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300만원 일본유학 수기

멀리 날 수 있는 날개가 필요하다
단돈 300만원 일본유학 수기

글/유기헌(일본 규슈대학원 인간환경학부 석사과정)

단돈 300만원으로 부산에서 무작정 배를 타고 일본 유학을 결심한 나는 현재 일본 규슈대학원과 회사인턴생활을 동시에 병행하면서 바쁜 유학생활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2년 동안의 우여곡절 많은 일본 유학생활 이야기를 ‘좀 더 멀리 날 수 있는 날개가 필요하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어 출판했다. 이 책이 취업과 장래에 고민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과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후임병의 조언에 나홀로 유학

2002년 초, 군대 제대가 가까워올 무렵 내무실에서 연등(자율학습)을 하면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후임병인 김 상병이 “유 선배는 한자를 많이 아니까 일본어 공부를 하면 금방 늘겁니다”라는 말을 해주었는데 이것이 나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리라고는 미처 몰랐다. 제대 후 1년간 복학을 미루고 재충전의 기회를 가지면서 내 나름대로 인생의 설계를 하고 휴학 중 열흘간의 짧은 여행지로 일본을 선택했다.
일본하면 도쿄나 오사카를 생각하기 쉬운데 나는 야마구치라는 곳을 선택했다. 거기서 우연히 야마구치현립 대학교에서 강의 하시는 이수경 교수님을 만나 대학원 진학 제의를 받게 되었다.
이수경(李修京) 교수님은 리쯔메이칸(立命館)대학 사회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현재는 도쿄가 쿠게이(#東京學藝)대학에 계신다. 그 당시 내가 취업으로 고민하던 모습을 보시고 많은 조언을 해주신 분으로 그 분과의 만남은 나홀로 유학에서 얻은 가장 값진 만남이었다.
한국인 여성으로써 외국인을 상대로 강의하시는 교수님의 열정적인 모습에 매력을 느끼게 되면서 나도 대학원 진학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되었다. 그 후 몇 번의 방학을 이용해 일본을 왕래하면서 일본어 1급을 취득한 후 현재 후쿠오카에 있는 규슈대학에 적을 두게 되었다.

학비는 내손으로 직접

유학생이 겪는 제일 어려움은 등록금과 생활비일 것이다. 처음 규슈대학원에 합격하고 은행에서 빌려온 300만원으로 등록금, 월세 등을 내고나니 지갑이 너무 얇아져 막막하기만 했다.
그때부터는 본격적인 아르바이트에 나섰다. 텐진(후쿠오카 번화가)에 있는 어학원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기도 했고 후쿠오카 교도소 번역과 통역, 한일 간 주요 행사 통역까지 맡으면서 자전거로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곳을 눈비를 맞으면서 달리고 또 달렸던 기억이 선하다.
이곳 일본에서의 하루는 늘 학교의 수업과 회사 생활의 연속으로 무척 바쁘다. 대학원 수업은 대부분 발표 수업이어서 실제로 수업에 참가하는 시간 보다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이 더 긴 편이다.
평일에 수업이 없는 날이면 회사를 간다. 간혹 회사에서 출장을 가야할 때는 어쩔 수 없이 학업을 소홀히 할 때도 있지만 주로 주말에 출장이 있어서 학업에는 큰 지장이 없는 편이다. 또한 수업이 끝난 저녁에는 연구실에서 연구를 위한 자료수집이나 독서를 주로 하기도 한다.

규슈대학원 인간환경학부 진학

한국에서 공대를 다녔던 나는 일본의 공대 중에서 인지도가 높고 학비도 저렴한 국립대학(제국대학)을 찾다가 규슈대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규슈대학은 역사가 깊고 특히 한국과 가까워 대학 간의 교류도 매우 활발하며 일본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연구센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드라마 겨울연가에 대한 교양과목이 개설돼 많은 인기를 얻기도 했다).
현재는 나는 규슈대학원 인간환경학부에서 도시환경공생계획을 연구하고 있다. 일본은 도시환경문제에 있어 대표적 선진국인 데다 근처에 UNEP(국제연합환경계획)에서 글로벌 500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 ‘키타규슈’라는 도시가 있다는 것도 규슈 대학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외국계 회사 인턴으로 근무

