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세종대왕이 있었기에…

[김동길 박사의 '이게 뭡니까']

피가 통하지 않는 ‘괴물’
알파고, 어쩐지 반갑지 않아
아 세종대왕이 있었기에…


글 /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태평양위원회 이사장

한국바둑을 대표하여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과의 대국에 출전, 1승 4패를 기록하고 말았다. 피가 통하지 않는 신진 괴물 ‘알파고’(AlphaGo)에게 바둑천재가 3국까지 연패하다 제4국에서 승리했으니 다행이다. 괴물 알파고에게 ‘만물의 영장’ 자리를 내주었다면 심각한 문제이지만 인공지능이 인간을 완전히 넘어섰다고는 보지 않는다.

괴물 ‘알파고’의 출현 반갑지 않다

이세돌이 제3국까지 투석한 후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인간이 인간보다 우수한 기계를 만든다면 사람 사는 세상이 무슨 꼴이 되겠는가.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우수할 수 있다면 똑똑한 인간이 주눅 들어 정신적으로 비실비실하는 일이 생기지 않겠는가.

이렇게 되면 열등감에 사로잡힌 인간들이 홧김에 알파고 뿐만 아니라 그와 비슷한 인공지능들을 때려 부수는 일이 생길 테니 인간과 기계의 싸움질이다. 그래서 인공지능은 사람보다 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사람보다 머리가 썩 좋은 인공지능들을 잔뜩 만들어 놓으면 인간은 자살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궁극적으로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행복 아닌가. 우리가 오늘 행복하지 못한 것은 머리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머리를 잘못 쓰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거짓말로 이웃을 속이고, 영국시인 Alexander Pope(1688~1744)의 말대로 ‘Man’s in humanity to man’ 즉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잔인무도하게 이웃을 대하기 때문”임을 나는 안다. ‘만물의 영장’보다 더 머리가 좋은 존재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다. 인간의 머리와 기술이 기차를 만들고 자동차와 비행기를 만든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바둑천재 이세돌을 이긴 괴물 알파고의 출현은 조금도 반갑지가 않다.

돈 돈 하는데…밥 안먹고 돈만 먹는이도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쌈 잘하는 아들보다 말 잘하는 아들’이란 속담도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다.
쌈 잘하는 아들 있으면 뭘 합니까. 부모가 경찰에 불려 갈 일만 생긴다. 말 잘 하는 아들이 있으면 변호사도 시키고 국회의원도 만들 수 있다. 또 코미디언으로 성공하면 큰돈도 벌 수 있다.
영어 속담에 ‘Money talks’라는 말이 있는데 ‘말 한마디에 천냥 빚 갚는다’는 우리 속담보다는 질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입도 없는 돈이 무슨 입으로 말 할 수 있겠습니까만 ‘돈이 해결사’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율곡의 모친 신사임당의 초상이 있는 지폐 2000장은 007가방에 쏙 들어간다는데 그 가방 하나 들고 가서 해결된 난제가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나 가지고 안 되면 둘, 둘로도 안 되면 다섯 또는 열 개, 그래도 안 되면 트럭에 싣고 가서 그 집 광에다 쌓아주면 된다. 그때야 비로소 돈이 말문을 열게 된다.
말은 안 해도 일만 되면 그만이다. 국회의원이나 정치 브로커들 중에는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밥은 안 먹고 돈을 먹는다고 들었다. 정해진 형기(刑期)를 다 살고 나와서 숨겨둔 돈을 쓰는 것이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믿고 끝까지 불지 않는 의지와 인내심의 사나이들도 없지는 않다.
꿈에 나타나도 보기 싫은 그 과장의 얼굴을 보기 위해 회사에 나가는 것은 아니다. 회계에서 매달 25일이면 보내주는 월급봉투 때문에 주말만 빼고 하루도 쉬지 않고 회사에 나가는 것이다. 회사에 안 나가면 돈이 어디서 생기는가. 돈 때문에 잠 오는 눈을 비비며 밤일을 한다. 밤업소에 밤마다 뛰어가서 노래 부르는 가수들도 돈 때문에 달려간다. 피투성이가 된 격투선수도, 심지어 땀 흘리는 프로 운동선수들도 얼마를 받느냐가 늘 문제이다.
책을 써서 책이 잘 팔리는 교수는 돈도 많고 오라는 학교도 많다. 메시처럼 공을 잘 차고 샤라포바처럼 테니스를 잘 하고 타이거 우즈처럼 골프를 잘 치면 돈도 잘 벌고 남에게 존경도 받는다. 고리대금업자가 되었어도 돈만 많이 벌면 호강하며 살 수 있다.
사람의 품격을 수입이나 재산을 가지고 평가하는 오늘의 자본주의는 이제 막다른 골목에 왔다. 돈 있는 사람들만 대접 받는 세상은 잘못된 세상이다. 가난한 사람들 중에 민중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있어야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 구린내가 나기 시작한 지도 꽤 오래 되었건만 아직 대책이 없으니 큰일이다.

