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황연정 기장(사진=대한항공).

[인터뷰①] '유리천장 깬 안전운항지킴이' 대한항공 황연정 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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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톡뉴스 최서윤 기자]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정부의 정책, 회사의 배려와 함께 필요한 것은 가족 구성원과 사회의 인식 변화다. 황연정 기장은 슈퍼우먼, 원더우먼이 되기보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역할 분담을 강조했다.

“처음엔 저도 다 잘하려고 했죠.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힘들었어요. 나중엔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만 잘하자고 했죠. 못하는 부분은 내려놓고 잘할 수 있는 부분만 오픈한 거죠. 다 잘할 수는 없으니까요. 남편한테도, 아이들한테도, 시댁과 친정 부모님께도 힘든 부분을 솔직히 말씀 드렸어요. 남편도 일을 많이 합니다.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아이들을 잘 챙겨 주고요. 다만, 일정이 없어서 둘 다 쉴 때 제가 집안일을 더 많이 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일하는 엄마들이 같을 겁니다. ‘왜 똑같이 직장 생활하는데 내가 더 일을 많이 하냐’는 불만 말입니다. 신랑이 ‘나만큼 도와주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할 때가 있는데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육아는 도와주는 게 아니라 원래 같이 하는 거라고요.”

황 기장은 아이들한테도 ‘스스로 교육’을 한다. 건우와 지우, 두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엄마, 가지 마’ 하는 울음소리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크면서 독립심을 길렀다. 그의 사전에 ‘캥거루족(族)’은 없어 보였다.

“엄마가 너무 완벽하면 아이들의 기대치가 높아집니다. 저는 아이들한테 말합니다. ‘엄마도 사람이고 엄마도 힘들어. 그러니까 너희가 알아서 해야 돼’라고요. 아이들한테 항상 너희들이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더니 이제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시험을 보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엄마가 일을 하니까 아이들이 시험을 못 본다’는 말을 들을까봐 신경이 쓰였죠. 그러다 ‘그래, 아이들 스스로 준비해 보고 느끼는 것이 있으면 알아서 하겠지’하고 놔뒀죠. 그랬더니 나중엔 알아서 하더라고요.”

뭐든지 시기가 있다는 말이 있다. 놀 수 있을 때 놀고, 공부 할 수 있을 때 하고, 일 할 수 있을 때 하고……. 학창 시절은 두 번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황 기장은 아이들한테 1등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것은 하라고 당부한다.

“아이들한테 최고가 되라고 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것만 하라는 거죠. 공부도 때가 있으니 나중에는 하고 싶어도 못할 수 있다고요. 어렸을 때는 엄마를 찾아도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의 간섭은 지겨워지잖아요. 그래서 공부도 스스로 하도록 놔두고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라고만 얘기합니다. 저는 신의를 중요시 여깁니다. 제가 상대를 믿는 만큼 상대도 저를 믿어 줍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친하게 지낸 엄마들을 지금도 만나요. 제가 늦게 끝나고 할 때 친구 엄마들이 아이들 병원도 데려가 주고 했죠. 가사도우미(아이돌보미) 아주머니가 새로 오시면 갖고 있는 것을 오픈하면서 제가 믿는다는 의사표현을 하기도 했고요.”

일의 특성상 며칠씩 집에 못 들어올 때가 있다 보니 황 기장은 아이들과 손편지를 주고받았다. 자연스럽게 글공부를 익혔고. 그렇게 가족 간의 애틋함을 전하며 정서적 유대관계를 형성했다. 황 기장이 보여준 쪽지에는 JTBC '한끼줍쇼'의 단란한 가족을 보는 듯한 사랑스러움이 묻어났다.

“보통 일하는 엄마들은 저녁이면 들어오잖아요. 그런데 이 엄마는 나가면 며칠씩 안 들어오니까요(웃음). 아이들이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고 2~3학년 때 아이들한테 부탁하고 싶은 말을 글로 남겼어요. 엄마가 없을 때 이런 것을 해 달라고요. 말이라는 것은 사라지잖아요. 글은 오래 남으니까요. 지금은 제가 힘들어할 때 딸이 어느 순간 쪽지를 써서 줍니다. ‘엄마 힘내요, 난 언제나 엄마 편’ 이런 내용이지요. 항상 지갑에 넣고 다녀요. 아들은 비행기 그림을 그려서 가방 위에 올려주기도 하고요.”

평소에는 한없이 자상한 엄마지만 그에게도 원칙이 있다. 남에게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유를 누리게 하지만 방종은 용납할 수 없다는 철학이 있다.

“안 되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오늘은 되고 내일 안 된다, 그런 건 없습니다. 특히 남한테 피해를 끼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식당에서도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교육하고요. 엄마들이 저보고 단호박이라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이 싸웠을 때는 똑같이 혼을 냅니다. 뭔가 발단이 생겼을 때 상대가 똑같이 대응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니까요. 누가 일방적으로 잘못하고 잘하지는 않습니다. 둘 다 똑같이 혼내면 싸웠다가도 화해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친하게 지냅니다.”

▲ 황연정 기장의 딸 지우의 쪽지(사진=대한항공).

부모의 못 다 이룬 꿈을 자녀에게 강요한다는 것은 황 기장과 거리가 먼 이야기다. 그는 자녀의 적성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꿈을 키워주고 있다.

“아들이 한 때 조종사가 되고 싶다고 했어요. 아이들의 꿈은 12번도 더 바뀌니까요. 딸에게도 마찬가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합니다. 우선은 중학교 1학년이니 현재를 후회 없이 보내라고 얘기하죠.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친구를 만나는 거고요. 친구가 자산이니까요. 이해관계 없이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은 학교 때 친구들이잖아요.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거죠.”

황 기장은 후배들에게도 ‘최고가 아닌 최선’을 당부했다. 기왕 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찾고,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하지 말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만큼 하라고 얘기하고 싶네요. 최고가 되려고 너무 집중하다보면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1~2년 일할 것도 아니고 정년이 될 때까지 일할 거니까요. 초반에 너무 에너지를 소모하면 나중에 진이 빠집니다. 결국은 나중에 다 해야 할 일들입니다.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고 해야 합니다. 저는 쉴 때 운동 말고도 잠으로도 스트레스를 풉니다. 뭔가 걱정이 많으면 잡니다. 죽을 것 같이 힘들어도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고. ‘이거보다 더 힘든 일도 있는데 이거 못 견디겠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위로도 되고요.”

“대학교 때 친구가 ‘하루에 한 번이라도 하늘을 보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 비행하면서 하늘을 보면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해가 지는 하늘이나 오로라를 보면 누군가에게 보여 주고 싶고. 그렇게 일하면서 나름의 재미를 찾습니다. 많은 일하는 여성들도 자신의 분야에서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남들이 생각지 않던 시기에 ‘비행기 조종사’에 도전한 황연정 기장. 그는 인터뷰 내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전문 여성인의 모습을,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아낌없이 조언 하는 큰 언니다운 모습을, 아이들에게 자상하면서도 엄격한 현모(賢母)의 모습을 보여줬다. 한동안 중국발(發) 미세먼지로 인해 맑은 하늘을 볼 수 없었다지만, 이날 문득 고개를 들어 쳐다본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일과 가정을 모두 지켜야 하는 여성들에게 황 기장의 조언이 작게나마 위안이 되기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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