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훈 회고록‘, 그래도 나는 또 꿈을…’
퇴임후 ‘기파랑’ 설립, 좌파 출판물 대응

▲ 도서출판 기파랑 안병훈 대표의 회고록 ‘ 그래도 나는 또 꿈을 꾼다’

[이코노미톡뉴스=배병휴 회장] 조선일보 편집국장 출신의 유명 신문기자, 도서출판 기파랑을 설립한 애국출판인으로 활약 중인 안병훈(安秉勳) 씨가 610페이지가 넘는 회고록 ‘그래도 나는 또 꿈을 꾼다’를 출간했다. 회고록의 분량이 많은 것은 그만큼 언론인으로서 맹활약해 왔을 뿐만 아니라 정치부, 사회부 기자로서 취재한 화제와 비화가 많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해병대 정신… 대를 이어 조선일보

도서출판 기파랑 회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안병훈 씨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해병대 장교(중위)로 군 복무를 마친 후 조선일보 견습 8기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1965년 언론고시에 응시하여 동양통신과 조선일보에 동시 합격했지만 면접날이 겹쳐 먼저 연락이 온 동양통신에 입사했다.
동양통신 근무 이틀만에 서울법대 동기로 조선일보에 근무 중인 최병렬(崔秉烈), 이상우(李相禹) 기자로부터 연락을 받고 조선일보 면접을 받았다. 최병렬 씨는 대학 2학년 때, 이상우 씨는 대학 3학년 때 각각 한국일보에 입사했다가 조선일보로 옮겨 함께 근무하고 있었다.
안병훈 씨가 조선일보 김경환(金庚煥) 편집국장을 찾아가니 방우영(方又榮) 사장실로 안내했다. 이때 방 사장이 “선친 안찬수 편집부장 아들이면 조선일보로 입사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고 권유하여 견습 8기로 입사하게 됐다. 안병훈 씨 선친은 배재고, 보성전문(현 고대) 법과를 나와 경성일보 기자로 출발하여 조선일보 편집부장을 거쳐 연합신문 부국장일 때 6.25를 만나 납북됐다. 이 같은 인연을 살려야 한다는 방 사장의 뜻을 쫓아 2대에 걸쳐 조선일보 기자가 되어 국회와 청와대 출입, 정치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을 역임하고 편집인과 대표이사 부사장 등 38년 7개월을 근속했으니 언론인으로서 족적이 화려할 것은 물론이다.

▲ ‘김일성 총 맞아 피살’ 이란 제목이 달린 ‘ 신문 없는 날’ (1986년 11월 17일)의호외. 이틀 뒤에 오보로 판명됐다.

세계적 오보 ‘김일성 사망’보도 고백

안병훈 회장이 걸어온 언론인의 길에는 수많은 특종보도가 있었지만 정권과의 투쟁이나 야당권력과의 투쟁 및 ‘안티조선’세력과의 격돌사건도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중에서 가장 가슴 아픈 오보사건을 잊을 수 없노라고 고백했다.
1986년은 조선일보 창간 66주년에 국내 처음으로 지령 2만호를 기록한 해이다. 이해 11월 16일 일요일자 2면에 3단으로 보도한 김일성 사망설 기사가 발단이었다. 당시 일본 정계에 나돌고 있는 김일성 사망설 관련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한 보도 이후 조간이 발행되지 않는 일요일에는 ‘김일성, 총 맞아 피살’이라는 제목으로 호외(號外)를 발행한 것이다.
당시 나카소네 일본 총리는 “그런 정보를 들었지만 아직 확인은 안 돼”, 미 국무성은 “상황이 분명해질 때까지 추측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반면에 국내에서는 휴전선 북측 선전마을에 반기(半旗)가 게양되고 이기백 국방장관이 국회에 출석하여 “아직 단정할 수는 없지만 사망했거나 내부의 심한 권력투쟁 조짐”이라고 보고했다. 오직 장세동 안기부장만은 “우리가 아는 한 김일성은 죽지 않았다”고 알려 왔지만 전두환 대통령에게도 각 정보기관이 사망설을 보고했다는 정보를 중시하여 김일성 사망을 보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세계적인 특종이라고 확신한 이 보도가 세계적인 오보가 되고 말았다. 다음날인 11월 18일 오전, 김일성이 몽골주석 영접을 위해 평양공항에 나타났다. 이에 조선일보는 ‘김일성은 살아 있었다’고 보도하고 안병훈 국장은 인책 사표를 제출했지만 반려됐다는 이야기다.

