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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잊은 노인’의 삶] 기록왕 김안제 인생사정년, 고희지나 傘壽 및 金婚기념 백서
100세 까지 남은 20년 여생일정 제시
  • 배병휴 [이코노미톡뉴스 회장]
  • 승인 2017.03.28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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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다시 여든을 맞아 '산수기념사업회' 명의로 805페이지에 달하는 '안제백서’(安濟白書)'를 발간한 서울대 교수 김안제 박사.

‘나이를 잊은 노인’의 삶
기록왕 김안제 인생사
정년, 고희지나 傘壽 및 金婚기념 백서
100세 까지 남은 20년 여생일정 제시

 

‘기록의 왕’, ‘기록의 귀재’로 소문난 전  서울대 교수 김안제(金安濟) 박사가 또 진기한 인생기록사를 출간했다. ‘산수(傘壽, 80세) 및 금혼(金婚, 결혼50주년) 기념’ 805페이지 짜리 대형 개인 기록물이다. 김 박사는 4통8달 소통이 넓어 인맥(人脈)으로부터 무한호인(無限好人)으로 평판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다소 기인형(奇人型) 기질도 타고 나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받는다.

천성의 기록광, 80 산수 및 50 금혼기념

▲ '안제백서’(安濟白書)'

김 박사는 지난 1996년, 회갑 때 ‘한 한국인의 삶과 발자취’를 발간하여 신문과 방송으로부터 진기록이라는 평가를 받은바 있다. 이때 옛 전차표값, 짜장면 한 그릇 값까지 깨알처럼 기록한 개인 인생사가 유명 대학교수 기록물이 맞느냐는 일부 지적도 있었다.
그 뒤 2006년 일흔 살 고희 때는 생활과 학문기록 등을 더욱 확대 보강한 ‘김안제 인생백서’로 출간했으며 지난해 다시 여든을 맞아 ‘산수기념사업회’ 명의로 ‘안제백서’(安濟白書)를 발간, 805페이지 값 5만원 짜리를 지인(知人)이라며 택배(宅配)로 보내왔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김 박사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의 (사)한국자치발전연구원 원장으로 활약하는 ‘나이를 잊은 노인’이다. 그는 80 인생사(1936~2016) 기록 속에 자발적으로 ‘나이를 잊은 노인’이라고 고백한 뒤 앞으로 20년간 100세까지 해야 할 일과 여망을 총총 기록으로 예시했다.
김 박사는 오늘을 살고 있는 이 땅의 7080 세대가 겪어온 경로대로 망국(亡國)시절에 태어나 식민지 백성의 서러움 다 겪고 8.15 해방 감격과 혼란 호흡하고 6.25와 4.19 및 5.16 격동까지 겪어냈으니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이토록 험난한 세월의 기록을 정리하면서 김 박사는 아호를 초범(草凡)으로 선정했노라고 밝혔다.
초범이란 초근목피(草根木皮) 시절을 참고 견디면서 범인(凡人)으로서 분수(分數)를 지키도록 노력해 왔다는 의미다.
이 같은 인생역정의 초범이 기록에 심취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만화, 동화, 소설책 등을 밤늦게까지 탐독하면서 중복을 피하기 위해 메모하는 버릇을 길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김 박사와 가까운 사람들은 온갖 기록에 심취하는 그의 기록습성은 타고난 천성으로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신라 경순왕 왕손이나 빈농서 출생

