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의 이야기가 오늘까지

죽는 날까지 책을 가까이…
젓갈 할머니의 당부
10년 전의 이야기가 오늘까지


글/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태평양위원회 이사장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 갖고 승전 축전에도 참석하여 한중 간 친선을 돈독히 한 것은 외교상의 쾌거이다. 또한 북의 김정은 독재정권을 향해 무언의 강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 뒤 박 대통령이 상해 임시정부 청사 재개관식에 참석한 것도 매우 뜻 깊은 행보였다.

이봉창·윤봉길의사 맹세를 지켜본 태극기

재개관하기 전에 상해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한 사람들은 작은 규모와 내부의 낡은 부문에 실망했을 것이다. TV로 이번에 재개관한 모습을 지켜보니 감격스러웠다.
우리나라 헌법에 대한민국 정부는 상해 임시정부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명시했다. 당시 임정 요원들의 독립정신과 애국정신을 이어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 정신이 과연 오늘의 한국정부에 의해 충분히 계승되고 있는가. 대통령 자리에 올랐던 열한 분이 반성의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당시 44세의 장년 이승만이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미국을 떠나 상해로 밀항하다시피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옛일을 생각하면 감개무량하다. 그러나 그 임시정부는 정식정부가 아니어서 어느 나라도 승인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고립무원의 애국단체로 어느 한 나라와도 대사 교환이 불가능했다.
그때 고군분투 했던 독립투사와 애국지사들을 생각하면 감격과 동정의 눈물이 쏟아진다.
임시정부의 독립정신 거목이던 백범 김구가 우뚝 서 있었다. 이봉창과 윤봉길의사로 하여금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게 한 김구는 비명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의 맹세를 지켜본 태극기는 광복군에 속해 있던 장준하가 가슴에 품고 귀국하여 당시 이대 총장이던 김옥길의 권유로 이대 박물관에 기증한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임정의 애국정신 살려’ 진정한 광복, 평화통일로 가는 길이 시급하지만 상해 임정 출범을 대한민국 건국 원년으로 삼을 수는 없고 삼아서도 안 된다고 믿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도 독립정신이요 애국애족의 열정이다.

약속 안 지키는 유명 정치인

기자가 유명 정치인에게 “왜 그렇게 거짓말을 잘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정치인이 대답하기를 “나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고 다만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적은 가끔 있었다”고 했다. 이때 그의 태도와 표정은 태연자약했다.
사람이란 약속을 했다가 지킬 수 없는 경우가 간혹 있을 수 있다. 지금은 다 잊힌 과거지사라 하겠지만 IMF 한파가 몰아쳤을 때 그에게 돈을 빌려줬던 친구들이 “내 돈 내놔”라고 아우성치는 바람에 하도 부끄러워 자살한 젊은 기업인도 있었다.
약속을 하고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은 나라가 한국이다. 지킬 마음은 있었지만 IMF 한파에 밀려난 기업인처럼 약속이행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키지 못할 약속을 남발하는 자는 처음부터 약속을 지킬 뜻이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 자를 협잡꾼이라 한다.
약속을 했다가 이를 지키는 것이 자기에게 불리하면 지키지 않는 철면피 지도자가 수두룩한 나라가 이 나라이다. 새로 구성되는 20대 국회에서는 이런 협잡꾼이 한 사람도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문서로 밝힌 계약은 구속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마저 말로 한 약속은 안 지켜도 된다고 착각하는 한국인이 많다. 그래서 예약문화가 자리 잡고 뿌리 내리기 어려운 나라가 한국이다.
호텔이나 식당에 예약해 놓고도 아무 연락 없이 감감 무소식이니 문명국이 되자면 아직도 멀었다. 나라를 바로 잡는 일이 지극히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믿는다.

‘죽는 날까지 책을 가까이 하라’

몇 해 전 집으로 ‘뉴에이스 영한사전’과 ‘뉴에이스 국어사전’이 배달되어 와 표지를 들춰보니 고무도장으로 ‘증 유양선, 노량진 수산시장 충남상회, 02-813-2943’, “죽는 날까지 책을 가까이 하라”고 적혀 있었다.

▲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만난 기부천사 젓갈 할머니 유양선 씨.

