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눈물 극복 감격세월 공유소망

격동의 세월과 민족애환
70대, 추억의 음악여행
白大基 회장, 애창가요 비매품 CD화
고난과 눈물 극복 감격세월 공유소망

▲ 백대기 반도메디칼 창업회장과 김정숙 곤지암밸리 관장 부부

대한민국 현대사를 목격하고 체험한 세대가 부르는 ‘추억의 음악여행’이 노후세대에게는 절실한 공감과 감격이다. 의료기기 전문 사업가인 백대기(白大基) 반도메디칼 창업회장과 기독정신 여성 CEO로 곤지암밸리를 창업한 김정숙(金正淑) 부부가 다시 듣고 싶은 추억의 노래를 자신의 목소리로 취입, CD로 제작하여 친지들에게 무료 배송함으로써 함께 애창(愛唱)하자고 권유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오랫동안 즐겨 부른 애창 국민가요

백 회장은 70대 중반기에 접어든 세대로 망국(亡國)의 식민시대에 태어나 8.15 해방공간, 6.25 참화와 5.16 격변을 다 겪고 대한민국 육군소위로 전방 소대장으로 복무하면서 분단국의 현대사를 직접 체험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조국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백 회장이 CD에 담은 ‘추억의 음악여행’이란 고난과 눈물을 극복한 감격의 세월을 표현했기에 같은 시기를 살아온 동지들뿐만 아니라 후대에까지 오래도록 애창곡으로 불려지기를 소망한다. 부인 김정숙 곤지암밸리 관장은 70대 문턱에 이르기까지 남편과 함께 찬송가를 합창해 온 신앙의 동반 반려자 사이다.
백 회장은 애창곡 10여곡을 골라 사비로 CD를 제작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친지들과 주변 인사들에게 나눠줌으로써 뭔가 한 가지 소망을 이룩한 기분이라고 밝힌다.
많고 많은 애창곡 가운데서 △비 내리는 고모령 △고향만리 △전선야곡 △신라의 달밤 △카츄사의 노래 △추풍령 △낭만에 대하여 △서울탱고 △꿈에 본 내 고향 △고향초 등을 어렵게 골라냈다. 대다수가 애환과 서러운 세월을 노래한 가요가 특징이다. 국민가요 다음에 부부가 함께 애창했던 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372장 ‘내 맡은 본분은’을 백대기 노래로 덧붙였다.
노래마다 가사에 얽힌 사연과 화제를 ‘백대기의 감상’ 메시지로 전해주어 7080 세대가 들을 때는 절로 “맞아 맞다”라는 공감이 나오게 된다.

성대가 더 노후하기 전에 애창곡 취입

백 회장은 평소 조용한 성품으로 친교 골프와 바둑을 즐기며 음악취향이 깊어 동료들과 종종 ‘노래방 노래’를 즐긴다. 그의 메디칼 사업이 글로벌 영역에 속하기에 해외출장이 잦아 늘 바쁜 일정이지만 국내서 소모임에 참석한 경우 친숙한 사이 몇몇과 노래방을 들린다고 한다.
백 회장은 메디칼사업이 안정된 후 최근 부인이 적극 선도하여 노후 삶의 준비로 곤지암밸리로 귀촌(歸村) 귀농(歸農)했다. 이곳 전원생활의 일부로 옛노래의 애창을 넘어 성대(聲帶)가 더 노후하기 전에 오랫동안 즐겨 불렀던 국민가요를 독자적인 자신의 노래로 남기고 싶다는 용기를 냈다고 한다.
선곡을 하고 보니 선대를 생각하는 일제시절, 자신이 똑똑히 지켜본 8.15와 6.25를 거쳐 산업화와 민주화시대에 걸친 국민가요 10곡을 고르게 됐다는 설명이다.
앞 부문에는 유호(兪湖) 작사, 박시춘(朴是春) 작곡, 현인(玄仁) 노래가 주종으로 이를 편곡하여 백대기의 노래로 CD에 담았다. 백 회장이 살아온 세월과 취향에 비춰보면 고복수(高福壽)의 타향살이, 남인수(南仁樹)의 감격시대, 김정구(金貞九)의 눈물 젖은 두만강, 백년설(白年雪)의 나그네 설움도 어울리지 않겠느냐고 물었지만 자신의 음색 맞춤형으로 고르다 보니 박시춘 작곡, 현인의 노래를 많이 선곡하게 됐다고 말한다.
뒤 부문에는 1960년의 추풍령, 90년대의 ‘낭만에 대하여’와 ‘서울탱고’ 등을 실었다.

