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라이트 감독, 2007년 영국작품
키이라 나이틀리, 제임스 매커보이, 시얼샤 로넌

▲ 영화 '어톤먼트(Atonement, 2007)' 스틸컷.

[이코노미톡뉴스=박윤행 논객] 사건이 일어나면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증인들의 증언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증거로 채택된 물증들은 어디까지 진실에 부합하는 것일까? 혹시 잘못된 증언이나, 잘못된 증거 때문에 무고한 희생자가 생기는 일은 없을까?
열명의 진범을 놓아주는 일이 있더라도, 한명의 누명쓴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법정신일 것이다. 그래서 3심을 거처 사형이 확정된 사형수도 형 집행을 유보하려는 것이 작금의 세계적 추세라고 한다.
이 영화는 풍부한 상상력을 가진 작가지망생, 13살 소녀가 그릇 판단하고 저지른 잘못 때문에 한 남자의 생이 파탄이 나고, 그녀는 평생 속죄(어톤먼트)를 생각한다는 이야기인데, 너무나 아름다운 화면처리는 미완의 로맨스를 더욱 가슴 아프게 만든다.

▲ 브라우니가 본 것 ▲로비는 체포되고. <사진=필자캡쳐>

1935년 영국. 부유한 명문가의 시골 성관. 타자치는 소리와 함께 영화가 시작되는데, 타이프소리는 브라우니가 영화 속에서 책을 쓰고 있다는 암시이다.
“언니 요즘은 왜 로비와 말 안 해?” “그냥 겉도는 것뿐이야” 13살 소녀 브라우니는 언니 세실리아(세시)에게 로비와의 관계를 묻는다.

▲ 3년반만의 만남 ▲전장의 로비<사진=필자캡쳐>

그리고 창 너머로 멀리 언니가 속치마바람으로 로비 앞에 서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사실 세시는 로비가 다시 의대에 6년을 가려 한다는 것에 화가나있었고, 화병이 깨지며 손잡이가 분수에 빠지자 그것을 건지러 분수에 들어갔다 나온 것이었다.
로비는 이집 가정부의 아들로 집주인이 장녀 세시와 함께 캠브릿지에 보내줘 함께 학교에 다닌 사이였다.
런던에서 장남 레온과 그의 친구인 폴 마셜이 이곳 여름별장에 쉬러오는데 그는 친척으로 놀러온 소녀 롤라에게 은근히 관심을 갖는다.
로비는 세시에게 사죄의 편지를 쓴다는 것이 장난삼아 ‘꿈속에서 당신의 은밀한 곳에 키스했소’라 썼다가 실수로 그것을 그대로 봉해서 언니에게 전해주라고 브라우니에게 준 후에야 잘못을 깨닫지만, 브라우니는 그것을 읽어버린다. 그리고 이어 도서실에서 로비와 세시의 정사를 목격한다.

▲ “거짓말이었다고 말해” ▲“내게 돌아와줘요” <사진=필자캡쳐>

오랫동안 서로 이끌리던 두 사람은 비로소 서로가 사랑하는 사이임을 확인하고 처음 정사를 가졌지만, 브라우니에게 들키고 만 것이다. 연속된 로비와 세시의 사건은 브라우니로 하여금 로비를 성도착자로 여기게 만들었고, 집나간 쌍둥이 형제를 찾아 나섰다가 어둠속에서 이번엔 롤라를 누군가가 뒤에서 덮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범인은 로비라고 단정한다. 롤라는 어둠속에서 자신을 밀쳤기 때문에 누군지 모른다고 하지만, 브라우니는 모두에게 자신이 확실히 봤으며 범인은 로비라고 경찰에게 증언하고 로비의 편지를 찾아서 증거물로 제시한다.
한참 후 쌍둥이를 찾아서 데리고 온 로비는 영문도 모른 채 체포되어 끌려가고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하고 로비 모친이 외치는 장면을 창가에서 지켜보는 브라우니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4년 후 프랑스 북부. 2차 대전이 일어나고 프랑스에 출정 나갔던 로비는 낙오병이다. 감옥이냐 징집이냐의 선택에서 징집된 것이다. 6개월 전, 3년 반 만에 세실리아와 만난자리에서 그 사건 후 세시는 가족과 연락을 끊고 지낸다며 “나에게 돌아와 줘요”하며 그림엽서를 한 장 준다.
도버의 흰 절벽에 있는 오두막 사진이다. 휴가를 오면 그곳에서 함께 지낼 수 있다고...
가벼운 상처였지만 치료를 받지 못한 로비는 상처가 악화된다. 간신히 던커크에서 본대에 합류했지만, 영국군은 총퇴각을 준비하고 있었다. 여기서 5분이라는 영화사상 가장 길고 스펙터클한 롱 테이크 화면이 펼쳐진다.
철수대기 중인 패전부대의 무기력, 부산함, 무질서, 혼잡 속에서도 군가를 힘차게 부르는 씩씩함과 끈끈한 전우애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원 카메라 원 쇼트로 주인공을 따라가다가 놓치고 훑다가 다시 만나고하는 멋진 카메라워크가 연출된다.
로비는 환각 속에 모친에게 발을 씻기고 잠을 청한다. “세시. 당신을 찾아 사랑하고 결혼하고 치욕 없이 살거야”

