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통령 방미시 러니옹 만난다니…

▲ 젊은 시절의 레너드 라루 선장과 1950년 흥남 철수 작전에 투입됐던 메러디스 빅토리호.

메러디스 빅토리호(SS Meredith Victory).
흥남철수 잊을 수 있나요.
문재인 대통령 방미시 러니옹 만난다니…

[이코노미톡뉴스=이진곤 칼럼]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보았다, 찾아를 보았다. 금순아 어데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1·4이후 나 홀로 왔다.”
박시춘 작곡, 강사랑 작사, 현인 노래로 1953년 대구의 오리엔트레코드사를 통해 발표되었다. 적어도 70년대 까지는 국민가요 반열에서 요지부동의 지위를 지켰다. ‘피난민 주제가’라고 할 수 있겠는데, 남북분단과 민족상잔의 참극을 겪은 한국인 모두의 슬픔을 담은 ‘국민 주제가’이기도 했다.
그 ‘바람찬 흥남부두’의 광경을 대형화면에 사실적으로 재현해 보여 준 것이 영화 ‘국제시장’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 누나가 흥남부두에서 미군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거제도로 피난했다. 문 대통령은 피난지 거제 출생이다. 감회가 남달랐을 터이다.

그때 미군의 결단 없었더라면

이 배는 흥남철수에 투입된 미군의 200척 함선 가운데 하나였다. 레너드 라루 선장(Leonard P. LaRue)은 50년 12월 23일, 2,000명이 승선 한계이던 이 배에 1만4,000명을 태우고 남하했다. 다음날 부산항에 도착했으나 피난민을 더 수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입항이 거절됐다. 빅토리호는 항해를 계속해 다음날 거제도 장승포항에 피난민들을 내려놓았다. 크리스마스날이었다.
당시 흥남부두에 몰려들었던 9만 여명의 민간 피난민들이 해상을 통해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미 10군단장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의 결심 덕분이었다. 그를 압박하고 간청했던 사람은 김백일 국군 1군단장과 미10군단 민사부 현봉학 고문이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항해 중 단 한 사람의 인명피해도 없었을 뿐더러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나기까지 했다.

▲ 빅토리호 선원이었던 로버트 러니(90) 은퇴변호사.

문 대통령이 이번 미국 방문 때 빅토리호 선원이었던 로버트 러니(90ㆍ은퇴 변호사)씨를 만난다고 발표됐다(경제풍월이 독자들 손에 들어갈 즈음엔 이미 만났을 수도 있겠지만). 지난달 13일자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미 12월8일 ‘피난민을 구출하라’는 요지의 맥아더 총사령관 명령문이 내려온 상태였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을 만나면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먼저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가 전쟁을 끝내고 떠난 초토화된 한국을 한국인들이 얼마나 훌륭하게 일으켰는지에 대해 내가 느끼는 경애심을 전달하고 싶다. 그가 평화를 추구하는 훌륭한 리더가 될 것으로 믿으며, 미국과 가까운 동맹을 이어나갈 것으로 믿는다. 아울러 미주 한인들이 미국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 그들의 자녀가 얼마나 우수한 인재로 성장하고 있는지, 그들이 미국의 경제발전에 얼마나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 새 대통령에게 말해주고 싶다. 끝으로 내가 살아 있을 때 통일된 한반도의 모습을 보고싶다.”

