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예술 동반한 ‘문화CSR’로 계승
예술지원 매칭펀드·찾아가는 메세나

[이코노미톡=배만섭 발행인]

Since ‘94 한국메세나협회
‘한국 메세나운동’ 역사
기업·예술 동반한 ‘문화CSR’로 계승
예술지원 매칭펀드·찾아가는 메세나

▲ 찾아가는 병원 음악회인 종근당의 ‘오페라 희망이야기’. <사진=종근당>

한국메세나협회는 지난 1994년에 출범하여 기업이 예술과 손을 맞잡고 시대흐름에 맞는 새로운 문화발전의 활동을 활발히 지속해 왔다. 23년 동안 협회는 메세나활동에 충실한 결과,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이점과 더불어 문화적 품격이 더해져 세계무대에서의 국가와 기업의 가치를 올리고 있다. 이에 본지는 한국의 메세나운동을 구체적인 활동과 함께 시대별로 정리해보았다.

<씨앗>: 대기업 中心 친목결성

기업과 예술의 동반발전이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한 지점은 생각보다 꽤 오래전부터이다. 분단 속에 전쟁과 이후 재건과 경제개발를 거치면서 차츰 우리나라 경제는 선진국 대열 속에 합류코자 하는 노력과 여력을 필요로 하였다.

한국메세나협회는 23년 전에 시작되었지만 메세나 활동은 이미 그 전부터 태동되어 진행되어 왔다.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그동안 단발성 지원과 비공개적이 많았지만 기업별 메세나 정보가 공유되지 못한 시기였다. 하지만 문화예술의 창조력이 기업의 경영활동과 함께 발전하면 그 시너지 효과로 인해 국가 단위의 경쟁력으로 돌아온다는 인식전환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대기업을 중심축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공연·전시 스폰서 지원에서 차츰 예술지원에 직접 참여하는 기업이 늘어갔고, 일부 기업주들로 구성된 소규모 친목단체도 결성되었다.

▲ 김영삼 대통령이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기업인과 예술인들을 청와대 오찬자리에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기업인들 예술지원 활동에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밝혔다. <사진=한국메세나협회>
▲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 설립을 위한 발기인회가 개최되었다.(1994년 2월 28일). <사진=한국메세나협회>
▲ 1994년 4월 18일에 창립총회 행사. <사진=한국메세나협회>

<태동>: 문예후원 조직 필요성 인식

예술후원활동에 재계의 관심이 깊어지면서 공동적인 참여로 조직적인 활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슈가 형성이 되었다.

1980년대 문화체육부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은 기업 메세나운동을 진작시키기 위해 홍보활동과 캠페인을 운영했다. 1985년에는 문예진흥원 내 문예진흥후원협의회가 설립되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부터는 스포츠 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원이 소홀했던 문화예술계에 대한 정책적인 관심이 집중되었다.

이윽고 1993년 김영삼 정부는 ‘신경제 5개년 계획’을 수립·추진하면서 이와 함께 사회 각 부문의 규제 완화를 실시해 그동안 기업들이 음성적으로 유통된 자금을 기업 경쟁력 향상, 근로자 복지, 그리고 문화예술에 투자하도록 당부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와 공감대 형성의 흐름으로 메세나운동의 중요성이 부각되었고, 이를 구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구심체 역할을 담당하는 전문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1993년 12월 김영삼 대통령은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기업인과 예술인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선진국 대열을 위해서는 물질적 풍요를 넘어 경제와 문화의 협동을 위한 기업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은 적응적인 참여의사를 밝혔다.

▲ 1996년 11월 1일. 김영삼 대통령이 협의회 회장단과 회원사 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가졌다.
▲ 김대중 대통령이 메세나 기업인과 문화예술계 대표를 초청한 오찬회 행사(2000년 4월 1일). <사진=한국메세나협회>
▲ 한국메세나협회 초대~2대 회장을 역임한 동아건설 최원석 회장(좌측)과 예술지원 매칭펀드 출범을 주도했던 당시 박영주 제6대 회장. <사진=한국메세나협회>

<출범>: ‘한국기업메세나협회’ 설립

1994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문화예술 지원 전문기구 설립이 추진되었다. 같은 해 2월 18일 이민섭 문화체육부장관의 요청 하에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를 중심으로 한 경제5단체가 협의회 설립에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1994년 2월 28일, 예술 애호 기업인 23명과 문화예술인 6명이 참여한 가칭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 발기인회가 개최되었다. 이 자리에서 대한상공회의소 김상하 회장이 만장일치로 발기인 대표로 선출되었다. 이때부터 ‘메세나’라는 명칭이 정착되었다. 3월 초 법인설립위원회가 구성되고, 1994년 4월 18일 창립총회가 열렸다.