브라우니는 대학 진학대신 간호사 견습생을 지원하고 병원에서 근무하며 틈틈이 등화관제 속에서도 원고를 쓴다.

▲ 해피엔딩 <사진=필자캡쳐>

“사랑한적 있니?”라는 동료의 물음에 “난 사랑한적 없어. 한번 반한적은 있지. 열한 살 때. 날 구해주나 보려고 물에 뛰어들었을 때 그가 날 구해줬어” 상대는 로비다.
브라우니는 언니 세시의 주소를 알아내고 편지를 쓴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이제야 난 깨닫고 있어. 내가 아무리 속죄하려해도 내가 한 짓과 그 의미에서 벗어날 순 없는걸 알아” 던커크에서 철수한 연합군 부상병들이 병원에 들이닥치고, 브라우니는 롤라와 폴의 결혼식에 참석한다. 롤라를 뒤에서 덮쳤던, 브라우니가 목격한 남자는 로비가 아니라 폴이었던 것이다.
브라우니는 언니 세시의 집을 찾아가고 로비와 마주친다.
“넌 18살이 돼서야 거짓말을 자백해? 네가 해줄 일이 있어. 모두에게 네가 거짓말을 했다고 말하고, 변호사를 만나 문서로 만들어 서명하고 사본을 보내줘” “그럴게. 내가 한일 정말 미안해” 포옹하는 두 사람을 두고 브라우니는 떠난다.

텔레비전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노년의 브라우니.
“소설의 제목이 속죄인데요 무슨 의미가 있나요?”
“난 죽어가고 있어요. 그래서 내 자신의 이야기를 마지막 책으로 썼어요. 난 정말 오랫동안 진실을 말할 결심을 해야 했어요. 그러나 정직함이, 사실이 무슨 만족을 줄 수 있겠는가 생각했어요. 사실 난 언니를 보러가지 않았거든요. 언니와 로비가 있는 그 부분은 완전히 창작이에요.
로비는 패혈증으로 던커크에서 죽었어요. 언니도 몇 달 뒤 폭격으로 사망했고요. 그래서 그렇게 서로를 갈망했던 두 사람은 함께 할 수 없었어요. 난 소설에서 그들에게 실제 삶에선 잃었던 걸주고 싶었어요. 난 그들에게 행복을 준거에요”
도버의 바닷가를 뛰노는 행복한 두 사람
사진속의 오두막집으로 들어간다- 소설의 끝 장면이다.
그렇게 브라우니는 속죄한다.

전장에서 돌아온 로비가 다행히도 그렇게 사랑하는 세시와 함께하는 줄 알았는데, 영화는 냉혹하게도 맨 마지막에 그것은 작가가 지어낸 허구며, 사실 그 둘은 만나지도 못한 채 전쟁의 참화 속에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고 말한다.
관객은 이제 진실을 발견(discovery) 한다.
그것이 영화이며, 반전과 놀라움(surprise)은 영화의 기본법칙인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안타깝고, 가슴 서늘하게 아픔을 느끼는 것은 그만큼 영화가 아름답고 너무나 잘 짜여져, 끝까지 둘이 행복하게 되길 브라우니처럼 바라는 마음에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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