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수씨, 지방공무원의 희망과 자부심

▲ 구본수 씨

[이코노미톡뉴스=배병휴 회장] 어느 ‘공무원 33년의 이야기’가 퍽 감동이다. 요즘 인사청문회에 나오는 ‘위장전입’ ‘논문표절’ 시비대상 공무원이 아니라 주민자치 지역민들과 호흡을 같이 해온 지방공무원의 이야기다. 마포 토박이 구본수 씨의 공직 33년 기록이다.

청와대서 일어난 일만 중요한가

필자는 마포에 있는 숭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 9급 공무원으로 출발하여 동장, 구청과장, 국장을 거치면서 지역주민들과 애환을 함께 나눈 보람과 행복을 안고 정년퇴임했다.
그는 초보시절 선배 공무원들이 들려준 전설 같은 이야기를 많이 기억한다. 그러나 선배들의 세상과 지금은 너무 많이 변했다. 선배들은 자신들이 겪어온 일들이 대단치 않다고 생각한 듯 기록을 남기지 않는 것이 아쉽게 여겨진다. 필자는 비록 세상에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공직에 평생을 바쳤기에 “나 여기 있소”라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은 욕망이 왜 없었겠느냐”며 자신의 33년 이야기를 깨알처럼 기록했다.
필자는 청와대가 최고으뜸이지만 “청와대에서 일어나는 일만 중요한가”라고 반문하며 중앙정부에 이어 지방정부는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고 물었다. 전국 15개 광역자치단체를 비롯하여 226개 시·군·구, 220개 읍, 1,190개 면, 2,089개 동이 모두 정부조직으로 중요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3개월 9급 올챙이 사례발표 1등

필자는 1984년 1월 9급으로 임용된 후 아현동으로 발령받아 5년간 근속하며 86아시안게임, 88서울올림픽을 겪었다. 공직 보임 겨우 석 달만에 서울시 공무원교육원에 입소하니 중앙부처 6, 7급과 서울시 9급 신규 공무원 혼합 합숙교육이었다. 교육 프로그램 중 사례발표 계획을 보니 중앙부처에만 배정되고 신규공무원은 한 명도 없었다. 이에 올챙이 9급이 교무과에 항의했더니 “사례발표 내용이 있느냐”고 반문하자 “자신 있다”고 응답했다.
겨우 석 달짜리 9급이 당돌하게 두 가지 사례를 발표했다. 하나는 도시락을 싸와서 동료들과 나눠먹기를 시작했더니 석 달만에 도시락이 9명으로 늘어났다는 성공사례였다. 또 다른 하나는 전출신고 민원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줬더니 민원인이 돈 얼마큼을 주고 갔으니 바로 촌지(寸志) 아닌가. 겁이 덜컹 났지만 이미 민원인은 사라지고 없어 궁리 끝에 밤섬 철새모이주기 운동에 참여하여 모이구입 비용으로 사용했다.
이어 이 같은 사실을 편지에 담아 민원인에게 우송하고 복사한 편지 내용을 수첩에 간직했다. 어떤 촌지 유혹이 오더라도 거부할 수 있다는 징표로 사용하기로 다짐했다. 3개월 올챙이 9급의 사례발표에 대한 반응이 너무나 뜨거워 분임조 발표 1등을 차지했다.

