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종교④]

라마(Lama)敎


글/裵興稷(배흥직) 목사 (안동, 慶安老會 功勞 목사)

라마교는 아시아 동북 티베트를 중심으로 번지고 있다. BC 649년경 송찬감보(松贊岡保) 왕국에 왕비가 둘이었는데 한 왕비는 중국 당(唐)나라 출신이고 다른 왕비는 네팔 출신이었다.
당나라 왕비는 중국계의 불교를 들여오고 네팔 출신 왕비는 인도계의 불교를 들여왔다.

티베트에서 만주, 몽골 등에 확산

이 두 개의 불교는 주술(呪術)을 중요시하는 티베트 고유의 불교 신앙을 배척하지 않고 혼합형으로 토착화 됐다. 그 후 8세기 중엽 인도의 샨티락시타와 파드마 삼바바의 두 사람이 밀교(密敎)를 전파한 후에 티베트 불교가 형성됐다.
다시 1038년에는 인도에서 사티샤라는 고승이 와서 티베트 밀교를 개혁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라마교의 전파 지역은 주로 만주, 몽골 등에 신도를 가지고 있으나 티베트가 중심이 되어 불교의 한 종파라고 할 수 있다.
라마교는 한자로 喇嘛敎라고 쓴다. 이는 주로 사장(師長)이라는 의미에서 유덕(有德)한 고승에게 쓰여지는 명칭이다. 지금은 일반 승려에게도 사용한다.
불교가 최초로 티베트에 전해진 것은 AD 7세기로 ‘톤미’(Thon-mi)라는 사람이 왕명을 받고 인도에 입국하여 범어(梵語)를 배워 불전(佛典)을 번역했다. 이어 8세기 중엽에 나란타사(那爛咤寺)에 있던 ‘연화사좌사’(蓮華士座師)가 최초로 라마교 승단(僧團)을 조직했다.
연화승(蓮華僧)이 신봉하는 불교는 밀교로서 일시 번성했으나 11세기부터 다시 교세가 확장되어 몽골에서 포교하여 세력이 강화됐다.

법왕은 정치와 종교를 모두 지배

중국의 원(元)나라 때 시작하여 원나라 제왕들이 모두 라마교의 외호자(外護者) 역할을 했다. 13세기 이후 세조 쿠비라이가 북경에서 라마교 대사원을 짓고 그곳에 라마교 법왕(法王)을 두어 티베트 내정을 간섭했다.
그래서 라마교 법왕은 정교(政敎)를 함께 지배하는 형세가 됐다.
라마교는 불교의 한 종파로서 불교의 ‘사제십이인연’(四諦十二因緣)을 설교하지만 라마교의 특색은 일종의 밀교로서 범신론(汎神論)적으로 해석하여 우주의 본성은 유신론(有神論)적으로 변화시켜 부처를 숭배하는 불교이다.
후세에 와서는 관음신앙에 깊이 들어가 법왕을 관음(觀音)의 화신으로 지칭했다.
교도(敎徒)를 ‘육자신주’(六字神呪)라 하여 엄(掩), 마(摩), 니(尼), 발(鉢), 특(特), 미오(迷旿)라 하고 극락도생(極樂徒生)을 흔구하고 있다.
교도의 소재는 범위를 확대하여 신도수는 1천여만 명으로 티베트인 400만명, 만주인 300만명, 몽골인 200만명, 중국인 100만명 가량이다.

달라이 라마가 라마교의 법왕

▲ 제14대 달라이라마

교주는 ‘달라이 라마’로 절대 권력자이다. 두 개의 파가 있어 황모파(黃帽波)와 홍모파(紅帽波)로 불린다. 두 종파에는 겐둔그룹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초대 법왕으로(AD 1391~1475)부터 시작하여 지금 생존하고 있는 달라이 라마까지 14대에 이른다.
‘달라이’는 몽골어로 ‘바다’라는 뜻이고 ‘라마’는 ‘웃어른’으로 덕이 높은 스승을 말한다. 오늘의 티베트인들은 자신들의 국가를 ‘관음의 정토’로 생각하고 달라이 라마를 통치자의 화신으로 본다.
라마교의 종교음악은 주로 독경(讀經)과 의식의 한 방법으로 발전했다. 이 음악이 몽골에서 발달하여 명나라와 청나라로 전해졌고 현재의 몽골음악으로 정착했다.
이 음악은 중국식과 몽골식의 두 가지 양식으로 전래되어 왔다.
※사제(四諦)는 고제(苦諦), 집제(集諦), 멸제(滅諦), 도제(道諦) 등 4가지의 영원한 진리를 뜻한다. ‘십이인연’(十二因緣)은 과거에 지은 업(業)을 따라 현재와 미래의 고통을 받는 12가지 인연을 말한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5호 (2015년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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