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수필]

바보는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글 / 최수권 (전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수필가)

반만년 우리 역사에, 1000회가 넘는 외세의 침략을 받았다. 지형적인 열악한 구조에서 생존하는 것만도 어찌 보면 대단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연구한 유럽의 어떤 학자는 한국이 살아있는 것이 바로 기적이라는 기사를 접해 보기도 했다.
1216년 몽골군보다 먼저 고려를 침략한 것은 몽골군과 금나라에 쫓기던 90,000여명의 거란 유민군이었다.
거란군이 압록강을 넘어 왔지만, 무신정권의 최충헌은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도취되어 대신들에게 이렇게 호기를 부렸다.
“나라는 부유하고 군사는 사기가 넘치고 굳세니 근심이 없다.”
국경을 지키는 장수들이 적군이 침입했다고 급보를 올리자 최충헌은 “어찌 작은 일로 파발마를 띄워 조정을 놀라게 하느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무신정권의 자아도취는 극에 달하기도 했다. -주지육림/ 술이 연못을 이루고 고기가 숲을 이룬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세상의 잘못은 돌아보면, 그 징조들이 미세하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렇게 대책 없고, 무능한 이들이 이끄는 나라가 온전할 리가 없다. 거란족을 고려에서 내쫓아 주겠다고, 군대를 동원한 몽골은 1231년 금의 수도 개봉을 정벌하면서 고려를 침략했다. 고려는 30여년의 항쟁을 하였지만, 무려 100여년 동안 몽골의 지배를 받으며 굴욕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고려사의 기록을 보면 “몽골군은 성을 함락시킨 후 10살 이상 된 남자들은 다 죽이고 여자들은 전부 군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몽골군이 한성을 함락시킨 후 고려 여자들의 젖가슴을 잘라 삶아 먹었다.” 이 참담하고 참혹하고 슬픈 시대에 생겨난 신조어가 호수만복(胡水萬腹)이라는 말이었다. 몽골군은 보는 여자마다 겁탈했다. 이에 임금은 궁여지책으로 더러워진 몸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연못을 파고 여인들에게 목욕을 하게 했다. 하지만 호수에 몸을 씻었다고, 치유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을까?
3천리 우리강산이 몽고군에게 유린되던 때에 최씨 일가는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어 자신들의 저택을 새로 짓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화려한 생활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의 궁궐터가 강화읍에 남아있다. 그 치욕의 역사가…, 고종41년 몽고군의 포로로 잡혀간 사람이 21만명으로 기록되어 있고, 그들에게 죽임을 당한 이들은 더 많았다고 한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교훈을 강화도 보다 더 여실히 보이는 곳이 또 있을까?
임진왜란이 끝난 지 40년도 지나지 않아 정묘호란이 일어난다. 임란 후 국력이 쇠퇴해졌어도, 위정자들의 탐욕과 당쟁으로 나라는 더 쇠락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쫓겨나지 않았으면 역사는 다르게 전개 됐을지 모른다.
서인들은 사대주의를 표방하여 명을 숭배하는데 광해군은 후금과 외교를 맺었다. 서인들은 자신들의 정견과 반대되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으로 세웠다. 그리고 광해군을 폭군으로 조작했다. 그렇게 해야만 반정을 합리화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실록을 새로 썼고 그것이 현재 남아있는 선조 수정실록이다. 역사는 늘 비겁한 승자에 의해 왜곡된다.
광해군은 명나라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장차 후금이 중국을 지배할거라는 시대의 징표를 읽었다. 그는 후금과 적절한 외교정책을 펼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사대사상을 지닌 보수 양반계층의 눈에 광해군은 미운털이 박힌 군주였다. 그것이 인조반정으로 이어졌다. 인조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임금이었다. 향명배금(向明排金) 정책을 표방했다. 그리고 명나라 군대를 지원한다. 후금은 명나라를 치기 위해 중국본토를 진입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배후를 위협하는 조선을 정복할 필요가 있었다. 정묘호란(1627년, 인조5년)은 그렇게 시작됐다.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한다.
인조14년(1936년)에는 병자호란으로 또 치욕을 당한다. 당시 피해는 포로들을 제외하고 끌려간 여성이 60만명이었다. 비극이었다. 그래서 국가 리더들의 자질과 덕목이 중요하다. 근간 시대상황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과연 국가를 위한 길인지…
6.25전쟁에서 인명피해는 남북 합해서 250만명이다. 섬뜩하지 않는가? 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자신들만의 정치를 하고 있다. “우리는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개그맨 같은 멘트를 들을 때 마다, 한심한 생각이 든다.
사회의 리더들은 마음의 눈이 맑고 밝아야 한다. 그것은 정제된 삶과 살아가는 태도, 지성이 겸비된 덕목이 있을 때 마음의 눈은 밝아지게 된다.
바보는 같은 실수를 늘 반복한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6호 (2016년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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