자신의 현대사 체험 맞춤형 선곡

백 회장의 애창곡 1호 ‘비 내리는 고모령’(顧母嶺)은 이름 그대로 어머님의 손길을 되돌아보는 고갯길의 추억이다. 8.15 해방이 됐지만 아직 대한민국이 건국되기 이전, 오랜만에 귀향한 젊은이들이 새 일터를 찾아 어머님의 품속을 떠나야 하는 비장하고 애절한 심정을 노래했다.
“어머님의 손을 잡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물었다오, 나도 울었소…”라는 가사를 현인이 경상도 사투리의 발성을 섞어 특유의 감상을 더해주니 백 회장 애창의 배경과도 어울린다.
1947년에 나온 ‘고향만리’는 일제 때 보르네오 등 남방으로 징용 나간 젊은이들의 망향심정을 너무나 애절하게 불렀다.
“남쪽바다 십자성은 어머님 얼굴, 눈에 익은 너의 모습 꿈속에 보면,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바닷가 저편에 고향산천 가는 길이 절로 보이네”
이 노래는 일제 때 나왔어야 했지만 해방 뒤에야 럭키 레코드사가 현인의 굵직하고 포근한 음성으로 취입한 것으로 백 회장이 평소 비슷한 음색으로 애창하여 동료들의 박수를 받아왔다.
‘신라의 달밤’은 해방 직후에 나와 지금껏 전 국민 애창곡 반열에 올라 있고 6.25 전쟁 때 나온 ‘전선야곡’은 소대장 출신의 백 회장이 참전세대들을 생각하며 애창해 온 노래이다.
‘꿈에 본 내 고향’도 역시 전쟁기에 나온 노래로 피난수도 부산에 몰려 있는 북한 피난민들의 향수와 민족분단의 비극을 너무나 절실하게 표현했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지,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이 노래 작사자 박두환(朴斗煥)은 ‘진주라 천리길’, ‘울며 헤어진 부산항’ 등 고향 그리움 작사 전문, 젊은 가수 한정무는 히트곡 음반을 내 놓고 교통사고로 요절한 비운으로 잊혀지고 말았다.

대학교수 꿈 접고 의료기기 전공길

기업인으로서 백 회장은 품위와 절제를 소중히 여기는 성품으로 의료기기 분야만을 외길로 전공해 오면서 대외적인 명예활동을 철저히 사양해 왔다. 반면에 70대에 이르러 모처럼 자기 음성으로 옛 노래를 불러 CD로 보존하려는 심정을 나타낸 셈이다.
백 회장은 6.25 때 인민군 세상을 겪었고, 1.4 후퇴로 절박했던 피난생활도 체험했으며 ROTC 1기생으로 보병 소대장 복무를 마친 후 기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이 때문에 누구보다도 확고한 국가관과 시대정신으로 꿋꿋하게 기업을 일으켜 주변으로부터 충분히 성공했다는 평판을 들어왔지만 기업관련 단체 명예직이나 언론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아 마치 ‘은둔의 기업인’처럼 살아왔다.
백 회장이 늦은 나이에 접어들어 ‘추억의 음악여행’을 비매품 CD로 제작한 것도 이 같은 성품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백 회장은 안양고를 나와 건국대가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후 장학생으로 입학,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의 태생과 취향에 따라 생물학을 전공하여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코스 1년 수료 후 외국인 회사의 파트타임 아르바이트가 인연이 되어 교수의 꿈을 접고 기업인으로 나섰다.
일찍부터 영어에 능통한데다가 전공인 ‘생물학’이 의료기기와도 가까워 반도호텔에 입주해 있던 미국계 각종 오퍼 전문회사에서 견습 실습이 독자적인 창업으로 이끈 셈이다. 백 회장이 1973년 창업한 ‘반도메디칼’이 바로 ‘반도호텔’에서 상호를 따온 인연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43년이다. 지금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반도빌딩을 세워 다양한 첨단 의료기기 전문영역에서 글로벌 교류역할을 맡고 있다.
반도메디칼 외에 반도스파인(Bando Spine)을 따로 설립, 미국 마엘로텍(MYELO TEC)의 글로벌 총판으로 사업영역을 확장, 한국은 물론 일본, 중국, 인도, 독일, 프랑스 등을 커버한다. 백 회장은 이 분야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마엘로텍사의 국제 마케팅 및 교육담당 부사장직을 겸하고 있다.

