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수필]

언제까지…
‘광화문의 세월호’
정치인들의 상장(喪章) 정치

글 / 최수권(전 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수필가)

종교행사에 참가했다. 진행을 담당하는 이들 중에는 세월호의 리본을 착용한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답답한 생각이 들어 한마디 할까 하다가 참았다.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행사장을 나와 버렸다. TV에 나온 정치인들 중에도 세월호의 리본을 부착한 이들이 눈에 띄고, 지하철에서 그런 사람들을 가끔 만날 수 있다.

▲ 최근 서울 광화문 앞 세월호 천막의 모습.

언제까지 억지, 떼법 계속해야 하나

상장(喪章)이란, 고인에 대한 애도이며 상중임을 알리는 표시이고, 유족이 망인에 대해 예를 표하는 슬픔의 상징이기도 한다. 오랜 우리의 관습은, 부모상을 당하면 애도 기간을 3년으로 했다. 그리고 탈상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49재로 하였고, 근간은 삼우재를 지내고 탈상을 한다. 부모님이 운명하여도, 3일장과 삼우재를 거치면 상장을 태워 고인의 명복을 빌고, 망자를 천국으로 보내드린다. 가까운 사람들이 운명을 달리 할 땐 유족을 위로하고 예를 다하고 슬픔을 나누지만, 상장은 부착 하지 않는다.
세월호 사고는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있어선 안 되는 그런 큰 사고는 언제나 우리 곁에 항상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회의 안전망이 아무리 잘되어 있어도, 많은 사람들이 철저히 관리하고 운용해도 사고의 확률은 늘 존재한다.
세월호 사고는 선사와 선원들이 일반 상식적인 기본과 원칙도 지켜지지 않는 아주 후진적인 사고였다.
고등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이 수학여행길이였고, 일반인 포함 탑승자 476명중 304명이 사망한 대형 참사였다.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사고는 현재까지도 광화문의 촛불 집회로까지 이어지고 있고,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특검 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의 빌미로 시끄럽다.

40년전 전자회사 여름 단체휴가 기록

1978년 필자는 C전자회사에서 홍보, 종업원 교육을 전담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휴가를 단체로 떠나자는 의견이 있었다. 홍보를 담당하는 입장에서 나는 그건 가당치도 않는 계획이라고 반대했다. 기업이미지, 제품광고 등 그 많은 선전비를 들여 광고하는데, 만약 사고라도 나면 회사는 끝이라고 극단의 의견을 내놓았다. 군대에서도 1개 중대만 움직여도 크고 작은 불상사가 나기 마련인데, 훈련도 되지 않는 직장인을 그것도 가족까지 동반하여 휴가를 간다는 것은 위험하다고 의견제시를 했다. 받아들여지지 않고 단체 하계휴가 계획은 망설임 없이 진행됐다. 회사에선 TF팀이 구성됐다. - 40여년 전이라 기억이 뚜렷치 않아, 인터넷으로 당시 단체 하계휴가 일정 등을 조회했다. 매일경제 1978년 8월 1일자에 기록이 있었다. C전자 2,600명, 버스 66대로 망상해수욕장 단체 휴가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
나는 당시 TV, 라디오, 신문 등에 보도 자료를 배포하고, 휴가 떠나는 행사를 TV, 라디오 등에 중계시켰다. 주간지 등에선 현지 르포기사를 다루기도 했다. 당시에는 어느 대기업도 상상할 수 없는 무모함이었을지 모른다. 3박4일의 휴가는 대성공이었다.
망상해수욕장에 가설무대를 설치하고, 직원, 피서객과 연예인, 밴드가 어우러지는 3박4일, 밤마다 열리는 고고파티는 직원들은 물론 피서객들 까지도 휴가의 진맛을 만끽하기도 했다. 그때 행사비에 투입한 몇 십배의 광고효과를 봤다고, 회장으로부터 금일봉을 하사 받기도 했다. 이는 TF팀의 치밀한 계획이 있어 가능했던 것이다. 2,600명의 가족을 버스 66대로 분산하여 이동하고, 숙박시설, 사고예방 등을 위한 철저히 준비된 휴가는 경미한 사고, 사건하나도 발생하지 않는 행사였다. 생산직의 젊은 남녀가 대부분이었는데도..., 행사를 계획하고, 관계기관에 행사의 취지와 해당기관이 도와줘야할 세부사항을 협조 공문으로 발송시켰다. 청와대, 경찰, 운송회사, 해당도지사에...,

세월호 책임이야 선주, 감독당국 순 아닌가요

당시엔 무선통신 수단이 일반에는 없어서, 경찰, 군부대의 지원을 받아 활용했다. 고속도로에서는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아, 사고예방을 했고 현지에 파견 근무한 경찰들의 도움으로 행사를 무사히 마쳤다. 40여년 전인데도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협조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세월호 참사의 1차적인 책임은, 승객의 안전관리와 선박관리를 해야 하는 선주회사의 책임이다. 그리고 관리감독을 해야 할 한국해운조합, 해경, 인천지방해양항만청이 제 역할을 하지 않는데서 발생한 참사다.
수학여행길에, 어떤 지각 있는 교사가 있었다면 관계기관 등에 일정을 알리고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협조를 당부했다면, 이런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행길을 사전에 답사하고 문제점을 점검했더라면..., 안전을 위해, 해경에서 안전요원을 파견시켰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참사다.
몇 년 전 내가 나가는 성당에서 행사가 있었다. 서초동에서 절두산 성지까지 600여명이 도보로 걷는 행사였다. 관할 경찰서에 전화를 했다. 행사취지와 규모를 알리고 협조를 구했더니, 구간 구간의 건널목에 경찰을 파견시켜줘서 안전하게 행사를 마쳤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사회 안전망이 엉터리가 아니다. 이용할 줄 아는 대상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 다음날 자살한 단원고 교감이 떠오른다. 인솔 책임자였는데 탈출해서 그 다음날 아침에 나무에 목매달아 죽었다는 1단 기사를 읽었다.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달라”는 유서가 있었다. 인솔책임자로 자신만 살아 돌아왔다는 자책감, 죄책감이 묻어있었다. 사전에 생각을 조금 더 깊이 했었다면 하는 아쉬움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우리는 누군가에 책임을 덮어씌우는 것에 익숙하고 일상화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토요일도 세월호 촛불이 광화문에 밝혀져 있었다.
“거리에는 사자가 많지요?” 아내는 나에게 농담처럼 던지는 말이다. 너무 조심스럽게 산다는 죠크이지만, 세상은 조심스럽고 살펴서 살아가는 삶이 훨씬 편한 삶이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하면 세상은 더 살만한 기쁨이 넘쳐날지 모른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11호 (2017년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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