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우리 땅이지만 대마도도 우리 땅이다."

▲ 16세기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팔도총도에 조선땅으로 표기된 대마도. <사진저작권=퍼블릭도메인>

[이코노미톡뉴스=황원갑 논객] 독도(獨島)는 일본 땅이란 일본인들의 망발이 그칠 줄 모르고 있다. 초·중등학교 교과서에 이어 이제는 고등학교 교과서까지 독도는 죽도(竹島)요, 죽도는 일본 땅인데 한국이 강점하고 있다고 실어서 2세들에게도 잘못된 역사인식을 불어넣고 있다. 일본의 역사 날조와 왜곡은 난치병 증세를 지나 불치병 수준이다. 일본의 역사교과서들은 한국사의 시작을 고조선이 아닌 한사군(漢四郡)부터 서술하고, 고대 일본에 영향을 준 나라로 우리나라보다 중국에 더 무게를 두었으며,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점령하고 식민지로 삼았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 설도 여전히 포함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왜구의 침략이 신라 건국 초기, 정확히는 박혁거세거서간 8년(서기전 50)부터 나타난다. 왜가 국호를 일본으로 바꾼 것은 백제 망국 직후인 서기 670년. 일본 국호의 역사는 1천 400년에 불과하지만 왜구의 역사는 2천 년이 넘는다. 6세기까지 국가의 기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왜가 그보다 앞서 ‘임나일본부’를 세워 한반도 남부를 200년간이나 지배했다는 주장은 참으로 가소롭기 그지없는 망발이다. 이런 황당무계한 역사 왜곡과 날조가 바로 황국사관이요 식민사관이다.

왜구의 만행은 조선왕조가 들어선 뒤에도 변함없이 이어졌다. 1419년(세종 1)에는 대규모 대마도원정도 감행했지만 왜구는 1592년(선조 25) 수십만 정규군으로 변신해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특히 일본 수군은 전체가 해적, 즉 왜구 출신이었다. 굶주림에 못 이겨 시작한 왜구의 노략질이 나라 전체를 강탈하려는 국가차원의 침략전쟁으로 확대 재생산됐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은 대마도(對馬島)야말로 일본 땅이 아니라 우리 땅이라는 사실이다. 일본이 저토록 끈질기게 독도는 저희 땅이라고 우기고 나서는데 우리라고 대마도는 본래 한국 땅이라고 주장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 근거를 들어보겠다. 대마도는 일본 본토에서는 150km나 떨어져 있지만 부산에서는 49.5km에 불과하다. 대마도의 개척은 신라 실성이사금(402~417년 재위) 시절에 먹을 것이 없는 천민들이 대마도로 건너가 섬을 개척하자 임금이 이들에게 곡식과 재물을 보내주자 이들이 해마다 조공을 바친 것이 시초였다. 그 뒤 고려 선종(1018~1094년 재위) 11년에는 대마도주에게 고려 관직인 구당관을 제수했다.

우리나라가 왜구의 근거지 대마도를 정벌한 첫 번째는 고려 말이었다. 고려 조정은 창왕 1년(1389) 2월에 경상도도원수 박위로 하여금 전선 100척을 이끌고 대마도를 정벌케 했다. 고려원정군은 대마도에 이르러 해안에 정박하고 있던 왜구의 배 300여 척을 불태워버렸다. 이어서 상륙부대가 섬에 상륙하여 해안의 가옥들을 불태웠다. 여기에 박자안의 후속부대가 도착하여 섬 안 깊숙한 곳까지 수색작전을 펼쳐 포로로 잡혀갔던 우리 동포 100여 명을 구출했다.

두 번째는 조선왕조로 접어들어 세종 1년(1419)에 삼군도체찰사 이종무(李從茂)에 의해서였다. 이종무는 대마도 원정에서 왜구의 배 129척을 빼앗아 쓸 만한 배 20여 척을 제외하고 모두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가옥 1천 939호를 불태우고 왜구 참수 114명, 포로 21명의 전과를 올렸고, 포로가 된 중국인 131명을 구했다. 또 이종무는 29일에 다시 두지포로 군사를 보내 가옥 68호와 적선 14척을 불태우고 왜구 9명을 참수하고 우리 백성 8명을 찾아냈다. 그러나 곧 풍랑이 닥쳐올 것이란 예보에 따라 이종무는 7월 3일 군사를 거두어 거제도로 돌아왔다.

이종무의 대마도원정 뒤 대마도 수호에게 항복을 권하는 글을 보내도록 했는데, 그 가운데, ‘너희가 살고 있는 대마도는 경상도 계림(경주)에 예속되었으니 본래 우리나라 땅이란 것이 문적에 실려 있음을 분명히 상고할 수 있다. 다만 대마도는 땅이 매우 협소하고 또 바다 가운데에 있어서 왕래가 불편하여 백성들이 살지 않았더니, 왜노(倭奴)들 가운데 제 나라에서 쫓겨나 갈 곳이 없는 자들이 모두 이리로 몰려들어 굴혈을 만들고 살며, 어떤 때에는 도적질을 하는 가운데 우리 백성들을 겁략하여 전곡을 약탈하고 마구 살해하며 집에 불을 놓는 등 흉악무도한 짓을 자행해 왔던 것이다.’ 라는 대목이 있다.

이를 봐도 대마도가 신라 때부터 우리 땅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만일 이때 대마도를 완전히 정복하고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을 이주시켜 살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독도는 일본 땅이라느니 하는 망언은 애초부터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대마도는 독도보다도 훨씬 가깝지 않은가. 그때 이 서신을 받은 대마도 수호가 사신을 보내 우리 조정에 항복하므로 대마도를 다시 경상도에 편입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그 뒤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았기에 대마도는 도로 일본 땅이 된 것이다.
중종 때 발간한 ‘동국여지승람’에 대마도는 조선 영토로 기록되었고, 나중 순조 ~ 고종 연간에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도 ‘대동여지도’에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고 명시했다. 또한 1855년 영국에서 제작한 지도에는 대마도가 조선령이라고 되어 있고, 1864년 미국의 페리함대가 사용한 아시아지도에도 대마도는 조선령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 황원갑(소설가, 역사연구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직후인 8월 18일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대마도는 우리 땅이니 일본은 속히 반환하라.”는 담화를 발표했다. 또 1949년 1월 7일 연두기자회견에서도, “대마도는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 조공하던 우리 땅이다.”라고 말했다. 그해 1월 18일에는 제헌의원 31명이 ‘대마도 반환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6.25전쟁 중이던 1951년 4월 27일에 한국정부가 미국정부에 보낸 문서에는 ‘한국은 일본이 대마도에 대한 모든 권리, 호칭, 청구를 포기하고 그 땅을 돌려줄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이처럼 근거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어찌하여 독도는 일본 땅이란 저들의 주장에 맞서 대마도는 한국 땅이니 반환하라고 하지 않는 것인가.

독도는 우리 땅이지만 대마도도 우리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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