孫周恒 전의원, ‘옥중당선’ 기록 84세 별세
DJ 공천장사 고발…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 고 손주항(孫周恒) 전 의원.

외골, 저돌, 종횡무진.
3선의 투사정치 가다.
孫周恒 전의원, ‘옥중당선’ 기록 84세 별세.
DJ 공천장사 고발…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이코노미톡뉴스=배병휴 회장] 3선의원, 민주투사 경력의 손주항(孫周恒) 전 평민당 부총재가 지난 11일 숙환으로 84세를 일기로 별세, 광주 국립 5.18묘지에 안장됐다. 고인은 9, 10대 국회 때 무소속으로 전북 남원·임실·순창 지역구에서 당선되고 13대 때는 평민당으로 전북 전주을 선거구에서 당선됐다.

파란곡절, 종횡무진의 정치인생

고인은 1978년 12월 제10대 총선 때 긴급조치 9호 위반혐의로 구속된 상태에서 옥중 출마하여 당선된 진기록을 세우고 13데 때는 전주을 지구에서 이철승 전 신민당 대표를 꺾고 당선되어 3선을 기록했으며 평민당 부총재를 역임했다.
손 전 의원은 정계 은퇴 후 자신의 파란만장, 종횡무진 정치역정을 상하 두 권으로 엮어 발행했다. 상권 873쪽은 ‘백전노병’(百戰老兵), 하권 317쪽은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라는 제목이다.
백전노장 편에는 고인의 화려한 의정활동 뒷면의 어둡고 거칠었던 면면을 기록하고 각종 매체에 반영된 시론, 칼럼, 인터뷰 등을 통해 타고난 용기와 지략과 달변을 잘 말해준다. 고인은 아호 우지(愚地)의 이름으로 말과 글들을 속사포처럼 거침없이 쏟아냄으로써 스스로 저돌적이고 외고집형인 정치인생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고인은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시절 젊음의 패기로 독재에 항거한 것은 물론이지만 평민당 김대중 총재의 측근으로 그를 옹위할 때는 집권세력 앞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그렇지만 당시 호남인들이 DJ를 교주처럼 신격화할 때 고인은 DJ를 비판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음을 이 책에 기술했다.
실제로 그 뒤 “DJ의 잔꾀와 계략에 실망했다”면서 결별한 뒤에는 “DJ도 역사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여 야권 내부에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고인은 백전노병 정치역정을 ‘반생반사’(半生半死)의 나이(79)에 접어들고 보니 후회나 탄식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으로 생각되어 지나온 자신의 길을 사실대로 기록하고자 책으로 엮었노라고 밝혔다.

▲ 손주항 전 의원의 종회무진, 파란만장 정치역정을 엮어낸 '백전노병(상권, 사진좌측),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하권)'.

저돌적 정치행보…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편은 고인의 정치어록과 정치수난사의 기록이다. 고인은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 반대투쟁으로 시작하여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했었지만 그 뒤에도 패기충천으로 마치 기획드라마처럼 ‘산 넘고 물 건너’의 행로를 개척했다.
이때 ‘옥중당선’으로 화제를 모으고 5공 청문회 스타로 정치인생 절정기를 맞았다. 그러나 이 무렵에 바로 DJ와 결별했으니 당시 야당 내 권력구조로 보면 죽기를 각오한 소신과 외고집의 선택이었다. 실제로 DJ와 결별 후 고인의 정치일정은 굴곡과 추락의 고비였다.
고인은 전주고와 중앙대 정치학과를 나와 전북도 의원으로부터 정치에 입문하여 국회의원 3선을 기록하면서 용장과 맹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렇지만 본인의 꿈과 집념에 견주어 보면 미완성인 채 정계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YS, DJ, 노무현 시대를 비판해 가면서 안보와 국익 차원에서는 보수성향을 나타내기도 했다.
고인의 태생적 색깔은 진한 토종(土種) 한국인이다. 그의 소양과 재능 속에 서예, 서각, 공예 등 우리의 전통문화가 듬뿍 실려 이 방면에서 정치활동 이상의 활약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전주 대사습놀이 보존회 이사장을 오랫동안 맡아왔고 국악협회와 공예가협회 후원회장, 나전칠기협회 명예 이사장, 민족서예가협회 초대작가에다 서각 부문 명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고인은 열정이 넘치고 굽힐 줄 모르는 외골 품성 때문에 타고난 재능을 끝까지 펼쳐내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 느껴진다.

