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찬 대사의 30년 외교관 이야기

[이코노미톡뉴스=배병휴 회장] 경주사람 권찬(權燦) 전 대사는 1970년대 냉전시대 국익외교 전선의 남북외교 대결에서 뛰어난 성과를 올리고 퇴임했다. 그는 회고록 ‘외교관의 사생활’(행복에너지, 2017.4)을 통해 ‘외교관은 사복 입는 군인’이라고 표현했다. 비록 총은 휴대하지 않았지만 국익을 위한 전사(戰士)의 역할이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다.

남북 외교전선 획기적인 성공사례

권 대사는 외교관이 된 후 주일 한국 대사관 3등 서기관으로 출발하여 8.15 ‘문세광 사건’을 겪고 네덜란드 근무 시에는 10.26 사태에 의한 박정희 대통령 시행사건을 해외에서 지켜봤다.
1988년 3월 이라크 공사 부임 시에는 미사일이 펑펑 날아 다녀 중부지역으로 피난 갔다가 1주일 만에 바그다드로 복귀할 수 있었다. 당시 이라크와는 미 수교국이라 총영사관이었지만 북한은 대사관을 개설하고 있어 현지 외교단 서열에서 훨씬 뒤처져 있었다. 이 때문에 평소 북한 대사가 매우 우쭐대는 꼴이었다.
이 때문에 미국 대사와 교분을 쌓아가면서 북한 대사의 이권개입, 외화 밀반출 등 많은 비리정보를 수집하여 현지 언론에 보도되도록 했다. 이 결과 북한 대사가 추방되고 북한 대사관은 불 꺼진 유령 신세로 전락했다. 이듬해인 89년 10월 한국 대사관이 개설되고 최호중 외교장관이 이라크를 방문, 후세인 대통령과 면담하고 나니 남북외교전이 완전 역전됐다. 권 대사는 이 공로로 우수 외교관으로 선정되어 근정포장 훈장을 받았다.

▲ 본국에서 내려온 수교 훈장(좌), 권찬 대사

권 대사는 외교관으로 도쿄에서 3등 서기관으로 근무한 지 20년이 지나 나고야 총영사로 첫 공관장이 되어 교포들의 대소사를 챙기면서 한일외교 증진에 헌신했다. 이어 94년 4월에는 쿠웨이트 대사로 두 번째 공관장으로 부임하여 걸프전쟁을 겪고 한·쿠웨이트 우호협력 증진을 위한 최선을 다한 후 1996년 말 퇴임했으니 외교관으로 소임을 완수한 셈이다.

안보문제 전문외교관의 큰 역할

권 대사는 외대 영어영문학과, 고대 대학원의 정치외교학 석사를 거쳐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립대에서 미국 정치학을 전공했다. 이보다 앞서 초등학교 때 6.25의 참화를 겪어 보고 대학원을 졸업했을 때 5.16을 만나 해병대 장교로 군복무 의무를 마쳤다.
해병대 장교의 길은 강훈으로 소문이 났지만 진해 훈련소의 훈련 프로그램을 거친 후 소위로 임관되어 강화도에서 임진강 방어 소대장으로 복무했다. 이어 정훈장교로 해병대 정신 교육을 담당하면서 책임과 의무와 애국심을 체득하고 실천하며 교육했다.
제대 후 미 국무성 장학생으로 유학한 후 귀국하여 대학 전임강사로 미국 정치학을 강의하다가 1970년 외교관 시험을 거쳐 특채되어 필생의 외교관직을 마감한 후 조국을 위한 헌신적인 외교관 삶의 보람과 영광을 말하게 된 것이다.
한국외교협회 정태익 회장은 권 대사의 회고록 추천사를 통해 외교관의 덕목 첫 장은 애국심이나 권찬 대사가 바로 열정, 사랑, 애국심의 외교관 표상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권 대사가 미국 유학 후 안보문제 전문 외교관으로 특채되어 중동 분쟁지역에 부임하여 많은 국익 외교성과를 올린 사실을 높이 평가했다. 행복에너지 발간, 값 15000원.

▲ 쿠웨이트에서 개최된 항공관계 ICAO 국제 회의에 참석한 한국 항공관계 대표단과 함께한 권찬 쿠웨이트 대사(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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