평민당과 ‘조평사태’, 국민당과도 소송

안병훈 국장이 임기를 마치고 일본 게이오대 연수를 떠난 1989년 조선일보와 평민당 간의 ‘조평(朝平)사태’가 발생하여 소방수 격으로 급히 귀국했다. 김대중 총재의 유럽순방에 동행 취재한 부지영 기자가 주간조선에 보도한 “교황을 ‘헤이’라고 부른 순방의 뒷얘기들”을 평민당이 명예훼손으로 고발한 사건이다.
이때 평민당은 부총재 등으로 대책위를 구성하고 발행인, 편집인, 기자 등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고 조선일보 불매운동을 벌였다. 이에 조선일보는 대선을 앞두고 언론 길들이기가 아니냐고 반발, 언론자유 수호 차원에서 대응했다. 이때 신문편집인협회가 언론자유 위협이라는 성명을 발표했고 조선일보 사원들도 “평민당은 언론탄압을 말라”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반면에 기자협회, 한겨레신문, 언노련 등은 평민당 측을 두둔하는 입장을 취했다.
사건이 확대되자 평민당 측이 조건 없이 소송을 취하하겠다고 제의하고 김대중 총재가 오찬 초청을 통해 유감을 표시함으로써 화해가 이루어졌다.
1992년은 총선과 대선의 해로 국민당 정주영 대표가 대선출마를 위해 조선일보 간부들을 자주 찾았다. 그러다가 연말에 이르러 국민당이 편파보도를 이유로 조선일보 사장, 편집인, 편집국장 등을 서울지검에 고발하고 현대그룹 광고를 취소하는 압력을 행사했다.
이에 대응하여 조선일보가 국민당의 광고탄압 및 신문 불매운동을 보도하자 국민당 간부 등이 몰려와 시위하고 조선일보 기자의 국민당사 출입을 금지시켰다. 또 정주영 후보는 TV 연설을 통해 “조선일보는 권력에 굴복한 신문”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대선에 실패하자 즉각 고소·고발을 취소하고 정세영 현대그룹 회장의 방문사과로 사건을 수습했다.

노무현 전의원과 소송전 그 후

▲ 유시민 저 ‘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 표지. 노무현 정부는물론 ‘ 노사모’ ‘ 조아세’ 라고 불리는 안티 조선 세력들은 끈질기게조선일보 흠집내기를 계속했다.

국민당과 싸움이 한창이던 1992년 12월, 서울민사법원은 노무현 전 의원이 조선일보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일부 원고 승소로 2천만 원을 배상토록 판결했다. 주간조선이 “통합야당 노무현 대변인은 과연 상당한 재산가인가”라는 제목 하에 부동산 등 재산내역을 크게 보도한 것이 명예훼손이라며 발행인과 우종창 기자를 상대로 고발한 사건이다.
1심에서는 소송사유의 80% 상당을 기각하고 20%만 인정, 2천만 원 배상 판결이 나온 것이다. 이때 안병훈 편집인이 노무현 측에게 “3심까지 갈 것 없이…”라며 화해를 요청하자 노 전 의원이 금방 “조선일보 사장이 점심을 사면 고소를 취하 하겠다”고 응답하여 코리아나 호텔 일식당에서 만나 ‘없었던 일’로 합의했다.
그 뒤에도 노무현 전 의원은 조선일보에 대해 ‘조폭언론’이란 막말로 뒤통수를 쳤다고 안 회장은 지적했다. 이 무렵 유시민 씨가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라는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공산당이 싫어요’ 오보설 규명 승소

좌파 논리가 다방면으로 부상하고 있던 이 시기에 30년 전 조선일보 특종으로 기록된 반공 소년 이승복의 ‘공산당이 싫어요’ 오보설이 제기됐다. 1992년, 한국기자협회 계간지 저널리즘에 김종배 기자가 이를 기고했고 중앙일보, 월간 말지 등에도 비슷한 내용이 보도됐다. 한겨레신문은 이 무렵 언론개혁시민연대 발족을 계기로 ‘공산당이 싫어요’의 조작보도 규명을 촉구했다.
이어 언개련은 지하철 서울시청역 광장에 ‘한국신문 허위 왜곡 보도 사진전’을 개최하고 오보설, 조작설을 확산시켜 나갔다. 이에 조선일보는 대책팀을 구성, 당시 취재기자와 사진기자 등을 찾아 실제 상황을 재확인하여 “이승복 소년 신화 진실을 입증했다”는 내용의 특집보도로 대응했다. 또한 오보전시회를 주도한 언개련 김주언 사무총장, 미디어오늘 김종배 차장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1심은 김주언에게 징역 6개월, 김종배에게 징역 10월, 2심에서는 김주언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김종배 무죄로 선고되고 그 뒤 대법원이 원심을 확정, ‘공산당이 싫어요’ 보도는 진실로 명예회복 한 것이다.

조선일보 퇴임후 애국출판의 길

안 회장은 조선일보 퇴임 후에도 LG상남언론재단 이사장, 관악언론인 회장 등으로 활약하다 좌편향 출판물이 판치는 서적가를 보고 2005년 4월 김재순(金在淳) 전 국회의장의 샘터사 건물에 도서출판 ‘기파랑’을 설립, △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 교과서를 배회하는 마르크스의 유령들 △ 건국 대통령 이승만 △ 혁명가 박정희 대통령의 참모습 등을 출간, 애국출판인 반열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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