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리더십 확립에 뜻을 합쳐야

보수우파가 사는 길.
이념, 정책의 자기쇄신.
통합 리더십 확립에 뜻을 합쳐야.

▲ 지난 2017년 4월 15일날 열린 대한문 태극지집회 현장. <사진=이코노미톡뉴스>

[이코노미톡뉴스=이진곤 칼럼] 지금 보수정치세력은 지리멸렬상태다. 그렇지만 재기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국회 의석이 자유한국당 107석, 바른정당 20석으로 모두 127석이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120석이고 여기에 정의당을 더하면 126석이 된다. 중도를 표방하는 국민의 당(40석)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게 된 구도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민주당에 기울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렇게 따지더라도 126석이 단합한다면 집권당 및 그 우호정당들의 의회전횡을 막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 기술을 제대로 발휘할 경우 보수적 가치를 지켜낼 수도 있다. 국회선진화법 덕분이다.

2011년 초부터 또는 그 이전부터 여야 의원 일부에 의해 추진됐던 ‘몸싸움 금지법’은 주요정당 지도부와 다수 의원들이 소극적인 입장을 보인데 따라 입법화가 지지부진했다. 그런데 이해 11월 22일 한미FTA 비준동의안 처리과정에서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게다가 제19대 총선(12년 4월 11일)이 임박했다. 여야는 이를 공약으로 내걸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총선은 정치권과 언론들의 예상을 깨고 (구)새누리당의 승리로 끝났다. 패색이 짙다고 했던 여당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지휘아래 152석을 얻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이렇게 되자 민주당은 적극적으로 국회선진화법을 밀어붙였다. 여당은 난처한 입장에 놓였다.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인지를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특히 여당의 구주류는 거부감을 드러냈다.

보수세력 재결집이 선결과제

박 비대위원장 역시 썩 내켜하는 반응은 아니었다. 그러나 야당의 압박이 심해지고 무엇보다 18대 대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07년 당내 경선에서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석패했던 박 비대위원장으로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그야말로 올인해야 할 입장이었던 그는 당 소속 의원들에게 법안 통과를 주문했다. 결국 선진화법은 5월 2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 효과가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박 전 대통령은 제18대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런데 청와대에 입성한 그는 ‘소통 원활화’라는 국민적 요구와는 달리 문을 걸어 잠그는 모습을 보였다. 아마도 그 때문에 그는 취임 4년 만에 대통령직을 법의 이름으로 빼앗겼고, 검찰의 기소로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보수여당은 거대정당으로서의 힘을 제대로 행사해 보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박 전 대통령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박 전 대통령은 취임 후 당정간 협치는커녕 점점 더 담을 쌓는 모습을 보였다. 당 소속의원들은 박 전 대통령의 혼자 가는 정치에 대해 지쳐갔다. 14년 5월 비박계 정의화 의원 국회의장 후보 선출, 7월의 비박계 김무성 의원 당대표 선출, 15년 2월의 비박계 유승민 의원 원내대표 선출 등 일련의 사태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심각한 경고음이었다. 당연히 당과의 거리 좁히기에 적극 나설 일이었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당을 더 멀리했다. 자신의 역량을 과신한 탓이었을까?
박 전 대통령에게는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03년부터 이어진 불법대선자금 수사, 04년 노무현 탄핵 후폭풍으로 당이 해체지경에 이르렀으나 그가 나서서 극복해 냈다. 그리고 06년까지 당 대표를 맡아 있는 동안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그는 여당에 대해 전승을 거뒀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대표직을 맡고 있던 11년 말경에 다시 당에 위기가 닥쳤다. 홍 대표는 결국 대표직에서 물러났고(12월 9일) 박 전 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수습에 나섰다. 그리고 12년 4·13총선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극적인 반전이었다. 이제 그의 전도는 양양했다.
그런데 중요한 변수가 생겼다. 그 자신이 주도하다시피 국회 본회의를 통과시킨(그해 5월 2일) 국회선진화법이 두고두고 자신의 발목을 잡은 것이었다. 물론 대선 승리를 위해 불가피하게 선택한 측면이 있기는 했지만 그는 이 법이 가져올 정치적 파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여야 합의가 아니면 재적의원 5분의 3 찬성을 얻어야 입법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법이었다. 이야말로 협치가 실질적으로 필요한 제도였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여권 내의 협치, 여당과의 소통조차 기피했다. 당심을 붙잡기 위해 양보를 하기보다는 16년의 제20대 총선을 통해 판세를 뒤집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당의 총선 후보 공천을 주도하려 한 게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몰락원인 진지하게 성찰해야