분수와 본분 철학의 은둔형 경영인

▲ 음반CD자켓 내지중에서 백대기 회장의 애창곡 ‘ 비 내리는 고모령’

백 회장의 경영철학은 분수와 본분을 가장 중시해 온 정신으로 요약된다. 자신의 능력범위 내에서 전공분야를 개척해 오면서 경험과 신뢰를 축적해 온 방식이었다. 반도메티칼에는 노사분규 요인이 없고 은행부채에 시달린 큰 고비가 한 번도 없었다.
분수와 본분 중심의 경영철학의 결과였다. 메디칼 사업을 국내 제조업으로 확장하지 못한 것도 이 같은 원칙과 관련된다. 글로벌 영역과 교류하는 비즈니스 전선의 성격상 제조업에 투신할 여유가 없었다. 백 회장은 제조업은 앞으로 2세 경영시대의 선택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백 회장은 기업안정과 성장기에 이르러 사회와 이웃에게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기여하고 공헌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지 않아 지금껏 반도메디칼의 브랜드 지명도가 실제보다 낮은 것으로 보인다.
백 회장은 1980년대에 주위의 권유를 받아 10년 만기 생보 상품에 가입하여 5년간 매월 15만원씩 불입한 후 5년이 지나 목돈 2천만원을 수령했다. 이때 백 회장 부부는 생보 가입기간 중 건강을 잘 지켜왔으니 몫돈 2천만원은 너무나 귀중한 돈으로 자신들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에 궁리 끝에 국제기아대책기구에 헌금키로 결정하고 정정섭 회장을 찾아 갔더니 뜻밖에도 ROTC 1기 동기 사이였다. 정 회장은 몇 년 전에 작고했지만 고대 출신으로 전경련 부회장을 거쳐 국제기아대책기구를 설립, 운영하고 있었다. 백 회장은 헌금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귀중한 몫돈 2천만원을 요긴하게 사용할 것을 당부하고 돌아왔다.
그 뒤 한참 지나 뜻밖에도 아프리카 모잠비크의 어느 초등학교 교장이 한국인이 도와준 ‘Mr.PAIK form Korea’ 학교라는 현판사진 등을 우송해와 자신의 헌금이 모잠비크의 학교설립 기금으로 활용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백 회장은 연중 수시로 각국을 순방하면서도 모잠비크의 PAIK 학교를 찾지 않았다. 헌금 기탁자로 얼굴을 나타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다가 조선일보 기자가 아프리카 순방 기획취재 중에 모잠비크에서 ‘From Korea’ ‘PAIK’ 이름을 보고 백 회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한사코 사양했다. 이 때문에 조선일보 르포기사에도 “메디칼 계통에 종사하는 어느 기업인의 헌금으로…”라고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곤지암밸리 부부의 귀촌·귀농노래

