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선열, 애국지사, 호국영령의 나라
민중궐기 민심받아 정치적 타결 소망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
국난때면 구국애국심
순국선열, 애국지사, 호국영령의 나라
민중궐기 민심받아 정치적 타결 소망

▲ 왼 손에 폭탄, 오른손에 권총을 들고 태극기 앞에서 절명사를 가슴에 붙인 채 촬영한 윤봉길. <사진=위키피디아>

일제 말기에 태어나 70년 넘게 살아오면서 대한민국 근대사를 지켜봤다. 온갖 변란, 참화 다 겪은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은 위기 때마다 애국지사들이 나타난 애국심의 나라였다. 독립 유공자에서부터 호국영령들과 민주화까지 국가유공자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살아남은 것이다. 최순실 사태로부터 대통령의 하야(下野)를 부르짖는 광화문 일대의 민중총궐기를 멀리서 지켜보며 생각나는 것이 바로 애국심이다.

국난, 정변때마다 구국애국심 분출

애국심이란 앞뒤 가리지 않고 이해득실 계산하지 않고 나라가 위험할 때 절로 솟아나는 법이다. 김일성의 남침으로 대한민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일 때 청년 학도병에서 무명의 지게꾼까지 전선으로 달려가 침략군을 물리치며 호국영령이 됐다.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이 참전하여 함께 피를 흘렸으니 잊을 수 없는 은혜이다.
나중에 미국이 주도한 베트남전에 국군을 파병한 것은 6.25 참전에 대한 보답이었다. 최근 해외 분쟁국에 유엔 평화군을 파견한 것도 외국의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 공여국으로 발전해온 은혜를 갚기 위한 성격이라고 해석된다.
국토방위를 위해 나라의 부름을 받고 전선에 나가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이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빽빽이 잠들어 있다. 이곳 현충원이 넘쳐 다시 대전 국립현충원을 세워 호국영령들과 각급 국가유공자들의 영혼을 모시고 있다.
자유당 정부의 3.15 부정선저 규탄으로부터 4.19 학생의거로 희생된 수많은 젊은 영령들은 서울 수유리 4.19 묘역에 안장되어 있고 10.26 사태 후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은 광주 5.18 공원에 잠들어 있다.
이토록 정변과 국변 때마다 피를 흘려 나라를 지킨 애국심의 나라가 민주화된 광명천지 하에 최순실 사태 한방으로 온 국정이 마비지경이니 너무나 천만뜻밖 아닌가. 광화문 쪽을 자세히 지켜볼 용기가 나지 않아 휴대폰으로 한번 눌러 보고 제발 나라의 법질서를 지키는 가운데 애국적 시위로 매듭지어 질 것을 간절히 소망한다.

망국시절 비빌 곳 없이 항일 독립투쟁

▲ 1932년 1월 8일 체포된 이봉창. <사진=毎日新聞社「昭和史第6巻 満州事変」より>

국가권력의 부패나 민주주의의 후퇴, 헌법질서 유린, 교란 등에 성난 민심을 달래줄 말이 없는 처지다. 그렇지만 민중총궐기 대열에 참가하더라도 애국충정의 지사와 열사 정신을 호소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한민국이 특정 정권이나 특정 대통령의 나라가 아니다. 정권차원의 권력은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지만 대한민국의 기본은 영원히 존속되고 발전되어 가야만 한다.
왕조시대 말기 국권을 탈취당한 망국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순국선열(殉國先烈)들과 애국지사(愛國志士)들의 애국심을 간절하게 생각해 본다. 나라가 망해 비비고 기댈 언덕이 없어졌을 때 국내외서 항일 독립투쟁으로 얼마나 많이 피를 흘렸는지 헤아리기도 어렵다.
대한민국 순국선열유족회에 따르면 8.15 해방 직전까지 국내외서 항일투쟁으로 목숨을 바친 분들은 ‘순국선열’, 살아서 광복 귀국한 분들은 ‘애국지사’로 구분한다. 모두가 대한민국 건국 훈·포장을 수훈하여 영구히 추앙되지만 용어상 따로 분류한 것이다.
순국선열로는 이등박문을 저격하고 목숨을 빼앗긴 안중근 의사, 애국지사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다가 귀국했던 백범 김구가 대표적이다. 또 다 같이 목숨을 바친 독립투사를 의사(義士)와 열사(烈士)로도 구분한다. 의사는 무력으로 항일투쟁한 안중근, 윤봉길 의사 등이 대표이고 열사는 맨손으로 투쟁하다 피살됐거나 자결한 경우로 유관순과 이준 열사 등이 대표이다.
또한 순국과정에 따라 △ 전사(戰死) : 의병활동, 독립군으로 전사 △ 형사(刑死) : 일제에 검거되어 사형 △ 옥사(獄死) : 일제 감옥에서 사망 △ 절사(節死) : 의분을 못 이겨 자결 △ 피살(被殺) : 일제에 대한 항거과정의 순직 △ 옥병사(獄病死) : 옥중에서 투병사망 등 6가지로 분류된다.
순국선열유족회에 따르면 이 같은 용어상 분류와는 상관없이 순국선열이나 애국지사에 대한 예우는 차이가 있을 수 없으며 단지 순국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자료일 뿐이다.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추모하는 심정