내가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는 회사는 ‘아테리에 니시모리’라는 디자인 건축 회사로 나는 이곳에서 컨설팅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10년 전에 주택 버블현상을 한번 겪고 나서 거품이 빠진 상태이고 현재는 각 지역별로 ‘마을 만들기’라는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즉 어떻게 하면 지역을 활성화 시킬 수 있을까 하는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후쿠오카에 본사, 오사카. 오키나와에 지사가 있는 이곳 회사는 각 지역별로 지역특성에 맞는 도시계획을 컨설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떻게 하면 관광객을 더 유치할 수 있을까, 고령화로 인한 지역침체를 활성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들을 연구하며, 컴퓨터를 이용한 시뮬레이션, 그래픽, 모형 등을 제작하여 제공하기도 한다.

총영사의 격려로 방황 극복

나는 다른 유학생들과 달리 도쿄, 오사카가 아닌 야마구치와 후쿠오카라는 곳을 선택했다. 물론 어느 곳이나 장단점이 있겠지만 역시 유학생이 드문 곳일수록 현 주민들과의 인간관계가 더 돈독하게 유지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가끔 예전에 신세졌던 분들에게서 오는 안부의 편지나 조그마한 소포를 열어보면 한글로 여러 메시지가 들어있는데 이럴 때 무척 기쁘고 보람을 느끼곤 한다.
이런 나에게도 방황의 시기는 있었다. 대학원 연구생 때 생계비 부족과 유학에 대한 회의감에 휩싸여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나머지 후쿠오카 총영사관 행정요원직에 지원한 적이 있었다. 3차 면접까지 합격했지만 결국 마지막에서 불합격의 고배를 마셨을 때 나약한 내 자신의 모습에 상당기간 동안 많이 힘들어했었다.
하지만 총영사님께서 좀 더 인내해서 큰 사람이 되라면서 오히려 타이르듯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신 데 힘을 얻어 당시 어려웠던 상황을 잘 참고 넘길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삶의 가치관을 바꿔줄 만큼 좋은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신용이 최우선

우리 회사 사장님께서는 요즘은 어느 곳을 가더라도 중국, 한국 유학생이 많고 실제로 자기도 여러 유학생을 만나 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회사 일을 믿고 맡겨도 불안하지 않을 만한 무언가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그것이 신용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가끔 야마구치현청 관광과나 국제 교류협회에서 멀리 떨어진 나에게 통역을 부탁하거나 한국가이드를 부탁하는 분들이 많은데, 나를 믿고 일을 부탁해주시는 그분들에게 항상 고마울 따름이다.

국제환경전문가의 꿈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하고 현재는 인간환경학을 연구하고 있는 나는 국제환경전문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21세기는 환경문제가 곧 비즈니스의 찬스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환경문제를 둘러싼 각 국가 간의 치열한 주도권 다툼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때일수록 국제적인 감각을 가진 환경 전문가의 역할은 더욱 확대되리라는 생각이다. 물론 영어를 비롯해 두세 개의 외국어는 구사할 줄 알아야 하며 환경학의 연구를 통해 많은 국제회의에서 자국의 이익을 대변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나는 대학원에서 하드웨어적인 전문지식을, 회사에서는 소프트웨어적인 경영마인드를 익혀 미래를 향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수기집 통해 용기와 희망을…

톨스토이는 인생을 잘 살려면 좋은 책을 만나든지 좋은 사람을 만나라고 했다. 또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했다. 처음 내가 외국 대학원에 진학하려했을 때 주변에서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었고 힘들지 않겠느냐는 등의 염려도 많았다.

▲ 유기헌의 수기집 ‘ 좀 더 멀리 날 수있는 날개가 필요하다’

솔직히 그때 까지만 해도 금전문제와 졸업 후 나이 등 걱정도 만만치 않았지만 결국엔 유학을 결심했다. 그 후 2년 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힘들고 어려울 때도 많았지만 그만큼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졌다.
하지만 좀 더 창조적으로 인생을 개척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언제나 현실에 안주하며 변화가 없는 삶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며칠 전 한국의 독자라는 한 학생이 직접 내 책을 읽고는 본인의 심경을 솔직히 털어놓는 것을 보고 갈등하는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20대에 낸 이 책 한권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그들로 하여금 유학생활에 대한 궁금증을 다소나마 해소 하는데 도우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90호(2007년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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