공천파동 끝에 당은 총선에서 치욕적인 참패를 당했고, 박 전 대통령의 권력기반은 급속히 와해되어 갔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당을 장악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듯, 8·9전당대회에서 친박이 당권을 잡을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 덕분에 친박계가 당권을 완벽히 장악했다. 그러나 당은 회복할 수 없는 분열로 치달았다.
그가 국회로부터 탄핵소추를 받은 것은 전적으로 여당의 분열 때문이었다. 탄핵소추에 찬성했던 새누리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17년 1월 24일 바른정당이 창당됨으로써 (구)새누리당은 공식적으로 쪼개지고 말았다. 비대위는 2월 13일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꿨다. 박 전 대통령이 3월 10일 헌재에 의해 파면 당함으로써 치러지게 된 대선에 후보를 내기도 어렵게 여겨질 만큼 당은 붕괴위기에 처했다. 결과적으로 홍 전 후보가 24%의 득표를 함으로써 재기의 가능성을 열어주긴 했지만 앞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자유한국당은 7월 3일, 바른정당은 6월 26일 각각 전당대회를 열고 새지도부를 선출한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과 대선 패배 등으로 보수우파 진영은 기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다. 진보좌파정권이 집권초기 효과, 그러니까 여론의 열화 같은 지지를 얻고 있는 상황이어서 보수정당들의 존재감은 더 퇴색해 버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보수우파를 대변하는 정당은 아예 없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겹겹이 쌓이고 있다.
사실 보수정당은 너무 오랫동안 안일에 젖어 있었다. 기득권층에 편승해 왔으니 문제의식, 도전의식, 개혁의지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이념적 정체성, 미래 국가비전을 고민하는 데도 서툴렀다. 어영부영 되어가는 대로 따라가면 자신들의 지위와 이익은 지켜진다는 무사안일의 정치를 해 온 것이다. 대선에 연이어 성공하자 조심성도 없어졌다. 예컨대 20대 총선 비례대표 공천은 실력자들의 내 사람 심기 한마당이었다. 소외계층, 소수자, 직능 등에 대한 진지한 고려는 없었다. 그러고도 민심을 잃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면 이는 집단적 후안무치증에 감염된 결과라고 할 수밖에 없다.

삭풍의 언덕에 섰다는 각오로

(어쩌면 이 글이 독자들에게 읽히기 전에 이미 두 정당의 전당대회 결과는 나와 있을 수 있겠지만) 새로이 당권을 쥐겠다고 나선 정치인들은 정말 보수정당 재건의 사명감을 갖고 있는지 그것부터 궁금하다. 이제 보수정당의 리더들은 삭풍이 몰아치는 황야에 내동댕이쳐져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한다. 수많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 재집권의 길에 오르려면 누구보다 자신이 먼저 희생하고 봉사하겠다는 자세를 갖출 것이 요구된다. 계파를 배경으로 당을 좌지우지했던 정치인은 2선으로 물러나는 게 옳다. “나만 잘못했느냐”라고 반발하기 전에 “나의 잘못 때문에”라는 반성부터 할 일이다.
새로 당권을 쥐게 될 리더들에게는 무엇보다 이념적 정책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게 급선무다. 승리전략의 수립도 긴요하다. 로드맵과 전략이 없이 싸우면 백전백패가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전략을 현실에 구현시키기 위한 전투력의 강화, 과감한 도전 또한 필수적이다. 미래의 한국을 위해 이제까지 가보지 않았던 길도 진지하게 모색해서 국민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 구성원들을 결집시키는 힘이다. 당원들, 소속의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고, 이들이 함께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야 말로 정당 리더의 제1덕목이라고 믿는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다른 사람을 위해 길을 비워주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당장 이뤄질 일은 아니지만 노력하기에 따라 보수정치세력의 재결집, 보수정당의 부활 혹은 재건은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과거와 같은 기득권 집단으로서의 보수정당이 아니다. 보수우파도 끊임없이 이념적 정책적 자기쇄신을 거듭해야 한다. 이 시대의 보수적 가치는 무엇이어야 하고, 무엇을 지향하는 보수여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할 일이다.

▲ 이진곤(정치학박사, 경희대 정외과 객원교수, 국민일보 전 주필, 전 논설고문)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무엇을 추구하는가에 대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 이성뿐만 아니라 감성에도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공감의 정치를 펼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자면 선전 역량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아울러 주문하고 싶은 게 있다. 제발 호흡을 길게 가지라는 것이다. 눈앞의 이해에만 얽매여 좌충우돌하지 말고 미래를 보면서 미래를 위한 경쟁을 벌여주길 기대한다. 그게 보수의 보수다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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