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군민 외 외부인 개입 없었나

국가위기 조장 폭거
국무총리 6시간 감금
성주 군민 외 외부인 개입 없었나

글/ 이진곤(정치학박사, 경희대 정외과 객원교수, 국민일보 전 주필, 전 논설고문)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역사상 가장 강력한 수준의 대북 규탄 표현이 지난달 16일 채택된 의장 성명에 포함됐다고 한다. 이 성명은 북한의 핵·미사일 및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에 대해 “가장 강력한 용어로 규탄한다(condemned in the strongest terms)”면서 “(이는) 유엔 안보리 결의의 심각한 위반이며 동북아는 물론 더 광범위한 범위에서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폭언, ‘박근혜 한테 전화해서 물어봐라’

그런데 같은 무렵, 그러니까 아셈회의 개막일인 15일, 정작 국내에서는 해괴한 사태가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아셈회의 참석차 출국함에 따라 국정의 최고 사령탑 역할을 하게 된 황교안 국무총리가 6시간 동안 사실상 감금되는 상황이, 벌건 대낮 나라 안에서 일어난 것이다.
황 총리는 이날 한민구 국방부장관과 함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지역인 성주를 찾았다. 그는 군청 현관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인 김항곤 군수에게 무릎 꿇은 자세로 정부의 일방결정에 대한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리고 군중들을 향해서도 사과와 함께 전자파 측정 결과를 들어 설명과 설득을 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일부 주민들(아니면 직업 시위꾼들?)은 욕설을 퍼붓고 생수병, 달걀을 던지는 등 과격행동으로 대응했다.
황 총리 일행은 군 청사 안으로 피했고 내부 통로를 통해 뒤쪽에 대기 중이던 미니버스에 탔으나 주민들은 농업용 대형 트랙터 3대 등으로 퇴로를 가로막았다. 주민들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라”, “박근혜(대통령)한테 전화해서 (사드 성주 배치를) 포기할까 물어봐라. 지금 (대통령이 있는) 몽골에 전화하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성산가야 옛 터전에 이어 받은 선비 문화, 높은 기상 맑은 정기 우람하게 뻗어 나네…”
성주군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성주의 노래’가 주는 느낌과는 너무 다른 주민들의 행동이었다. 마을 회관 한쪽 벽을 장식했던 박 대통령의 대형 걸개사진을 떼 낸 고령박씨 집성촌 주민들의 항의에서는 체통을 잃지 않으려는 나름의 안간힘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군수의 혈서와 단식농성, 군청 앞의 폭력 항의는 ‘선비 문화’ ‘높은 기상’ ‘맑은 정기’라는 자랑을 무색하게 했다.

노무현의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말

어쩌면 외부세력이 상황을 격화시켰을지도 모른다. 직업 시위꾼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집단행동이 일어날 만한 여건이 조성된 곳이라면 어김없이 나타나 분탕질을 한다. 사회혼란이 가중되고 정부 혹은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는 것이 이들에겐 투쟁역량과 생존력 강화의 제1조건이 된다. 이 점에서는 벌레들의 서식 및 번식 양태와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민주’의 남용은 민주정치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5월 21일 5.18행사 추진위원회 간부들을 접견한 자리에서 한탄했다.
“전부 힘으로 하려고 하니 대통령이 다 양보할 수도 없고... 이러다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는 생각과 위기감이 든다.”
사드 배치는 옳으냐 그르냐 이전에 불가피한 선택의 문제다. 한반도는 세계에서 가장 폭발 위험성이 높은 화약고다. 병력의 수적 약세는 무기체계 첨단화 등의 방법으로 보완할 수라도 있다. 그렇지만 핵무기의 경우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로서는 대응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오직 하나 있다면 북한이 설마 같은 혈육인 우리를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하겠느냐는 ‘막연하고 눈물겨운 기대’ 정도다.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12월 13일(한국 시간) 미국 LA에서 민간 외교정책단체인 국제문화협의회(WAC) 주최 오찬에 참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그간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 수단’이라고 주장해 온데 대해 언급했다.
“많은 경우 북한의 주장은 믿기 어려운 게 많지만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상당한 합리성이 있는 주장이라는... 합리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2006년 9월 7일 핀란드 국빈방문 중 타르야 할로넨 대통령과 정상회담 및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그해 7월 5일 발사됐던 북한 미사일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했다.
“대포동 실험 발사는 그 미사일이 미국까지 가기에는 너무 초라하고 한국으로 향하기에는 너무 큰 것이다. 그래서 저는 무력공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발사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와 미국이 ‘대화’에 매달리는 사이에 북한은 핵 및 미사일 기술개발에 큰 진전을 이뤘다. 우리는 그들에게 시간을 벌어주고 돈까지 보태줬다. “그 돈은 그 돈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믿는다고 하자. 어쨌든 그 돈이 독재 비용에 충당됐을 것이고, 핵무기 등 개발로 어려워진 재정난을 완화시켜 준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전대표나 안철수 전대표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논리도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는 13일 오전 페이스북을 통해 사드 배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문 전 대표는 본말전도, 일방결정, 졸속처리를 ‘3대 잘못’으로 지적했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적고 있다.
“따라서 먼저 국익을 충분히 고려한 종합적인 북핵문제 해법을 마련하고, 그 틀 속에서 ‘사드문제’를 비롯한 종합적인 위기관리방안이 제시되어야 마땅합니다.”
‘종합적’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일 수 있는지, 그렇게 잘 아는 분이 집권기엔 뭘 어떻게 했는지, 지난 대선이래 야당 리더로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정부를 흠집 내는 일에만 골몰하는 인상이다.
더 엉뚱한 쪽은 ‘안보는 보수’라고 입장을 천명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다. 그는 당초 ‘국민투표’론을 제기했다가 지금은 한발 물러서 ‘국회 비준동의’에 매달리는 모습이다.
“사드는 누구 말대로 일개 포병 중대 배치 사안이 아니다. 국가적 중대사이다. 루스벨트가 수십 차례 노변담화로 국민과 소통했듯이 대통령께서 나서야 한다.”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반도 사드배치에 대한 긴급현안토론회’에서 그가 한 말이다.
사드 배치의 군사적 의미 및 의의와는 별개로 문·안 전 대표의 목소리에 힘입어 사드는 ‘중대사’로 부각됐다. 미사일 공격에 대한 방어수단인데도 마치 선제적 공격수단인 것처럼 국민에게 인식되기도 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민감하게 반응하는데다 전자파 영향이 과도하게 부풀려진데 따라 반대자들의 반발은 더 격렬해졌다.
사드에는 탄두가 장착되지 않는다. 적의 미사일에 부딪쳐 이를 폭발시키는 충돌장치일 뿐이다. 사드 레이더 역시 다른 것에 비해 특별히 위험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유사한 레이더로 전자파 시험을 거쳤을 뿐만 아니라 사드가 배치돼 있는 괌 기지를 국내 언론에 공개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사드 괴담은 계속 번지고 있다.
이 와중에 군사적 기밀이 너무 쉽게 노출돼 버렸다. 사드 포대의 좌표를 고스란히 북한 측에 알려 준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정권 초기에는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 심리전단의 규모·조직체계·종사자 수 등을 공개하더니 이번엔 주요 군사시설을 공개했다. 국가안보, 국방, 정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가?

