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톡 최서윤 기자] 최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2017년 경제계 신년인사회’가 열렸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리는 신년인사회는 주요 기업인과 정부 각료, 국회의원 및 주한 외교사절, 사회단체·학계·언론계 대표 등이 대거 참석하는 경제계 최대 규모의 행사입니다. 1962년에 시작돼 매년 1월 첫째 주에 열리고 있습니다.

▲ 지난 4일 서울 코엑스 그랜드볼룸에서는 ‘2017년 경제계 신년인사회’가 열렸다(사진=경제풍월).

올해에는 1천여 명이 모였습니다. 기업인들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을 비롯해 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 GS칼텍스 허진수·CJ 손경식·LS 구자열·현대 현정은 회장,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 LG화학 박진수 부회장, 대한항공 지창훈 사장 등이 참석했습니다. 행사 시작 전 박 회장과 정 부회장, 지 사장 등은 입구에서 내빈들을 맞았습니다.

▲ 오른쪽부터 첫 번째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여섯 번째 지창훈 대한항공 사장, 여덟 번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부에서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비롯해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 정계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국민의당 김동철 비상대책위원장, 심재철 국회 부의장, 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 새누리당 정우택 원내대표, 장병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 나경원·안상수·이종구·조배숙·홍문종 의원 등이 참석했습니다.

▲ 왼쪽부터 심재철 부의장, 김인호 회장, 황교안 권한대행, 박용만 회장, 추미애 대표, 김동철 비대위원장, 주형환 장관, 손경식 회장, 정용진 부회장(사진=대한상공회의소).

올해에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 현대차 정몽구·SK 최태원·LG 구본무·롯데 신동빈·포스코 권오준·GS 허창수·한화 김승연·한진 조양호 회장, 현대중공업 권오갑 부회장 등 10대 그룹 총수 중 참석 인사가 한 명도 없어 ‘반쪽 행사’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전국경제인연합회 허창수 회장과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 포스코 권오준 회장 등이 참석한 것과 대조적입니다.

▲ 2016년 경제계 신년인사회. 박근혜 대통령과 허창수 전경련 회장, 박용만 회장, 신동빈 회장과 당시 새누리당 대표였던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등이 참석했다(사진=청와대).

지난해에 비해 비교적 조용하게 치러졌어도 1천여 명이 모였다는 점에서 재계의 가장 큰 행사임이 다시 한 번 확인됐습니다. 대통령은 불참했다지만 황 권한대행과 대기업 총수들이 참석하는 것 등을 감안해 참석자 대다수가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 해서 입구는 무척 혼잡했습니다. 의전 문제로 경호도 삼엄했습니다. 헤드테이블 앞에 서 있는 주요 내빈 40여 명을 제외한 참석자들은 몇 미터 떨어진 선(라인) 밖에서 행사를 지켜봤습니다. 기업 오너들은 한 공간에서도 거리를 둔 모습이었습니다.

▲ 주요 대기업 총수와 국회의원, 정부 관계자들이 헤드테이블을 둘러쌌다. 현대상선 계열 분리 등으로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축소된 현대그룹의 현정은 회장도 이곳에 서 있었다.

박용만 회장은 인사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올 한해 비장한 각오와 준비로 국가경제에 근본 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시장경제의 기본원칙부터 다시금 확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자유와 창의’가 존중되는 경제 질서를 만드는 일이 날로 중요해질 것입니다. 기업의 ‘자율과 책임’은 최대로 살리고 공정이라는 틀을 지키는 테두리 내에서 규제와 조정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개혁의 실마리를 찾아가야 합니다. 기업들부터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 화면에 보이는 박용만 회장의 모습. 경호직원들은 안전상 문제 등을 이유로 주요 내빈 외에는 헤드테이블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통경호를 했다.

이날 드레스코드는 ‘비즈니스 정장’이었습니다. 참석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스타일의 정장 차림을 했습니다. 행사장에 놓인 대형 얼음조각에 적힌 문구는 ‘다시 뛰는 대한민국, 경제계가 앞장서겠습니다’였습니다. 박 회장이 언급한 ‘자유와 창의’는 이날 행사의 격식들과 어딘가 모르게 맞지 않는 발언이었습니다. ‘뛰다’라는 의미를 직접적으로 해석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수도, 정장이 더 편하다고 반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대한상의가 행사장 드레스코드로 공지한 ‘비즈니스 정장’과 구두를 신고 얼마나 높이, 더 많이 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 새 모양의 대형 얼음 조각. 1시간여 동안 진행된 행사가 끝나고 분해됐다.

최근 많은 기업들은 격식보다 내실을 앞세워 이 같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에서는 SK와 한화가 ‘비즈니스 캐주얼’을 허용할 정도로 출근 복장이 자유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창의성이 생명인 IT관련 기업 LG유플러스, 네이버, 카카오, 엔씨소프트 등의 출근 복장도 규제를 받지 않습니다.

공직 사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삼성 인사전문가 출신인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은 재임 당시 직원들에게 일주일에 한 차례 자율복장을 허용했습니다. 정부도 5·7·9급 공채 면접시험에서 평상복 등 ‘복장자율화’를 권장키로 했습니다. 복장 문제에서 가장 많이 경직돼 있는 곳은 정치권입니다. ‘썰전’에 출연 중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2003년 국회에 면바지를 입고 의원 선서를 하려다가 곤혹을 치른 바 있습니다.

▲ 신년인사회의 드레스코드는 '비즈니스 정장'이었다. 대한상의는 보안검색대의 신속한 통과를 위해 외투와 금속성 소지품은 차에 두고 입장하라고 안내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태로 기업인들이 많이 위축됐다고 하지만 이날 행사에서 차분한 분위기가 꼭 이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판단됐습니다. 격식과 허례허식, 지나친 경호……. 정작 건배사를 하고 잔을 부딪칠 때 모습은 보기에 좋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동서출판 동문사는 “잔을 보고 '챙!' 하는 건 인격보다 물격(음료)을 더 중시하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굽신거리기까지”라고 비판했습니다. 그간 재벌개혁을 외쳐온 정치인들이 기업인들에게 보인 모습은 국회 청문회, 국정감사 등에서 보인 모습과 또 달랐습니다.

▲ 오른쪽부터 건배하는 추미애 대표, 박용만 회장, 황교안 총리.

박용만 회장은 “기업의 일부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돼 그 판단의 결과에 상관없이 경제단체장으로서 국민들께 머리를 들기 어려울 정도로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논란의 중심에 설 이유조차 없는 대다수의 성실한 기업들은 경제주체로서의 활기찬 맥박이 절실한 실정입니다. 기업은 기업인의 전유물만이 아닌 성실한 급여 생활자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합니다. 입법, 사법, 행정부 모두가 올해 경제의 난국타개에 응원해 주시길 간곡히 머리 숙여 부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박 회장의 말대로 올해에는 모두가 함께 뛰며 난국을 헤쳐 나가는데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내년 신년인사회 때는 지나친 격식과 경호가 없고, 헤드테이블 앞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견기업 관계자들이 모두 나란히 설 수 있는 장면을 기대해 봅니다.

▲ 행사가 끝나고 경찰들이 보안검색대 해체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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