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귀함이 최고 가치

▲ 영화 ‘터널’

[이코노미톡뉴스=임영호 전 국회의원] 몇 년 전에 ‘터널’이라는 영화가 상영되었다. 재난영화다. 터널 공사와 관련된 공청회에서 구조대장 오달수가 내질렀던 한마디에 생각이 꽂혔다. “터널 안에 사람이 있다.” 이는 터널공사를 재개하려는 공청회에서 무대 뒤편에 있던 한 아웃사이더의 외침이다. 우리들이 무시했던 소중한 가치인 하나의 생명을 일깨워준다. 성장과 효율의 눈으로 보면 한 사람의 인간도 하나의 객체에 불과하다. 당국의 생각도 그 정도 수준일 것이다.

보호받을 수 있는 ‘훌륭한 국가’

우리는 재난을 당할 때마다 인명이나 재산피해를 본다. 이럴 때마다 국민들은 국가를 믿고 싶어 한다. 우리는 믿고 싶어 하는 훌륭한 국가란 어떤 국가일까? 진보주의자 유시민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 국가이다. 국민을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존중하는 국가이다. 부당한 특권과 반칙을 용납하거나 방관하지 않으며 선량한 시민 한 사람이라도 절망 속에 내버려두지 않은 국가이다.”
훌륭한 국가란 개인 혼자서 이겨내기가 어려울 때 최후로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훌륭한 국가 없이는 국민의 행복한 삶을 보증할 수는 없다.

‘국가’ 소련은 지고 존귀한 ‘인간’만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 ~1910)는 러시아 제정 말기에 가난과 억압 속에 살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되나 고민했다. 혁명을 할 것인가. 소용이 없어 보였다. 농노제와 같은 불합리한 계급제도와 자본주의가 몰고 온 불평등을 지극히 혐오했지만 혁명으로 국가를 바뀌어 본들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종교로 눈길을 돌렸다. 그의 인생말기의 작품들은 인간의 생명과 사랑을 노래한다. 작품 하나하나가 지극히 종교적이다. 톨스토이의 단편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 가’의 작품은 성경 구절만큼이나 거룩하다. 인간이 얼마나 존귀한 것인지 가르쳐 준다. 러시아는 사회 적폐가 폭발해 혁명으로 변하여 소련 공산주의 사회로 되었지만, 70년이 지나 지금은 사라졌고, 현재는 톨스토이만이 빛나고 있다.

인감 존엄성 지키는 ‘훌륭한 국가’

<필자소개 : 임영호>

△1955년생 △충남고, 한남대 행정학 박사 △제25회 행정고시 합격 △대전 동구청장 3선 △18대 국회의원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 비서실장, 자유선진당 대변인 △전 코레일 상임감사.

소련 공산주의는 왜 망했을까? 국가가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국가의 최종목표에 국가만 있고 인간이 없었다. 독일 베를린 대학총장이었던 피히테(1762~1814)는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란 유명한 연설을 하였다. 국가가 무슨 물리적 폭력으로 다가왔다. 국가는 이성이나 양심이 작동되지 않는다. 국가를 지배하는 것은 집단적 감정과 충동이다.
전쟁과 같은 국가존망이 달려 있을 때는 개인에 앞서 국가가 우선일 수 있으나 효율의 문제까지 국가가 개인의 존엄을 무시할 수는 없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1817~1862)의 “먼저 인간이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는 말은 지금 생각해도 옳다. 영화 ‘터널’은 한마디로 선량한 시민 단 한사람이라도 절망 속에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침몰한 세월 호가 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육지로 올라왔다. 정부가 비난받는 것은 정부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최선을 다했느냐이다. 국민들은 나쁜 지도자나 무능한 정부를 가질 때 무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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