여러 날 뒤에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충남상회를 찾아갔다. 젓갈가게 여럿이 있는 가운데 주인아주머니 유양선 여사가 웃으며 맞아주었다.
이 두 권의 사전은 책꽂이 한 구석에 늘 꽂혀 있었지만 눈에 익은 사전들이 있어서 꺼내볼 생각은 안하고 있었는데 오래 전부터 쓰던 사전에 진력이 나서 올 들어 그 두 권의 사전을 많이 보게 되니 새 친구를 만난 것 같아 즐겁다.
그 뒤 충남상회를 다시 찾아갔지만 유양선 여사는 가게에 없었다. 유 여사가 소문 난 독지가여서 사재를 털어 장학사업도 꾸준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신문을 통해 본 적이 있었지만 연락은 하지 못했었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도 유양선 할머니를 기억한다.
잘 먹고 잘 살아 보겠다고 죽을 애를 써서 큰돈을 버는 이들이 있지만 그 돈을 써 보지도 못하고 저세상으로 가는 어리석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반면에 한 평생 젓갈집에서 잔뼈가 굵어진 유 할머니는 보통의 젓갈장사가 아니었다.
유양선 할머니는 일생을 대학교수로 살고 있는 나에게 오늘 아침에도 한마디 하신다.
“죽는 날까지 책을 가까이 하라”고.
(유양선 여사는 노환으로 가게를 떠나 요양 중 : 편집자)

‘그대는 이 땅의 양심이 되라’

마하트마 간디를 인도의 양심이라 부른다. 영국의 식민지 시절 인도인들은 간디를 보고 힘을 얻고 용기를 얻었다. 그는 동족끼리 싸우는 것을 막아 보려고 해도 듣지 않으면 식음을 전폐하고 단식했다. 그의 단식이 장기화되면 그가 굶어 죽을 것을 걱정하여 당사자들이 분쟁을 중단했다.
영국에도 간디를 존경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영국 고위 공직자들이 인도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런던에서 간디를 모셔다 놓고 원탁회의를 하다가 금요일이 되면 회의를 중단했다. 그날은 간디가 자기수양을 위해 말을 안 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땅의 건강한 젊은이들을 향해 “한국의 양심이 되라”고 권한다. 이 말은 바로 나의 스승 함석헌 옹이 일러주신 말씀이다. 스승은 “나는 실패했지만 너는 그런 사람(한국의 양심)이 되라”고 당부했다.
나도 후배들에게 “이 땅의 양심이 되라”고 당부하면서 양심의 가책 때문에 “나는 실패하여 너절한 인간으로 마감하지만…”이라고 덧붙인다.
내가 그런 큰 꿈을 이루지 못하고 초라하게 끝나는 까닭은 타고난 DNA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고 또 옳은 일을 보고도 용기를 내어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니 ‘내 탓이오’라고 내 가슴을 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후배들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너는 한국의 양심이 되라. 월남 이상재처럼, 도산 안창호처럼, 남강 이승훈처럼, 고당 조만식처럼, 너는 이 땅의 양심이 되라”
죽어도 그 꿈만은 버리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 속의 평화

사람은 누구나 평화를 원한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민족이나 국가도 그렇다. 인류는 줄곧 평화를 원한다면서 대부분의 세월을 전쟁으로 낭비해 왔다. 전 세계가 완전히 평화로운 때는 단 하루도 없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의 삶 속에 완전무결하게 평화로운 날이 하루도 없었다는 말과 일치한다.
인간의 욕심이나 야망이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알렉산더 대왕, 줄리우스 시저,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카이제르 월헬름 2세, 아돌프 히틀러 등이 모두 전쟁 도발자로 낙인 찍혀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위인이나 영웅호걸이 다 전쟁으로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유치원부터 싸움이 시작된다. 경쟁도 싸움이다. 욕심 없이 인류의 진보가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경쟁도 일종의 전쟁으로 승자와 패자도 평화를 잃는다. 세계평화를 위해 유엔이 태어났지만 전쟁을 방지할 능력이 없어 전쟁의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명목을 유지한다.
나는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큰 전쟁을 두 번이나 겪어 평화의 소중함을 절감한다. 그러나 김정은이 입만 열면 ‘남조선 불바다’로 협박 공갈하는 마당에 평화를 말하기가 쑥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 아침엔 찬송가 475장, ‘이 세상은 요란하나 내 마음 늘 편하다. 구주의 뜻 준행하니 참 기쁜 복 내 것일세’라고 부른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194호 (2015년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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