백 회장 부부가 귀촌·귀농한 곤지암밸리는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상림리, 광대한 태화산 자락 깊숙이 위치한다. 울창한 숲과 계곡과 바위와 자연수가 너무나 넉넉하다. 공기 내음부터 이름 그대로 ‘곤지암 힐링센터’다. 비록 기온이 서울보다 2~3도 낮다고 하지만 봄의 꽃과 풀향기, 여름철 대녹음과 계곡물 가을 단풍과 겨울 눈 등 4계절 자연의 선물이 곧 지상낙원이다.
이곳에 가냘프지만 억척 여장부와 전원일기의 최불암 가장(家長) 스타일의 남편이 노후 삶의 진수를 보여 준다. 당초 김정숙 관장은 바쁜 사업가를 내조해 온 ‘강남 사모님’이었지만 적극적인 신앙생활 중에 본인의 오랜 꿈과 뜻있는 일을 이루기 위해 이곳 곤지암밸리를 일으키게 됐노라고 한다.
김 관장은 극동방송의 ‘사랑의 뜰안’ 프로에 1년 6개월이나 출연하여 곤지암의 전원일기 식의 ‘자연에서 만나는 하나님’을 직접 방송했고 또 출간한 바 있다.(2012.5, 나침반) 이 책에서 김 관장은 이곳 자연힐링센터라면 영혼과 육체가 병든 은퇴세대가 절로 자연치유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모든 질병 바이러스가 자연 속에서 퇴치될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논리이다.
곤지암밸리는 2만5천여평 규모의 숲으로 사방을 둘러봐도 산과 나무와 계곡의 연속이다. 이곳 토지구입과 각종 건물과 편익시설 등의 설계와 건축과정, 인허가 절차가 지극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렇지만 부부의 집념과 열정으로 각종 숙소, 공연장, 연수시설, 야외 다목적 레크레이션 공간 등을 기어이 꾸며냈으니 보람과 긍지가 넘치게 됐다.
백 회장은 가까이나 멀리서 친지 일행이 소모임이나 가족행사로 방문하여 그들을 맞고 보내는 기쁨에 자족감을 느낀다고 했다.

천혜의 빛, 물, 숲의 자연 힐링센터

곤지암 힐링센터의 큰 주제가 빛과 물과 숲이다. 여기에 꽃밭과 수많은 야생화가 함께 피고 각종 산새와 야외동물과 숲속의 파수꾼인 개 가족이 공존한다. 또한 부부는 천성의 농심으로 심고 가꾸고 수확하여 나눈다. 상추, 쑥갓 등 야채에다 콩, 감자, 고구마 등 모두가 손수 가꾼 자연산이다.
곤지암밸리가 자랑하는 원형 구조의 돌벽 야외 테라스 ‘에코’가 참으로 특이하다. 매직스톤 2만개로 축조한 노천 무대로 연극회나 파티장소로 적격이라고 설명한다. 또 수용규모 120명의 컨퍼런스 룸은 나무와 바위와 연못의 향취를 내다보며 회의하고 토론할 수 있다.
이 밖에 가족행사, 연수 세미나 장소로 힐링 하우스, 부띠끄형 호텔, 소나무 숲속의 훼미리 하우스, 잔디밭 1,000평 규모의 그린 하우스가 곳곳에 펼쳐있다.
야외 공간 곤정원(昆正園)은 ‘곤지암 + 몸과 마음 바르게 + 뜰안’이라고 설명한다. 야외 결혼식, 대규모 가족행사, 음악제 등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여기에다 족구, 배구장이 옆에 있고 다람쥐와 희귀조들의 놀이터가 곁들여 있다.
무엇보다 꼬불꼬불 여기저기로 닿는 산책로와 깊은 숲속의 캠핑장 등이 실로 천혜의 힐링 코스라는 소감이다.
오늘의 7080 세대의 눈으로 보니 백 회장 부부의 곤지암 힐링센터가 선견지명으로 보인다. 은퇴를 앞둔 노후준비 세대에게 좋은 모델이 되기를 소망한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4호 (2016년 8월호) 기사입니다]

이코노미톡뉴스, ECONOMYTALK

(이톡뉴스는 여러분의 제보·제안 및 내용수정 요청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pr@economytalk.kr 로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시대정신 시대정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