‘대한민국 의인(義人) 나오라’ 2006.8 경제풍월

고인은 보수성향의 월간 경제풍월을 애독하며 종종 기고도 했다. 지난 2006년 7월에는 북의 미사일 놀음과 우리사회 내부의 친북, 반미 행태를 개탄하며 ‘일월 같은 의인(義人)’, ‘송죽 같은 열인(烈人)’, ‘악을 질타하는 지인(志人)’이 나오기를 기다린다고 했다. (2006. 8월호 대한민국 의인 나오라)
고인의 열변은 종횡무진이고 촌철살인 격이었다. 당시 F-15K 전투기가 포항 앞바다에 추락한 사건과 관련하여 고인은 공군장교 출신의 경륜으로 “FX 차세대 전력증강 사업에 차질을 빚고자 노린 첩보전의 희생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 무렵 고인은 보수단체 행사에 참여하여 안보강화를 강조하기도 했다. 또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DJ 비자금 고발대회’에 참석하여 비자금을 국고로 환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고인은 이 무렵 광주시에서 열린 “민족통일대축전 행사가 마치 공산당 단합대회와 같았다”고 지적하고 잔치비용 14억원을 국민혈세로 충당하여 “북쪽 사람들의 비행기 삯에서 체재비와 기념품까지 몽땅 부담하면서 그들의 선전장을 만들어 줬으니 마치 광주 땅이 북의 해방구가 아니었느냐”고 물었다.
고인은 13대 국회 때 평민당으로 당선됐지만 DJ의 공천헌금에 분노하여 반DJ 노선을 선택했다가 ‘정치적 숨통’이 끊어진 셈이다. 고인은 전북 일요시사지 기고문을 통해 “야당 정치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본인이 볼 때 정당의 공천장사 원조는 김대중씨”라고 주장했다. 1992년 2월, DJ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적게는 1인당 수천만원, 많게는 30억원, 50억원, 심지어 전국구 안전권에는 100억원까지 헌금을 받은 불법 공천장사를 했다”면서 엄중처벌을 요구했다.
고인은 이 같은 행위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외로운 싸움’으로 “DJ를 교주처럼 믿는 호남의 거센 바람에 엄청난 수모와 욕설과 협박 속에 ‘정치미아’로 숨을 죽이며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DJ 공천장사 고발, ‘석고대죄 하라’

▲ 전주 옥중에서 도덕성을 상실한 정권을 향해 단식 항의 투쟁까지 벌인 손주항. 그러나 우리나라 헌정사상 최초로 옥중에서 국회의원에 당선하게 된다. 13대 총선에서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당선률 77.47%(득표수 78,890표)로 3선 당선됐다.

고인은 2003년 3월, 보수계 평론지 월간 한국논단에 ‘DJ는 민족 앞에 석고대죄 하라’는 강경 성명을 발표하여 정계와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이 성명은 DJ가 햇볕정책으로 국가안보 개념을 흐리게 만들고 간첩천국을 만들었으며 상선(商船)을 가장한 북의 군함에게 제주해협 통행권을 부여함으로써 주권을 포기한 반국가 행위를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또 2002년 6월 서해교전으로 전사한 장병들 추모식은 조문하지 않고 동경으로 날아가 축구경기를 관람했으며 IMF 외환위기를 수습한다면서 외국계 자본에게 은행을 헐값 매각하고 신용불량자 400만명을 양산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DJ의 가신과 아들들의 비리를 지적하며 민족 앞에 석고대죄토록 촉구한 것이다.
고인은 당초 DJ로부터 부지런하고 성실하다는 좋은 평가를 받은 측근이었지만 단지 공천관련 돈 문제를 제기하여 결별하게 된 것이다. 당시 DJ 진영에서는 “돈 만드는 것을 왜 시비하느냐”, “돈 있는 자와 손을 잡아야 청와대로 갈 수 있지 않느냐”는 입장이었노라고 한다.
당시 고인은 DJ가 지역구, 전국구 국회의원 후보는 물론 시장, 군수 등 지방벼슬에다 심지어 산림조합장 등 선출직은 모조리 돈을 받고 ‘매관매직’ 했다고 폭로했었다. 고인은 이 같은 DJ에 관한 진실과 측근과 가신그룹의 부패가 기록으로 남아 언제인가 역사적 평가와 단죄를 받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글 쓰고 연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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