‘안제백서’는 제1부 ‘선사기’(先史記), 제2부 ‘현생기’(現生記), 제3부 ‘내세기’(來世記) 등에 이어 부록으로 우주창생에서 자신의 100세까지 주요 연보를 싣고 영문표제와 영문차례까지 첨부해 놓았으니 너무나 방대한 기록물이다.
어느 개인의 기록물에 선사시대(先史時代)부터 우주와 지구의 생성까지 나오고 인류의 출현과 세계의 변천을 거쳐 한국의 역사와 선대의 세보(世譜)까지 나오니 놀라지 않을 수 있는가. 메모광 그의 머릿속 기록 창고에는 얼마나 많은 기록요소가 쌓여 있는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초범이 말하는 선대란 경주 김씨로 제1대 시조 김알지(서기 65년)로부터 제65대(1890년대)까지 직계 조상들에 관한 모든 기록을 일괄표로 작성해 자랑했다. 이중 제6세 구도 조상은 90세까지 장수했고 28세 경순왕은 신라 56대 왕에 즉위했지만 고려 건국 왕건의 장녀와 혼인하여 5남2녀를 출산하며 국토를 고려에 넘겨준 역사적 사실을 숨김없이 기록했다. 김 박사네 경주 김씨가 경상도 문경 땅으로 입성한 것도 경순왕 때라고 기록했다.
초범 김안제는 1936년 7월, 경북 문경군 호서남면 흥덕 4리 빈농에서 태어났다. 신라의 왕손가문이지만 1000년 세월이 지나면서 초라한 빈농으로 전락하여 나라 잃은 식민지 백성의 신세로 태어났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의 기록벽이 빈농 초가의 규모를 대지 200평, 건평 55평에 울타리 안에 넓은 마당과 채소밭이 있었다고 기록했으니 요즘 잣대로 보면 대저택이다.

100세까지 20년 여생계획에 사후까지

출생에서부터 대학교수로 정년을 맞기까지 그의 현생기(現生記)는 너무나 많고 많은 깨알기록으로 넘친다. 출생 이후 정년 은퇴기까지의 직업만 봐도 가정교사, 초등교사, 회사 사원, 고교교사, 정부 연구원, 미국유학, 지역경제학 박사, 대학원 강사, 전임강사, 조교수, 학과장, 연구소장, 부교수, 정교수, 원장, 평교수, 주임교수, 명예교수, 석좌교수에 현직 원장까지 끝이 없으니 실로 ‘나이를 모르는 노인’이다.
또 그의 내세기(來世記)는 백수까지는 20년이 남았으니 여생을 구상해야 하고 사후 기원까지 준비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 2020년까지 강연원고 준비 △ 2023년 미수(米壽) 기념식 △ 2027년 10년 여생계획 △ 2028년 장남 회갑기념 △ 2032년 부부묘지 후보지 선정 △ 2035년 100수 기념집 △ 2036년 결혼 70주년 기념, (101세) 등.
사후(死後) 소망으로는 ‘하늘의 음식’을 먹게 된다면 천도복숭아, 감로수, 신선주 마시고 지상에서 즐겼던 칼국수, 메밀묵, 막걸리도 마시고 싶다는 소망이다. 취미생활로는 소설탐독과 영화감상 및 골프도 종종 치고 신선과 바둑 한판 나누고 싶고 꼭 가보고 싶은 곳을 꼽는다면 극락과 천당, 염라국과 연옥을 방문해 보고 지옥도 훔쳐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또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은 단연 부모형제가 먼저이지만 뒤이어 역사 인물로 단군 할아버지, 창조주와 염라대왕도 만나보고 그림 같은 천사와 선녀도 만나보고 싶다는 소망이다.

기록광 인생사의 출생에서 교수까지

▲ 고교 2학년 시절 친구 결혼을 축하가기 위해 상주에 갔을 때 찍은 사진(앞줄 맨 우측이 김안제 교수).

초범 김안제는 1936년 7월생으로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마라톤에서 우승한 해에 태어났지만 1년이 지나 출생신고 하여 호적상에는 1937년 4월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삼베옷 입고 짚신 신고 등교하여 맨날 일본노래 배우고 노력동원에 끌려 다녔다. 8.15 해방 후인 1947년 4월에야 난생 처음으로 소금 양치질을 했다. 사람들이 입에서 냄새가 난다고 지적하여 양치질을 처음 했다는 부끄러운 기록이지만 숨기지 않았다. 이 무렵 노트는 비행기 삐라용지, 연필은 몽당연필을 구해 사용했지만 매년 개근상, 우등상을 받았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 부모님 몰래 중학교 입학을 위한 국가시험을 치렀더니 450점 만점에 425점을 얻어 문경군에서 1등을 기록했다. 당시 전국의 수석은 청도초등학교 학생이 445점을 차지했다. 당시 경기중학 입학 커트라인이 335점이라 김안제 학생은 합격하고도 남는 성적이었다.
이때 문경중학교 당국이 집으로 찾아와 입학금을 면제해줄 테니 응시해 달라고 신신당부하여 책과 교복만 준비하여 문경중학생이 됐다. 이때 감사한 마음으로 마당 한 가운데에 있는 수령 300년의 회양목을 학교당국에 기증하겠다고 약속하여 얼마 뒤 문경중학 본관 앞으로 이식했다.
중학시절에는 독서열이 분출하여 심청전, 탐정소설, 연애소설 등 가릴 것 없이 매일 밤늦게까지 속독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때부터 독서열, 기록열 등이 축적됐다고 볼 수 있다. 중학을 졸업, 고교 진학을 생각할 때는 돈 안 드는 사범학교로 가라는 권유가 많아 안동사범을 지원, 6등으로 합격했다. 1학년 때 성적이 전체 최우등생이었으니 소설책 탐독에 빠졌었지만 머리 좋고 공부 잘했다는 평가는 사실이었다.
고 2학년 때부터는 가정교사로 침식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의 가정교사직은 부업에서 주업까지 교차하며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계속됐다.
이때 가정교사댁에서 아들을 명문 선린상고에 입학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면 대학 진학시 입학금을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하여 실제로 소원성취 할 수 있었다.