매년 11월 17일이 순국선열기념일로 올해도 정부 주관행사로 각종 추모행사가 있었다. 순국선열기념일은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이 제정한 날을 그대로 계승했다. 8.15 직후에는 유족들과 민간단체가 기념행사를 올렸지만 1955년부터 정부가 주관하다가 1970년에는 현충일로 편입됐고 1997년에야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어 국가보훈처 주최로 매년 기념행사를 갖는다.
독립공원은 옛 서대문형무소 자리로 순국선열 위패 2,835위를 모신 현충사(顯忠祠)가 건립되어 연중 참배할 수 있다. 현충사 위치는 조선시대에 중국 사신들을 접대한 모화관 터이지만 옛 독립협회가 이곳에 독립관을 지어 독립정신 함양운동 본거지 역할을 다해 왔으며 현충사는 1997년에 건립되어 순국선열유족회가 관리한다.
이곳 현충사를 참배하면 망국시절 해외로 유랑하며 항일 독립투쟁을 벌인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후손들이 거의 멸족했거나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망국시절이라 후손들을 돌봐 줄 사람이 없고 자녀들은 숨어 지내면서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정부가 관련법을 제정하여 건국 훈·포장으로 명예를 드높이고 순국선열유족회가 후손들을 찾아 돌보려 하지만 여러 측면에서 역부족이다. 결국 망국시절의 독립투쟁으로 희생된 수많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가운데 아직도 공적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을뿐더러 그들의 후손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의 여부도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본다.
나라에 바친 애국심은 기본적으로 보상을 받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지만 조국이 광복되고 부강한 나라로 발전해서도 예우를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분통한 노릇인가. 이에 비해 각종 민주화 운동으로 국가유공자로 확인된 분들은 일시 보상금이나 연금형식으로 예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비교된다.

구국의 애국심을 호소하는 심정

옛 순국열사와 애국지사들을 끄집어내면서 까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관해 애국심을 호소하는 입장이 매우 궁색하다. 다만 대통령의 하야를 끌어내야 애국이고 헌정질서를 유지하며 문책과 엄벌로 매듭짓는 것은 비애국이라고 단언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이미 대통령이 책임을 시인하고 직접 특검조사까지 수용했으므로 앞으로 절차에 따라 탄핵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고 본다. 민중총궐기를 통한 민심의 분노에 대해 청와대도 충분히 인식하고도 남을 것이다. 따라서 남은 과제는 여소야대 국회가 실질적인 내치를 주도할 수 있는 중립총리를 선출하여 내각을 구성, 국정을 맡게 되면 현 대통령은 사실상 2선으로 물러나는 결과가 될 것이다.
다만 남북관계의 엄중한 상황과 글로벌 외교관계의 영속 안정성을 고려하여 국군통수권과 외교권은 현 대통령이 수행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을 민중총궐기의 힘으로 끌어내리는 악례를 되풀이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러 측면에서 우려되기에 지금은 구국의 애국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8호 (2016년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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