친절봉사 유공 특진과 민방위 징계

1984년 8월 말 여름 밤, 청소직 비정규직과 둘이서 숙직할 때 비가 억수로 쏟아지더니 망원동 수문이 터져 물난리로 구청장이 피신하는 사태로 번지고 말았다. 1987년에는 고지대의 사태피해를 겪어야만 했다. 갈수록 지방공무원이란 주민과의 생활 동반자임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됐다.
1989년 3월에는 구청 총무과로 전보되어 동사무소들을 관할하는 ‘동정계’에 배치되어 부동산 중개업 담당, 주민등록 전산화 담당 등으로 역시 동 주민들과 호흡을 같이 했다. 그 뒤 1992년에는 서울시의 역점사업인 친절봉사업무를 담당하고 이듬해에는 중국인이 많이 살고 순댓국집이 유명한 연남동으로 발령 났다. 그곳에서 자치구 친절봉사 유공 공무원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따라 싱가포르를 방문, 공직서비스를 배웠다.
귀국 후 이에 관해 작성한 보고서가 서울시가 제작한 책자에 오르고 국민일보가 내용을 보도하자 구청장이 전화로 격려했다. 곧이어 중앙공무원교육원이 사례발표를 요청하여 ‘어느 일선 공무원의 이야기’란 제목으로 발표한 후 계속 요청이 들어와 3차례나 계속했다. 또 행정고시 신규자반 연수교육 초청으로 100분 특강하고 청와대 행정관 대상 강연 요청으로 두 차례 특강했다.
필자는 친절봉사 유공으로 특진의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 1994년 1월 새 구청장이 부임한 후 친절봉사 유공자에 필자가 선정되어 서울시에 상신했다가 일시 보류되었지만 돌진형의 최형우 내무부장관이 취임한 후 행정대화와 소통을 강조하면서 필자는 8급에서 7급으로 특진했다.
그렇지만 특진 얼마 뒤 민방위과 을지연습 담당업무 관련 징계처분을 받고 말았다. 김일성이 사망하고 전쟁위험설이 고조되고 있던 시점에 KBS가 비상우물 실태를 취재하여 ‘현장출동’으로 보도할 때 마포구가 포함됐던 것이다.

공무원이 보람이라고 믿고 살아온 세월

필자가 6급으로 승진하여 2002 월드컵을 앞두고 문화체육과를 맡았을 때 뜻 깊은 문화행사를 많이 기획, 연출했다. 마포나루 축제 계획의 일환으로 ‘황포돛배’를 제작, 승선하는 장면이 TV를 통해 소개됐다. 황포돛배는 밤섬 실향민 출신 목선 제작업자에게 의뢰하여 길이 33자(10m), 폭 10자(3m), 높이 5자(1.5m)에 모터를 장착 40명이 승선할 수 있었다.
이밖에 나루장터 개설, 한강망원지구 강변축제 등도 지역주민과 함께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는 문화행사로 성공했다.
다만 2005년 인사팀장이 됐을 때의 고달픈 기억이 남아 있다. 당시 부 구청장이 인사부탁을 받았는지 특정인을 특정부서로 발령 내도록 요청하여 부적격이라며 반대했다. 그러나 부 구청장이 계속 강요하여 발령 냈지만 얼마 안가 본인이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했으니 결국 실패한 인사였다.
하위직 인사철에는 구청장이 불러 5~6명의 쪽지명단을 제시하여 “구청장님, 이러시면 아니됩니다”라고 진언했으니 민선 구청장의 권위에 도전한 꼴이었다. 뜻밖에도 구청장이 껄껄 웃고 허허 웃어 넘겨 감동을 받았다.
필자는 인사팀장이란 주말에도 자진 출근해야 할 만큼 일이 많고 말이 많은 살얼음판의 격무와 긴장의 연속이었다고 회고했다.
필자는 그 뒤에도 보건위생과장, 소금창고 동네 염리동 동장, 마포나루 새우젓 축제 등을 거쳐 2015년 1월 4급 서기관으로 승진, 복지교육국장으로 정년을 맞이하게 된다. 필자가 되돌아 본 33년은 아쉽고 모자란 점도 있지만 보람과 행복이었다는 회고다. 필자는 국장으로 승진하여 정년으로 달려온 과정에도 어쩔 수 없는 ‘자잘한 청탁’이 있었지만 공무원이 희망이고 보람이라고 믿고 살아온 세월이었음을 말해 준다. 그리고 2016년 9월부터 세칭 ‘김영란법’의 발효가 후배 공무원들을 잘 지켜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행복에너지, 2017.5, 값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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