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이 있는 시월의 추억

[김숙(金淑) 칼럼 @이코노미톡뉴스] 천 구백 팔십 년대라고 기억한다. 유독 필자 주변에만 일었던 반응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즈음은 한글이름이 득세했던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갑작스레 유행했었다거나 번성까지는 아니었고 다른 때에 비하자면 잠시 급물살을 탔을 정도, 이를테면 사회적 현상이라면 하나의 작은 현상이랄 수 있었다.

천 구백 팔십 년 초, 중반의 일이었다. 필자의 이웃에 고만고만한 새색씨 여럿이 살았었다. 그 중 옆 호에 살았던 하씨네는 첫딸을 낳았고 그 옆에 살던 노씨네는 첫아들을 낳았다. 박가네인 필자도 첫아들을 낳았다. 다시 그 시절을 떠올려 보자면 자녀에게 한글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던 사람은 그 중 누구보다 필자였었다. 하늘이, 햇살이, 꽃님이, 별님이... 가만가만 혼자 지어 아무도 몰래 후보에 올려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미소 지으며 흥얼거리곤 했었다. 그럼에도 지금은 고인이 되신 시어른께서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 하려거든 국으로 입 꾹 다물고 있으라~!"고 하도 격하게 손사래를 치던 바람에 뜻을 펴보기는 커녕 제대로 햇빛 한 번 못 본 이름들을 필자의 가슴에만 묻어둔 채 슬쓸히 마음을 접어야 했다.

그런데 앞서 말했던 하씨네와 노씨네가 문제였다. 한글이름을 지어 부르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말도 안 되게 불러댐으로 필자의 신경을 있는대로 자극하는 것이었다. 과장이 아니라 그 이름들을 듣는 자체만으로도 머리가 욱신거리고 마음이 뒤숭숭해졌었다. 필자의 과민반응을 옆에서 보다 못한 필자의 남편은, 오지랖이 넓어도 유분수지 [넘]의 자식들 이름으로 머리 아프다는 게 말이냐, 별 게 다 두통꺼리다... 그래도 정 못 마땅하면 그 집 부모들 대신 당신이 재판을 걸어 당신 입맛에 맞게 걔들 이름을 바꿔줘라... 등등 좌우간 옆집 애들의 잘 못 불리어지는 이름으로 비롯된 쓰잘데 없는 기싸움이 심심찮게 벌어지기도 했었다.  

문제의 이름들은 이랬다, 노씨네 봄에 낳은 아들은 [노고지리], 하씨네 겨울에 낳은 딸은 [하얀눈]이었다. 누가 들어도 티끌만큼의 유감이 생길 턱이 없는, 정말 멋진 이름이었다. 중요한 것은 성까지 불리어져야만 완전한 형태를 갖게 되는데 둘이서 약속이나 한 듯 성은 뚝 떼어 "옜다! 개나 가져가라!"는 식으로 멀찌감치 던져두고 이름만 부르고 있으니 딱해도 어지간히 딱할 노릇이었다. 고지리와 얀눈이...? 발음도 이상할뿐더러 국적도, 연고도 없는 괴상망측한 글자를 연결시켜 놓고 이 나라의 내일을 책임질 귀한 아들, 딸을 그렇게 함부로 부른다는 사실은 설령 꿈에서라도 대강 보아 넘겨서는 안 될 일이었다.

말석이긴 하나 일선에서 국어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어이없음에 기가 질려 한 마디로 혀를 끌끌 찰 지경이었다. 하는 수 없었다. 그들의 엄마이면서 필자의 이웃이던 그녀들을 틈 날 때마다 찾아다니며 입이 마르고 목젖이 따갑도록 신신당부하기에 이르렀다. 그 때의 일은 지금 생각해도 가히 인간문화재급 주객전도 현장이었다. 필자의 눈물겨운 노력에 힘입어(?) 그 뒤로 노고지리는 봄날 높은 하늘을 맘껏 날아다니는 행복한 종달새로, 하얀눈이는 마치 설국의 첫 장면을 연상시키듯 국경을 다 덮고도 남는 백설로 제 이름값을 톡톡히 하며 살고 있다고 전해 듣고 있다. 

에피소드가 있는 이름은 또 있다. 앞서 말했던 상황과는 다소 다르나 필자도 외자(字) 이름 덕에 웃자는 명함을 내밀어도 될 만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 "김숙입니다." 라고 하면 김숙희, 김숙이, 김이숙, 김희숙, 김미숙, 심지어는 김인숙까지... 번번히 그 게 아니라 어쩌고저쩌고~~ 하기가 피곤하고, 번거롭고, 신물나던 어느 날 급기야 이런 일이 있었다.

주선자가 있는 남녀 간의 만남을 지금은 소개팅이라 하나본데 그때는 미팅이라 했었다. 
미팅이 있던 바로 그 날이었다. 필자와 짝이 된 남학생이 필자 앞으로 의자를 당겨 앉으며 다짜고짜(?) 이름부터 물었다. 그날따라 이름 뒤에 거추장스럽게 늘어놔야 할지도 모를 부연설명이 느닷없이 미리 귀찮아졌다. 조용히 고개를 들고 또박또박 대답했다. "제 이름은 외자예요!" 상대는 별 말이 없었다. 대한극장을 기준으로 대각선 방향 건너편에서 명동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던 보리수 다방에서였다. 다방을 나와 얼마를 걸었을까, 그가 가던 길을 멈추고 한 쪽 손끝으로 동보성이라는 중국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애자씨! 저기 동보성 가서 짬뽕 한 그릇 잡수고 가소!
내는, 두꺼비나 한 마리 잡고 갈라니더! 안주로는 짬뽕 국물이 최고 아입니꺼!"

▲ 김숙 편집위원(자유기고가)

하늘이 높고 푸르다. 청명한 가을날에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온다. 그 때도 시월이었다. 훗날 들은 말로, 필자의 이름이 '애자'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던 순수파트너 갱(?)상도 청년... 오늘따라 그의 안부가 몹시 궁금해진다. 해마다 시월이면 꼭 떠오르는 노고지리와 하얀눈, 그들의 엄마인 그녀들의 꽃 같은 모습도 많이 보고 싶어진다.
어디에 살든 그들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며 바람결에라도 반가운 소식 꼭~~~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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