 있다”며 “대선을 앞두고 기업 경영에 부담이 되는 입법 활동이 우려되는 만큼 합리적인 입법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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