나라 망하고자 사생결단인가

사드 배치가 국가적 중대사인 게 사실이라면 국회차원의 조사와 논의가 필요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미 결정된 사드 배치를 국회 비준을 얻어 다시 결정하라는 것은 야당들의 무리한 요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이는 한미 군사 동맹과 관련된 문제다. 우리 국회가 주한미군의 무장 강화와 관련해 일일이 국회 비준을 받으라고 할 경우 동맹 체제는 유지될 수 있을까? 야당 측은 민주적 방식을 위해서라면 동맹은 희생시킬 수도 있다는 뜻일까?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이름을 날렸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경우 한 종편 TV 프로그램에 출연, 한반도 사드 배치로 촉발될 확장적 군비 경쟁을 우려하면서 “이렇게 민족이 망하는 길로 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일까? 우리는 그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이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막아 주리라 기대하면서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말처럼 들리지만 설마 그런 뜻이기야 했겠는가.
율곡 이이선생이 실제로 ‘10만 양병설’을 제기했는지 아니면 제자들에 의해 각색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모양이지만, 이미 이는 역사에 깊이 각인된 ‘사실(史實)’이다. 당연히 이를 수용하지 못한 선조임금과 조정에 대한 개탄과 비판에 국민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낸다. 그러면서도 현실의 군사적 위기 상황에 대해서는 정파적 이해, 혹은 진영 논리에 따라 서로 상반되는 주장과 평가를 들고 다툰다.
임진왜란 두해 전에 통신사로 갔던 정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의 보고가 서로 달랐다. 전자는 왜의 내침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고, 후자는 이를 부인하면서 민심이 동요할 것을 걱정했다. 정·부사의 보고가 이처럼 정반대로 갈렸던 것은 현지 상황에 대한 인식 차이 때문이었다기 보다는 당시 서인과 동인 간에 벌어졌던 당쟁의 탓이었다. 그 교훈을 모르지 않을 것임에도, 여야 정치인들은 전혀 다른 판단과 처방을 내놓으며 싸운다.
정치권이 하찮은 정파적 이해 때문에도 사생결단하듯 하는데 국민이라고 성인군자의 도를 실천하려 할까. 어느 때부터인가 진영논리에 휩쓸려 감정싸움에 매몰돼 가는가 하면 지역적 집단적 이·불리를 싸고 정부, 나아가 국가를 둘러 엎어버릴 듯한 분위기를 만들곤 한다. 여기에 직업시위꾼들까지 가세하는 바람에 금방이라도 사회가 와해될 듯이 요동친다. 물론 국민 가운데 극히 일부이겠지만 민심을 불안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한 기세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적어도 국가의 존망과 직결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정파적 이해를 떠나 애국적 견지에서 접근할 일이다. 정치적 명망가들에게 묻고 싶다. 귀하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4호 (2016년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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