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기 법률칼럼] [이코노미톡]

'비밀녹음'
합법일까 불법일까

글/ 고윤기 로펌고우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이사, 서울시 소비자정책위원)

최근 국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청문회와 각종 방송에서 비선 실세의 녹음 파일이 공개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방송에서는 패널들이 녹음 파일을 분석하며 여러 가지 의견을 내 놓는다. 여기서 드는 의문점 하나. 상대방과의 대화를 함부로 녹음해도 될까? 이 녹음이 증거능력이 있을까?

녹음파일의 증거능력

변호사를 하면서 의뢰인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을 꼽으라면, “녹음하는 것인 불법인가?”라는 것이다. 핸드폰 등 스마트 기기가 발달하면서 녹음·녹화는 어쩌면 우리 사회의 일상적인 것이 됐다. CCTV는 도시 곳곳에 포진해 있고, 언제 상대방이 나의 대화를 녹음할지 모른다. 한편으로는 남들이 다 하는데 나도 녹음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내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닌지 불안하다.

근본적인 문제로 들어가서 도대체 녹음을 왜 할까? 기록을 남겨두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기록을 나중에 써먹기 위해서다. 변호사의 입장에서 녹음 파일은 어떨 때는 사건 해결의 실마리로, 어떤 때는 독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의 소송 체계는 특수한 소송을 제외하고는 청구를 하는 쪽(원고)에게 청구의 근거(청구원인)를 증명할 책임이 있다. 때문에 원고가 이 부분을 증명하지 못하면 소송은 지게 된다. 물론 모든 증거가 완벽하게 있어서 승소가 사실상 예정돼 있다면 가장 좋다.

그런데 매일 같이 사건을 다루는 변호사들도 이런 완벽한 사건들은 1년에 몇 건 만나지 못한다. 처음에는 모든 증거가 갖춰져 있어 승소를 장담하던 사건도 진행 도중 우리가 가진 증거에 반대되는 증거가 나와서 패소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애매한 사건에서 녹음 파일은 결정적인 증거가 되기도 한다. 녹음 파일이 가장 많이 활용되는 사건 중 하나는 이혼 사건이다. 다른 종류의 사건과 달리 이혼 사건은 상대방의 책임을 증명할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이혼법률 체계는 혼인이 깨지게 된 데 책임 있는 배우자(유책배우자)가 상대방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하고, 유책배우자는 상대방에게 이혼을 청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다 보니 이혼소송을 잘 진행하기 위해 상대방을 나쁜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상대방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그런데 이혼 사건은 일반 민사사건과 달리 계약서, 도면, 감정서 등 특별한 서류가 있는 경우가 드물다. 기껏 있어봐야 사진, 각서, 이메일 정도가 전부다. 판사에게 저 사람이 나보다 더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이 때 등장하는 것이 녹음파일이다.

타인 간 녹음은 처벌대상

물론 이런 녹음 파일은 무제한 증거로 사용될 수는 없다. 잘못 녹음하면 처벌도 받는다. 이러한 녹음, 녹취, 감청, 녹화 등을 규제하는 법이 ‘통신비밀보호법’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누구든지 타인 간의 대화를 함부로 녹음 또는 청취할 수 없고, 이에 위반하여 수집한 녹음 자료 등은 재판이나 징계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4조). 쉽게 말하면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이 처벌대상이고, 증거로 사용할 수 없는 녹음이다. ‘타인 간’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해석되느냐에 따라 통신비밀보호법의 적용범위가 달라진다.

만약 A라는 사람이 B와 C의 전화 통화 내용을 비밀리에 녹음하거나 청취한 것이라면, 이로 인해 수집한 증거는 법적 효력을 인정받을 수 없고 재판에서 증거로 제출할 수 없다. 그런데 위의 A가 타인 간의 대화 내용을 녹음한 것이 아니라, A 자신이 상대방 B와 대화하는 내용을 녹음 했다면, 이는 ‘타인 간’의 대화라고 볼 수 없어서 통신비밀보호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녹음했다고 모두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2명이 대화한 것이 아니라 3명이 대화한 것을 녹음했다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일까? 대법원은 3인 간의 대화에 있어서 그 중 한 사람이 그 대화를 녹음하는 경우에 다른 두 사람의 발언은 그 녹음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 간의 대화’라고 할 수 없으므로, 이와 같은 녹음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에 위배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해 이러한 비밀녹음을 증거로 쓸 수 있다고 하고 있다(2006도4981).

또 하나 법원에 녹음 파일을 증거로 제출할 때는 녹취록을 만들어야 한다. 이 녹취록은 아무나 녹음 파일의 내용을 듣고 타이핑을 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전문 속기사에게 맡겨야 한다. 공인된 속기사가 녹음 파일을 듣고, 녹취록을 작성해서 직인을 찍어 주면 이 녹취록을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녹음 파일 자체를 법원에 제출하면, 재판장은 녹취록을 만들어서 다시 제출하라고 한다. 예외적으로 현장 상황이 중요해서 녹음 파일을 법정에서 트는 경우가 있다. 녹취록만으로는 당시의 급박한 상황이 전달이 되지 않는 경우, 법정에서 특별히 요청을 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논의는 상대방의 동의를 받지 않고 한 녹음을 공개한 행위가 형사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민사상 불법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하급심 판결들이 나오고 있다. 즉 민사상 손해배상을 해주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상대방이 나를 협박하는 경우, 이런 범죄사실을 녹음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특별한 사정이 없이 상대방이 나와 대화하는 것을 무작정 녹음해 공개하는 경우, 손해배상을 해줘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 특별한 사정으로 어떤 것이 인정될지는 앞으로 판결의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필자소개> 고윤기 변호사

-고윤기 변호사는 사법시험(사법연수원 39기)을 합격한 연세대 출신으로 서울지방변호사회 사업·기획·인권이사를 역임했다. 서울동부지방검찰청 형사조정위원회 위원과 서울시 소비자정책위원 등 다양한 공적 활동을 겸하고 있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10호 (2017년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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