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호]

‘노태우시대’ 의 재인식

‘물태우’ 아닌 탈권위

강원택 교수, 첫 직선제로 전환기 리더십

6공요인, 귀가 큰 사람, 기다림의 리더십

역대 대통령시대의 공과는 세월이 지나고 2012-11-09_090557.jpg 시대가 바뀌면서 달라지기도 한다. 학자와 연구가들이 자료를 분석하고 증언을 들어가며 기왕의 인식과 다른 사실을 발굴하여 가감하고 첨삭도 하게 된다. 6공화국 노태우 대통령시대에 관한 학자들의 연구 논문집이 ‘노태우시대의 재인식’으로 출판되어 나왔다.

노태우시대, 전환기적 리더십

서울대 정외과 강원택(康元澤) 교수 등 13명의 연구논문집 ‘노태우시대 재인식’(2012.8. 나남출판)은 나약한 국가 리더십 ‘물태우’가 아닌 전환기의 한국사회를 이끈 민주화 리더십으로 평가된다.

이 논문집은 한·소, 한·중 수교 등 북방외교를 개척한 노태우시대를 되돌아 보기 위해 한·중 수교 20주년을 계기로 계획됐다. 대표 편저 강원택 교수 등 13명이 국내정치, 대외관계, 경제정책 등 전 분야를 망라하여 노 대통령을 민주화시대 첫 대통령, 시대상황을 적극 수용한 리더십으로 평가했다.

강 교수는 책 머릿글에서 역사는 ‘경로의존적’ 이라면서 노 대통령의 민주화시대가 오늘의 정치, 경제, 사회질서의 기반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우리가 지켜본 노태우시대도 6.29 민주화선언으로 부터 북방외교, 남북 7.7선언, 언론자유화, 3당합당 등 수많은 업적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국민여론 조사에서는 언제나 노태우 대통령이 최하위를 면치 못한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노 대통령이 직선제에 의한 전통성 있는 대통령인데도 권위주의 체제의 일원이었는데다가 거액의 비자금 사건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에따라 강 교수는 노 대통령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과는 달리 역사적 업적을 이룩한 정치적 리더십은 따로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소야대 정국에 3당합당 정치

노태우시대 국내정치는 첫 직선제 대통령 이라고 하나 13대 국회 여소야대로 부터 국정 주도권이 야당으로 넘어가 독자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회고된다. 당시 야권의 단합에 밀려 5공 청산을 위한 국회 청문회가 열리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담사로 유배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뒤 YS와 JP와 함께 3당합당으로 거대여당을 구축했지만 이내 정파간 이해대립으로 분열되고 갈라지는 갈등을 노출시키고 말았다. 그렇지만 대외관계에서는 동서 냉전체제 해체와 탈권위주의 시대에 호응하여 한·소, 한·중 수교 등 북방외교에 획기적인 업적을 쌓을 수 있었다.

남북관계에서도 7.7선언을 통해 남북교역을 내국간 거래로 규정하여 대화와 협력의 물꼬를 텄지만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에 대해서는 단호히 배격하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연구논문집 ‘노태우 시대의 재인식’은 이같은 변화와 전환의 시대 획기적인 대외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일본 등과의 기존 외교관계는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샌드백 치듯 신바람 날린 사회

노태우시대의 경제와 사회정책은 자유화와 개방화의 확대 및 노동권의 신장, 복지정책의 강화 등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역시 6.29 선언 및 개방과 언론자유화 등과 관련되는 전환기적 리더십이라고 볼 수 있다.

노동운동의 활성화로 전투적 노조가 속출하고 다양한 시민운동이 반미, 국보법 철폐에다 통일운동으로 확산되어 대통령을 ‘물태우’라고 비하시키며 마치 샌드백 두들기듯 신바람을 날렸었다. 이 때문에 노태우 시대를 유약하고 중심을 잃은 물태우시대라고 보기 쉽지만 온갖 모멸과 냉소를 인내하고 수용한 전환기적 유연한 리더십으로 재평가해야 하지 않느냐는 결론인 것이다.

6공사람들 ‘노태우대통령을 말한다’

이보다 앞서 6공화국 요인 175인의 증언으로 엮은 ‘노태우 대통령을 말한다’ 상·하 두 권(2011.10. 동화출판사)이 직선제 첫 대통령의 이모 저모를 말해준 바 있다. 한 마디로 노태우 대통령이 시중에 비쳐진 ‘물태우’ 만은 아니라는 내용이다.

이 책에서 박준규 전 국회의장은 노 대통령이 당시 국민의 뜻을 쫓아 6.29 선언하고 선거 유세시 광주, 전주에서 투석과 폭력을 감수하는 모습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또 비자금에 관해서도 DJ,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혐의는 고발됐지만 정치적 이유로 덮어진 사실을 국민이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재순 전 의장은 대만과의 국교를 단절하면서 중국과의 수교를 서두른 배경을 설명했고 김덕주 전 대법원장은 노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는 사이로 임명됐지만 재임중에 어떤 간섭이나 판결 시비가 한번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또 이현재 6공 초대 국무총리는 노 대통령의 국정 리더십을 타협, 조화, 인내로 요약했고 강영훈 전 총리는 민주화 과도기의 유연한 리더십, 노재봉 전 총리는 ‘군출신 대통령은 내가 마지막’이라고 다짐했다고 증언했고 정원식 전 총리는 중요한 이슈마다 전문가의 판단을 존중한 리더십, 현승종 총리는 매사에 다정다감한 대통령이었다고 촌평했다.

보는 눈에 따라 달라지는 역사

또한 당시 민자당 대변인이었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나를 물태우라고 불러도 좋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김동익 정무장관은2012-11-09_090633.jpg ‘군인답지 않은 군 출신’, ‘귀가 큰 대통령’, 행정수석을 지낸 심대평 전 지사는 ‘기다리는 리더십’, 최영철 전 통일부총리는 6.29 선언을 ‘한국판 마그나 카르타’라고 평했다.

노건일 전 교통부장관은 인천공항과 경부고속철도가 노 대통령의 결단으로 착공됐지만 후임 정부가 KTX 준공식에도 초청하지 않아 나중에 노 장관이 따로 주선하여 시승했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이같은 증언들은 6공화국 요직을 거친 사람들이 말하는 노태우 대통령이지만 일반 국민이 들어도 수긍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싶은 내용이다.

결국 역대 대통령시대의 역사는 정치적 반대편 시각만의 평가로 단정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여야대결이 치열한 대선정국에서 전직 대통령시대의 역사를 이슈로 삼아 국민여론을 끌어 모으려는 전략은 또 다른 반론을 증폭시켜 끝없는 역사논쟁, 역사병을 심화시키지 않느냐고 지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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