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9월호]

[토론없는 승부사회]

양보는 패배 설득은 야합?

막가파식 죽기살기 결단

흑백논리의 사생결단

민주와 빈민주시대는 가고 대화와 타협의 민주시민사회라고들 한다. 그러나 한치의 양보나 설득이 통하지 않는 사생결단의 세월이다. 모조리 흑백논리로 갈라지고 적과 동지로 결전한다.

행여 양보는 패배라고 단정한다. 또한 남의 설득에 넘어가는 것은 야합이나 흥정으로 매도된다. 그래서 앞뒤 가릴 것 없이 용감하게 싸우고 피를 흘려야 한다고 믿게 된다.

민주시민사회가 전사(戰士)시대라는 말인가.

복싱게임이나 프로야구 시합에서의 승자는 모든 영광을 독차지하게 된다. 패자를 위로해 줄 명분도 여유도 없는 시절이다.

어느 유명교수가 1등이 아니면 한푼도 갖지 못하는 시대라고 규정한 적이 있었다.

[f You are not No. 1, You are zero.]

시대상황에 어울리는 명언이다. 그렇지만 싸움에서 1등을 해야 한다고 우리 사회를 부추기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죽기살기로 끝까지 버티겠다는 토론없는 승부사회 말이다. 그리하여 숨막히는 이 사회를 누가 무슨 수로 달래고 순화시켜 줄 수 있을는지 답답하기 그지 없다.

규정도 순서도 없는 막가파식

승부게임에 매료된 전사가 결코 특별히 선발된 이들이 아니다.

나와 이웃과 우리 사회가 자신도 모르게 승부사 기질로 빠져 들었다고 볼 수 있다.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구호를 열창하고 차도를 점거하는 집단행위에 가담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최고의 국정을 논하는 국회의 농성장면이나 최고의 지식인인 의사와 약사가 거리로 나선 모습도 보아왔다. 그러니 우리네 삶이 고달플 때 결사항전으로 목적을 성취코자 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나 의사선생님에게 배웠다고 해도 잘못 배웠다. 선생님의 잘못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 잘못이었다.

대결이나 투쟁도 순서가 있고 규정이 있어야지 처음부터 막가파식이다. 대화나 협상은 필요없고 힘과 힘으로 결전하자니 민주주의일 수 없다.

게다가 나랏님이나 장관벼슬의 믿음이나 설득력도 없으니 싸움을 말릴 재간이 없다. 이틈에 공권력은 눈치만 밝아져서 최악의 지경이 오지 않으면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러니 나랏일이 될 것이 없고 매듭이 풀릴 까닭이 없다.

전국이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있지만 쓰레기처리장 하나 만들 수 없는 형편이다. 화장장 같은 혐오시설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한다. 원자력발전시대에 살고 있지만 단 하나 핵폐기물처리 시설 부지를 선정 못하고 있다.

언젠가 현지주민들 몰래 핵폐기시설 후보지를 선정했다가 정부가 혼줄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뒤로 아예 정부는 손을 들고 아까운 세월만 보내고 있다.

농어가 부채는 탕감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다.

농정실패 탓이라는 농민단체 시위가 있고나서 정부는 꼼짝 못하고 수시로 빚을 깎아주고 대신 갚아 주었다. 채소값이 떨어지고 과일값이 폭락해도 정부가 보상할 채비를 갖춰야 한다.

민주주의와 시장원리란 집권당이 득표용 공약으로 제시한 것이지 집단의 항거나 승부게임에 맛들인 전사들과는 상관없는 말이다.

‘너 죽고 나만 살자’

대학사회에 대화와 토론문화가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학생들이 총장실을 점거하고 기물을 파괴하고 보직교수들을 꿇어앉히는 폭거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고 들었다.

학교재단의 비리가 문제이고 등록금 인상에만 매달리는 대학 운영방식이 틀렸다고 지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비리의 내막이나 등록금 인상폭에 대한 논의는 없고 이기고 지는 결판부터 시작하기는 시장바닥이나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병원과 의사들 세계가 참혹하게 멍들고 쫓기고 있는 계절이다. 의약분업이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해도 이같은 최악의 사태를 겪고 싶지 않은 것이 온 국민의 소망이다.

복지부장관이나 복지부관료가 의료대란 앞에 할 수 있는 역할은 거의 없어 보인다. 장관을 경질했지만 의사들은 코웃음만 친다.

의사와 약사들간의 밥그릇 싸움 뿐인가 했더니 파업이 강행되면서 뿌리 깊은 문제들이 쏟아지고 있다. 의료수가는 낮을수록 좋다고 하더니만 병·의원이나 의사선생님들이 이대로는 죽어도 할 수 없다는 막말로 버틴다.

수술비가 양복 짜깁기 요금보다 싸고 출산보험료가 애완견 출산비용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는 웃지 못할 비유가 있었다.

서울대 이종욱(李宗郁) 의대학장의 말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의사에 대한 믿음과 이해가 형성되는 사회에서만 전문직업의 우수한 진료가 이뤄집니다. 교과서적 진료가 가능한 의료환경을 의사가 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반면에 의약분업을 위한 시민운동본부는 노동단체 종교단체 여성단체 등과 함께 의료계를 규탄하는 대회로 맞섰다. 의료계의 불법행위를 끝까지 저지하겠다는 자세다.

파업의사들에 테러를 가하자는 정체불명의 고발도 나왔다고 들었다.

모두가 양보나 설득이 안 통하는 승부게임의 체질 때문이 아니고 무엇인가. 너와 나 함께 가자는 상생(相生)이란 정치적 구호일뿐 ‘너 죽고 나는 살자’는 사생결단을 어떻게 풀어야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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