세종대왕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

조선왕조 태조 이성계는 아들만 여덟이다. 왕비 한씨 몸에서 여섯, 계비 강씨 몸에서 둘이다.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일으킨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지켜본 이성계는 끔찍이도 사랑하여 세자로 책봉했던 막내아들 방석(芳碩)이 태조 7년 1398년 죽임을 당하는 참극을 겪은 뒤 인생무상을 절감한 나머지 왕위를 방과(芳果)에게 물려주고 함흥에 칩거했다고 알려져 있다.
둘째 형 방과가 왕위로 오르게 한 것도 야심만만했던 이방원의 책략이었다. 형 정종(定宗)은 2년 밖에 왕위를 지키지 못했고 1400년에 드디어 방원이 왕위에 올라 아들 셋을 두었는데 그중 막내를 왕위에 올려 그가 조선조 27대 군왕 중 최고의 명군이 되었으니 알다가도 모를 것이 역사라고 하겠다.
세종은 천재였다. 하늘은 이탈리아 반도에 Michelangelo(1475~1564)와 Leonardo da Vinci(1452~1519) 같은 천재들을 두기 전에 한국 땅에 세종을 보내었다. 그들에 비해 세종은 더욱 다각적인 천재였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독일에서 태어난 Goethe(1749~1832) 같은 다양한 천재였음이 명백하다.
세종은 정음청(正音廳)을 만들어 훈민정음을 창제케 하고 집현전(集賢殿)을 만들어 전국의 우수한 학자들을 총망라하여 다양한 학문을 강론케 했다. 또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등을 출판케 하고 농업, 역사, 지리, 의학에 관한 서적도 다수 간행했으니 그의 관심분야가 매우 다양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정치 경제는 물론 과학과 국방에도 세종은 놀라운 천재를 발휘하여 조선조 500년의 튼튼한 기초를 마련한 셈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겠는가. 한국인이 국제사회에서 이렇게 떳껏할 수 있었겠는가.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에서 40년간 언어학을 강의한 김진우 교수가 일전에 어떤 모임에서 왕명을 어기고 위화도에서 회군한 태조 이성계를 용납할 수 없지만 그의 손자들 중에 한글을 창제한 세종이 나타나 태조도 용서할 수 있고 왕자의 난으로 조야를 피로 물들인 태종 이방원도, 맏아들 양녕(讓寧)대군, 둘째 효녕(孝寧)대군을 세자로 책봉하지 않고 셋째인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사실 때문에 밉지가 않다고 말하여 내가 감탄하여 무릎을 쳤다.
세종대왕이 계셨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 아, 세종대왕이여.

천재를 못 알아보고…

엊그제 아인슈타인 탄생일을 맞아 인터넷에 그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들이 많이 떴다고 들었다. 그가 아직도 살아 있다면 137세가 될 테지만 1955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지나간 61년 동안 아인슈타인은 매일 우리와 동고동락하는 가까운 아저씨로 느껴진다.
그는 네 살까지 말도 제대로 못하는 이른바 지진아였지만 스물여섯 되던 해 ‘상대성원리’(相對性原理, principle of relativity)를 발표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고, 16년 뒤에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런 지진아 아인슈타인에 비하면 나는 돌이 되기도 전에 맹산의 시골집 문고리를 잡고 심청가를 부르다가 문고리가 빠지는 바람에 뒤로 자빠져 한참 울었다고 어머님께서 증언하셨지만 그걸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학교성적도 아인슈타인보다는 좋았다. 그러나 그 뒤에 아무것도 한 일 없이 90 나이를 바라보게 되니 내 꼴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고 하겠다.
아인슈타인의 성적표에 담임교사가 “이 학생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해도 성공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됨”이라고 써서 보냈다고 한다. 그래도 그의 어머니는 그 아들을 믿고 “너에게는 남과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다. 남과 같아서야 어떻게 성공하겠나”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나의 어머니께서도 항상 나를 격려해 주셨건만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인생의 종착역까지 가까이 온 듯하다. 그렇지만 나의 인생도 그런대로 보람 있는 인생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젊은 날들은 정의를 위해 나름대로 싸움으로 일관했다. 국가대표 권투선수와 맞붙어 주먹싸움을 하여 많이 얻어터졌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대들었다가 감옥살이도 했다. 60대에는 정치를 바로 잡아 보겠다는 허망한 꿈을 안고 살았지만 번번이 패배의 쓴맛을 마셨고 마침내 물러나 70대부터 나의 하루하루는 ‘사랑’이라는 예술을 위해 바쳐진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만나고 싶다는 사람들을 되도록 많이 만나서 줄 수 있으면 주고 위로할 수 있으면 위로하면서 늙은 몸을 이끌고 행복하게 사는 이 평범한 삶에 만족하고 있다. 보잘 것 없는 삶이지만 “가슴속엔 사랑을 품고 머리 위엔 하나님 모시고…” (Heart within and God o’er head)라고 읊은 미국시인 H. W. Longfellow(1807~1882)의 ‘인생찬가’(A Psalm of Life)를 읊조리며 나는 지극히 범속하게 나의 석양빛을 즐기고 있다.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0호 (2016년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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