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톡=왕진오 기자]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청주 비중리 석조여래삼존상 및 석조여래입상’등 6건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 '(왼쪽부터) 청주 비중리 석조여래삼존상, 석조여래입상'.(사진=문화재청)

‘청주 비중리 석조여래삼존상 및 석조여래입상(淸州 飛中里 石造如來三尊像 및 石造如來立像)’은 지금의 청주시 청원구에 있는 초정약수터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석조여래삼존상은 하나의 돌에 광배와 삼존, 대좌를 모두 환조(丸彫)에 가깝게 표현한, 이른바 일광삼존불(一光三尊佛, 하나의 광배에 삼존불이 표현) 형식이다.

현재 왼쪽(向右) 협시 보살상은 찾을 수 없는 상태이지만, 여래와 협시보살이 하나의 광배를 배경으로 구성된 삼존 형식은 삼국 시대 6세기 중반을 전후한 시기에 크게 유행했다.

특히, 대좌의 양쪽 측면에서 두 마리의 사자가 호위하고 있는 사자좌(獅子座)는 삼국 시대 이른 시기에 유행했던 대좌 형식으로서 더욱 주목된다.

이 여래삼존상은 6세기 중엽 삼국의 경계지역이었던 청주에서 전해오는 가장 귀중한 초기 삼국 시대 불상으로서 그 역사적, 미술사적 의의가 대단하며, 함께 전해오는 석조여래입상 역시 같은 시기에 제작된 삼국 시대 조각으로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 최석정 초상 및 함(崔錫鼎 肖像 및 函)’.(사진=문화재청)

‘최석정 초상 및 함(崔錫鼎 肖像 및 函)’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8차례나 영의정을 지냈던 최석정이 오사모(烏紗帽, 관복을 입을 때 쓰는 모자)에 녹색 관복단령(團領)을 입고 두 손을 소매 속에 모아 잡은 채 교의(交椅)에 앉아 있는 전신좌상이다.

의자에는 표범가죽을 걸쳤고 화문석이 깔린 족좌대(足座臺) 위에 흑피혜(黑皮鞋)를 신은 두 발을 올렸다. 쌍학흉배(雙鶴胸背)에 정1품의 품계를 지닌 관료만이 맬 수 있는 서대(犀帶)를 착용했다.

얼굴 묘사는 선으로 이목구비의 윤곽을 그린 뒤, 선묘에 붙여 미세한 색감을 가미하는 선염법으로 채색했다.

▲ '위부터 신여량 상가교서, 신여량 밀부유서'.(사진=문화재청)

‘신여량 상가교서(申汝樑賞加敎書)’는 1604년에 조선시대 무신이던 신여량이 세운 전공을 평가하고 이에 대한 포상으로 정삼품 당상관인 절충장군(折衝將軍)에서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로 자급(벼슬아치의 위계)을 승진시키면서 내린 상가교서(賞加敎書)이다.

이 상가교서는 이순신과 함께 전투에서 세운 전공을 평가하여 선조가 발급한 교서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신여량 밀부유서(申汝樑密符諭書)’는 행전라우도수군절도사로 부임하는 신여량에게 1605년에 선조가 발급한 밀부유서(密符諭書)이다.

유서란 군사 지휘권을 가진 지방관에게 밀부와 함께 내리는 명령서로, 밀부는 국왕이 좌(左)부와 유서를 함께 발급하면 장수가 소지한 우(右)부와 맞추어 보고 일치되면 명령대로 군사를 움직이는 역할을 맡은 일종의 증빙(證憑)이다. 이 밀부유서는 임진왜란 이후 국왕의 군사명령 방식을 엿볼 수 있는 희귀한 자료이다.

▲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41(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41)'.(사진=문화재청)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41(初雕本 大方廣佛華嚴經 周本 卷41)’은 중국 당나라 승려 실차난타(實叉難陀)가 39품으로 신역(新譯)한 80권본 중 권41이다.

이 경전은 각 장의 행자수가 23행 14자로 재조본(팔만대장경)의 해당 경전의 24행 17자본과는 다르다.

이 경전은 소실된 초조본의 저본계통과 재조본과의 차별성을 밝힐 수 있는 경전이자 해당 권은 현재 유일하게 전하는 희귀한 경전이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예고한 '청주 비중리 석조여래삼존상 및 석조여래입상' 등 6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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