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6일 현충일

▲ 국립현충원 동작동국립묘지

[이코노미톡뉴스=김숙 논객칼럼] 6월이다. 6월에는 여느 때와는 다른 심정으로 높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날이 많아진다. 조용히 국립묘지를 떠올려 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내친김에, 혹은 핑곗김에 동작동 국립묘지로 발길을 옮기기도 한다. 보잘 것은 없으나 이런 행동이 나름대로는 순국선열에 대한 애도를 표해 보자는 것이기도 하고 호국영령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더욱이 요즘은 국립묘지가 공원화되어 특별히 유가족이 아니라 해도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드는 분위기로 자리잡힌 것 같다. 더불어 우리의 의식도 상당히 높아져 조용한 가운데 산책하고 묵념하는 모습들을 흔히 보게 된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이와는 다른 얘기가 있다. 필자의 국립묘지에 관한 기억이다. 반세기는 안 되었지만 벌써 몇 십년 세월이 흘러간, 그 기억을 잠시 떠올려보기로 한다.
중학교 때였다. 그때만 해도 학교 행사 중 [국립묘지의 송충이 잡기]가 있었다. 학생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키자는 취지 하나만을 볼 때는 높게 살 만한 가치가 하늘에 닿고도 남을 만 했겠으나, 연례행사였던 그 행사 때만 되면 필자는 거짓말같이 속이 울렁거리고 어지러웠다. 송충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송충이가 스멀거리며 몸속으로 기어드는 것 같아 소름끼쳤고 멀미 증세나 임신 초기의 입덧처럼 거품 섞인 침을 마구마구 뱉어내며 토악질을 했었다.
전교생을 운동장에 집합시키고, 체육 선생님께서 “국립묘지의 송충이를 잡아야 한다” 고 열변을 토하던 어느 날에는 애국구호가 무색하리만치 피식~~ 무릎이 꺾여 그 자리에서 양호실로 업혀갔던 적도 있었다.
그 뿐 아니었다. 체험학습이 있는 날에는 장갑 (고무장갑이나 면장갑이었을 것이다) 긴 나무젓가락, 집게, 큰 봉투를 가지고 국립묘지에 가서 송충이를 잡아야 했다. 살아있는 송충이를 잡기는커녕, 들여다보기는커녕, 생물도감에 찍혀있는 사진도 제대로 못 보고 못 만지는 위급상황에서 필자에게 그런 현장수업이란 정말 참아내기 힘들었고 죽을 만큼 가혹했었다. 그럼에도 몇몇 친구들은 송충이를 잡아내기에 열을 올렸고 심지어는 잡은 마릿수를 셈해 보며 키득키득 웃기도 했었다. 교칙에 순종적인 대다수의 학생들에게는 ‘울며 겨자 먹기’ 식의 송충이 잡기였고 필자 외 두어 명은 병든 닭처럼 몸을 웅크리고 앉아 운동화 앞부분으로 땅을 콕콕 찍어가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었다. 나중에는 국립묘지라는 전쟁터(?)에서 비열하게 살아남은 패잔병이 된 채로 거의 몸을 질질 끌고 집에 갔던 쓰라린 기억이 있다.
생각하면 억지스러운 애국심은커녕 말 그대로 생과 사를 넘나드는 기로였었다.
여러모로 세상이 좋아진(?) 지금 같으면야 여학교에서의 그런 충격적인 커리큘럼이란 아예 엄두도 못 낼 일이고 설령 자연학습 삼아 학습과정에 끼워 넣었다 치더라도 견디지 못하는 단 한 명의 학생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적절한 대안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시절에는 큰 테두리의 인정 외에는 개인의 개별적 동기나 적응 능력에 관대했던 시절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필자는 유구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파충류를 무서워하고 공포스러워 한다. 국립묘지의 소나무에 붙어있는 송충이를 나무젓가락으로 일일이 잡아낼 수 있어야 실기점수가 오르고 애국심이 인정되었던 그 옛날, 무지스러웠던 그 옛날과는 다르게 최고의 수준으로 관리되어 있는 국립묘지를 가보면 무작정 반갑고 기쁘다. 그럼에도 거기만 가면 여전히 양산을 펼쳐들고 걷고 있다. 또 어느 무덤가에 앉아 조용히 묘비명도 읽어보고 차분한 심정으로 애도를 표해볼까 싶어도 괜히 소스라쳐 주변의 풀잎조차 과하게 털어내는 고약한 습관이 남아있다. 그러나 어쨌거나 그 건 필자, 개인의 얘기다. 참배객이든 산책길에 나선 인근 주민이든 지금은 쾌적한 국립묘지를 맘껏 돌아볼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 때 필자의 선생님들이나 친구들의 ‘국립묘지의 송충이 잡기’가 국립묘지를 관리함의 주춧돌이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 金淑(김숙) 편집위원(자유기고가)

6월이다. 곧 현충일이 다가온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꾼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고 그들에게 묵념한다. 유월의 국립묘지는 수많은 참배객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더러는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산책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다만 정리된 주변이 좋아 단순히 걸어보고 싶은 마음으로 홀가분하게 들어섰다가 잠시 옷깃을 여미고 하늘을 올려다본다거나 고개를 숙이는 즉흥참배객도 있을 것이다.
좋다. 다 좋다. 필자가 중학교 때의 기억을 떠올린 것도 단순히 웃자는 얘기가 아니라 어떤 사건으로든 방법으로든 결국 국립묘지를 기억함으로 저변에 깔려있는 애국심을 말하고자 함이다.
소시민의 나라 사랑일지언정 이 나라를 지킨 호국영령들의 마음에, 그들의 귀한 혼에 닿을 것을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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