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계 정치상속, DJ계 분산 비교

3김간 고운정· 미운정
솔직·담백·직설 승부
YS계 정치상속, DJ계 분산 비교
정치 허업(虛業) JP가 양김 조문

YS가 88세로 서거하니 3김시대는 집권하지 못한 JP 홀로 남았다. DJ는 이미 6년 전에 떠났고 JP는 비록 휠체어 신세지만 아직도 건강하다. JP는 올해 아흔으로 양김보다 연장자로서 미운정 고운정이 겹친 두 분들의 마지막 길을 모두 조문했다. YS 빈소에서는 ‘신념의 정치인’이라고 최상의 조문사를 남겼다. JP는 평생 2인자로서 되돌아보니 정치란 허업(虛業)이라고 했다.

호랑이 굴에 진군하여 호랑이 격파

3김에 앞서 40대 기수론의 정치선배는 소석(素石) 이철승(李哲承) 7선 의원으로 올해 아흔넷이지만 건강하여 대외활동을 계속한다. 소석이 장면 정부의 민주당 소장파 리더로 활약할 때 YS와 DJ는 겨우 초보 수준이었다. 그러나 5.16 정부의 정치활동 규제로 소석이 최장기간 해외로 유랑하고 있을 때 양김은 정치 해금으로 야당 투사로서 급성장할 수 있었다.
40대 기수론 가운데 YS와 DJ가 집권에 성공한 반면 소석이 끝내 집권하지 못한 것도 이와 관련된다고 본다.
양김의 정치적 성장 배경에는 막강한 박정희 대통령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양김의 공동전선은 시너지 효과를 가져와 영원한 정치적 동반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다. 그러나 10.26으로 공동의 표적이 사라지자 이를 곧 군부통치 종식이라고 속단하여 서로 먼저 집권하겠다고 다툰 것이 5·6공으로 이어졌다.
그 뒤 YS가 3당 합당으로 대세를 역전시킨 것도 특유의 승부수라고 평가된다. 그러나 일단 집권한 후 YS는 민자당 세력이나 군부세력을 그냥 두지 않고 단칼에 혁파했으니 바로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진군했다는 말이 맞는다.

망년회모임의 “왜 자꾸만 YS야…”

YS가 떠나고 보니 옛 상도동계 정치학도들은 김무성 대표, 서청원 최고위원 등이 재집권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모양새다. 또 YS계 창업공신이나 가신(家臣)그룹들도 건재하여 YS정치의 맥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DJ의 동교동계는 상대적으로 분리·와해되고 있는 형국으로 비유된다. 권노갑 고문이 좌장격으로 어른역할을 하고 있지만 DJ직계라야 미망인 이휘호 여사를 받들고 있는 박지원 의원뿐, 호남민심을 대변하는 세력은 미미하게 비친다. 이에 비해 친노의 문재인 대표가 DJ의 창업자산의 오너 격으로 간판을 바꿔 단 모양이니 YS와 DJ의 정치유산 상속이 차별되는 것이다.
YS의 정치기법은 전격적인 돌파력이다. 3당 합당 후 기존 지배주주들의 반발과 성토를 짓누르고 하나회 척결로 군부세력의 기를 꺾었다. 또 청와대 금고 끌어내고 안가(安家) 해체하고 청와대 앞길을 개방하여 문민(文民)시대를 선언하니 쿠데타 정치는 종식됐다.
YS의 결단에는 오기가 넘쳤다. 노태우 정부가 몇 차례나 여론조사 끝에 구 중앙청 해체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하자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시키라는 한마디로 처리했다. YS 개혁정치에 기득권층의 저항이 밀려오자 전원 민간인들로 구성된 행정쇄신위를 발족시켜 민간기구 이름으로 개혁과제를 전광석화 식으로 처리했다.
YS는 당시 박동서 위원장을 불러 개혁과제에 대한 저항을 은밀히 일러주어 과감한 개혁안을 도출할 수 있었다. YS가 퇴임한 후 어느 해 연말 망년회에 참석하여 몇 가지 사례를 들려주기도 했다. 이날 분위기가 고조되어 필자가 YS 면전에서 “그때 YS께서 말이야…”라고 청와대 방문에서 겪은 일화를 소개한 실수를 저질렀다. 이때 YS가 “왜 자꾸 YS냐”고 따지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다급한 심정에 YS 옆에 김기수 수행실장을 핑계 댔다. “김 실장이 어른께서는 언론용어인 YS라는 호칭에 익숙하다”라고 말하여 그냥 YS라고 불렀다고 사과하자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하소”라고 말씀하여 모두가 흡족하게 웃었다.
상도동 자택을 방문했을 때 건강이 좋아보였지만 의사들이 조깅을 그만두라고 권하여 배드민턴으로 바꿨는데 인근 주민들을 만나면 그렇게 좋아하시더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듣기로는 퇴임 후 조깅을 계속 열심히 하여 이미 무릎에 무리가 쌓였노라고 했다. 신부전증 등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쳤다지만 무리한 조깅이 노환을 불러오지 않았을까 싶다. 정치적 투지와 강성의 연설 이미지와는 너무나 달리 포근하고 따뜻했던 YS의 악수와 꾸밈없는 사투리가 귀에 생생하다. 이제는 오직 고인의 명복을 빌 뿐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6호 (2015년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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