괴물 불가사리 되어 가는 북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16대 대선 기간을 통해 미국에 대한 거부감 저항감을 당당히 표출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후보시절, “미국 안 갔다고 반미주의냐? 반미면 또 어떠냐”(2002년 9월 11일 대구 영남대 초청강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대통령 취임 후 첫 미국 방문 때는 아주 달라졌다. “53년 전 미국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2003년 5월 12일, 뉴욕 코리아 소사이어티 주최 만찬연설)라고 그는 말했다.
하긴 각별한 친애의 표현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듬해 11월 미국 LA 국제문화협의회(WAC) 주최 오찬에 참석해서는 또 다른 말을 했다. 북한 측이 핵 및 미사일 개발을 ‘자위적 수단’이라고 주장해대던 것과 관련, 그는 “많은 경우 북한의 주장은 믿기 어려운 게 많지만,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상당한 합리성이 있는 주장이라는…합리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었다.
문 대통령은 미국에 대한 인식이나 대북정책 노선에 있어 노 전 대통령의 그것과 궤를 같이 해왔다. 반미까지는 아닌 것도 같지만 친미와 반미를 양단으로 하는 스펙트럼을 상정한다면 반미 쪽으로 기울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인식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같이 하게 될지 아니면 ‘생각의 차이’만 확인시키고 말지 조마조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지난달 15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17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축사를 했다. 그 자체가 햇볕정책의 계승자이거나 최소한 옹호자임을 과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축사를 통해 그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의 추가도발을 중단한다면 북한과 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며 “북한의 호응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정말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일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른바 햇볕정책이라는 것과, 6·15남북공동선언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다는 국민도 많다. 그것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에 어떤 도움을 줬는지, 그간 어느 정도의 진전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일방적 주장만 있을 뿐이다. 반면 그 그늘은 너무 짙다. 진보정권 10년 간 우리는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북한에 쏟아 부었고,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했다. 그 결과 북한은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핵·미사일 괴물이 되고 말았다.
그때그때 달래고 양보해서 당장의 위험만 모면하자는 식의 대북정책은 우환덩어리를 키워놓을 뿐이다. 부러진 바늘을 먹는 게 신기해서 하나 더, 하나 더 바늘을 먹였더니 나중엔 집안의 쇠붙이란 쇠붙이는 모두 삼키고, 밖으로 나가 온 마을, 그리고 온 고을의 쇠를 다 먹어치운, 그래서 어느 누구도 어떤 수단으로도 죽일 수 없게 된 송도 불가사리의 행태를 그대로 보여 온 게 저들이다.

동맹 희생시켜 얻을 이익 뭔가

문 대통령 일가에게 미군이 베푼 은혜는 개인적인 것이면서도 국가적인 것이었다. 미국인들은 그들의 자제들을 이 나라의 전쟁터에 바치면서 문 대통령의 부모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구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바로 이 나라를 대표하는 지위에 올랐다. 그 문 대통령이 미국에 대해 거북한 표정을 지으며 민족 대량 살상극을 벌인 북한 왕조와 그들을 도와 참전했던 중국에 필요 이상의 호의를 보일 수는 없는 일이다. 좌고우면하거나 요령을 피워 현실을 우회하려 해서도 안 된다.
북한은, 적어도 군사문제에 관한 한 우리를 협상이나 대화의 상대로 여기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그 때문에라도 전작권을 환수하는 등 군사적 자주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군사적으로 미국에 매여 있으니 북한이나 중국이 우리를 경시하고 외면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 중엔 노 전 대통령도 있었다. 도대체 미국과 함께 짊어져도 무거운 짐을 왜 굳이 우리 혼자서 지겠다고 하는가.
노 전 대통령은 06년 9월 미국 방문 때 미 의회 지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방의 군대(주한미군)를 인계철선으로 하자는 (한국 내 일부) 주장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반대한다”고 일러바치듯 말했다. 인계철선이란 유사시 주한미군이 자동적으로 개입하게 되도록 이들을 휴전선에 배치하는 것을 가리킨다.
기실 그 같은 주한미군 배치는 한미양국 정부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위협 반 사정 반으로 겨우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에 성공했지만 미군의 자동개입은 얻어내지 못했다. 각국의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행동한다는 게 고작이다. 이에 비해 61년 체결된 북한과 중국 간의 ‘우호 협조 및 호상 원조 조약’은 그 2조에 “~으로써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 체약 상대방은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만약 다시 북한이 남침을 자행할 경우, 미국이 헌법적 절차를 밟아, 그러니까 의회의 승인을 얻어 개입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다 의회의 승인여부부터가 불투명해진다. 조약에 명문화되지는 못했지만 사실상 자동개입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이른바 ‘인계철선’이다. 북한군이 주한미군을 군사적으로 건드리게 되면 그건 곧 미국에 대한 군사도발이 되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미군 전투부대를 한강 이남으로 철수시킴으로써 인계철선을 해체하고 대신 전작권은 우리가 행사하겠다고 했다. 그게 군사적 자주권을 확보한다는 뜻이었을 텐데, 구체적으로 어떤 이익이 있는지 제대로 설명을 들은 것 같지 않다. 미군이 없어도 우리 힘만으로 자주국방이 가능하다고 우기면 일단 그렇다고 믿기로 하자. 그렇지만 더 이상 경제적 성장과 안정은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는 점은 자주파가 인정해야 한다. 일본의 번영이 안보무임승차에 힘입은 것과 유사하게 우리는 동맹의 이익을 누리지 않았는가.
문 대통령은 한미 간의 동맹관계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한 로버트 러니 씨의 기대와 희망을 귀로는 물론 가슴으로도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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