필생 교수직 정년후도 ‘나이 잊은 노인’

김안제가 가정교사로 열심히 가르친 학생이 실제 선린상고에 입학하고 그는 서울대 문리대 물리학과에 입학하여 ‘문경촌놈’이 서울학생으로 출세했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하여 논산훈련소를 거쳐 수도사단 26연대 이등병으로 배치되어 졸병으로 제대했다.
그 뒤 4.19와 5.16을 거쳐 1962년 2월 대학을 졸업하니 이학사에다 고교 2급 정교사 자격증이 주어졌다. 첫 직장으로 민중서관 편집사원 공모에 합격하여 문리과 참고서 편찬요원이 됐다. 얼마 뒤 수도여자사범(현 세종대학) 부속 여자고교 수학교사 모집에 수백 명의 응시자와 겨뤄 단독으로 합격하여 여고 교사가 됐다. 이때 다시 서울대 행정대학원 모집에 응시하여 2등으로 합격, 5.16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지방자치 과목을 맡은 노융희(盧隆熙) 교수를 만나 평생 지도교수 인연을 맺었다. 대학원 2학년 때 내무부 지방행정연구위 연구원으로 위촉됐으니 이 또한 평생 가연으로 ‘나이를 잊은 노인’의 인생길을 동반하게 만들었다.
지방행정연구원 시절 직속 과장이 바로 국졸 도백으로 유명한 김수학(金壽鶴 ) 씨로 청렴, 근면, 강직 공무원상이다. 그는 경주군청 사환으로 출발하여 경북도지사, 국세청장, 한국토지공사 사장을 역임한 신화를 남긴 분이다.
김안제가 1965년 2월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 연구원과 조교생활로 나섰다. 이때까지도 수학과 영어 가정교사직은 부업으로 열심히 계속했다. 곧이어 결혼으로 가정을 이룩하고 명지대, 건국대 등 대학 강단에 서기 시작했다. 얼마 뒤 평생 지도교수 노융희 학과장의 주선으로 미 국무성 USAID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신시내티 대학에 유학, 지역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필생의 교수생활로 들어섰다.
귀국 후 서울대 행정대학원 전임강사로부터 멀고도 긴 교수가 되고 환경대학원이 발족하여 1986년 제4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그로부터 2002년 8월 교수 정년을 맞을 때까지 평생 직업이 교수였다.
초범 김안제의 교수생활은 정년과 고희가 지나서도 건국대, 서울대 등 강단에 서고 한국자치발전연구원, 한국지역발전연구원 등을 오가며 강의하고 건교부의 중앙도시계획위원회 등 수많은 정부위원회와 사회단체 위원으로 겹치기 활동을 계속했다. 외부 강연, 특강, 축사 등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최초, 최고, 최다기록도 무수했고 독서량, 집필량, 청취자수 기록도 집계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 책 속에 그의 정년 기념시, 고희 기념시, 산수(傘壽) 기념시 및 일생을 노래한 생애가도 나오지만 앞으로 20년 여생을 계획하고 있는 ‘나이를 잊은 노인’ 대목보다 더할 감동이 있을 수 없다는 소감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12호 (2017년 4월호) 기사입니다]

배병휴 [이코노미톡뉴스 회장]  econotalki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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