롯데호텔 크리스털볼룸에서 창립회원과 기업인, 문화예술인, 문화체육부장관 및 정부 관계자를 포함하여 200여 명이 참석한 개최된 창립총회에서 최원석 동아건설 회장이 만장일치로 초대회장에 선출되었다. 축하 연회에는 이회창 국무총리, 홍재형 재무부장관, 김우석 건설부장관 등 각료들도 참석했다.

현판식은 1994년 5월 2일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내에서 임시로 이루어졌다. 6월에는 기획운영위원회가 발족되었고, 8월에는 동아생명빌딩에 사무처가 개설되었다.

<초창기>: 시대적 ‘메세나’ 트렌드 홍보

협회 설립 초기 가입한 회원 수는 경제5단체의 협조와 회장단의 지원으로 167개로 적지 않은 편이었다.

계몽 및 홍보가 중요했던 법인 설립 초창기에는 월간 ‘메세나’를 창간(‘94년 8월 1일)해 언론홍보에 역량을 집중했다. 메세나운동의 중요성을 부각코자 여론화 작업으로 사회적인 담론을 형성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늘려나갔다. 이와 병행하여 세미나 주최, 학술사업, 조사연구사업도 실시했다.

이러한 학술 및 조사연구사업으로 90년대 후반부터는 ‘문화기업’, ‘문화마케팅’, ‘문화경영’ 등으로 이어지는 시대적 트렌드를 우리 사회에 선도적으로 제시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해외 메세나 관련 자료집 번역과 보급을 비롯해 예술현장 체험, 기업 메세나 강연 등의 교육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해외에서 열리는 메세나 관련 행사에도 참가해 한국의 메세나활동을 세계에 알리고 본격적인 한국 메세나운동의 출항을 알렸다.

▲ 2005년도 ‘기업과 예술의 만남’ 사업을 통해 첫 결연을 맺은 커플은 현대백화점과 서울팝스오케스트라, 복음보청기와 메이트리 두 커플이었다. (사진 왼쪽부터) 박영주 제6대 회장, 하원만 현대백화점 사장, 하성호 서울팝스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 강신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장상인 메이트리 대표, 이경택 복음보청기 사장. <사진=한국메세나협회>

<저변확대기>: 기업·예술의 만남

‘기업과 예술의 만남’ 사업은 대기업 결연 부문과 중소·중견기업이 참여하는 예술지원 매칭펀드로 나뉜다. ‘기업과 예술의 만남’ 사업은 협회에서 진행하던 민간 캠페인인 ‘1기업 1문화’ 운동을 정부와 협력해 제도적으로 공식화한 것이었다.

▲ 2015년 4월 9일 박삼구 회장 취임식 기자간담회. <사진=왕진오 기자>

‘1기업 1문화’ 운동은 제4대 한국메세나협회장이었던 SK그룹 손길승 회장의 재임시절이었던 2002년 4월 4일 금난새, 송승환, 신영희, 이두식, 최불암 등을 홍보대사로 위촉하면서 공식출범했다.

2003년 7월 박성용 금호그룹 회장이 취임하면서 ‘1사 1문화’ 운동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1기업 1문화’ 운동이 그룹 차원에서 특정 예술 분야를 지원하는 것이었다면, ‘1사 1문화’ 운동은 한 그룹 내에서도 계열사별로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지원하는 것으로 확장된 개념이다.

지금까지도 대기업 결연에 참여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CJ문화재단-화음쳄버오케스트라 등이 초창기 주요 결연멤버들이다.

<저변확대기②>: 예술지원 매칭펀드

▲ 저소득층 미술영재 육성사업인 K옥션의 ‘주니어아티스트’. <사진=케이옥션>

2005년 12월 5일. 당시의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업과 예술의 만남’ 사업이 공식 출범했다. 이날 열린 출범식 및 결연식에서 첫 결연을 맺은 커플은 2커플로 현대백화점-서울팝스오케스트라, 복음보청기-메이트리였다.

다음해에는 15커플이 결연을 맺으면서 본격적인 추진이 시작됐다. 당시 참여했던 주요 대기업은 삼성문화재단, 한화, LG연암문화재단, LG화학 등으로 지금까지도 참여하고 있다.

2007년 ‘예술지원 매칭펀드’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기업과 예술단체 간 일대일 매칭시스템이 구축되기 시작했다. 국고펀드의 참여로 재정이 열악한 중소기업들도 문화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제6대 회장 이건산업 박영주 회장과 김명곤 문화부장관의 바람이 서로 일치하면서 매칭펀드 사업이 태동하게 된 것이다.

영국의 ‘New Partners’ 프로그램을 비롯한 영국의 전반적인 메세나 활동을 벤치마킹해서 설계된 매칭펀드 사업은 이건리빙과 안은미 무용단이 첫 결연을 맺은 것으로 시작해 6억 원 규모로 출발했다. 2007년 한 해만도 27개의 중소기업 커플이 참여했다.

2014년에는 정보지원금이 늘어나 총 20억 원 규모로 증대되었고, 2016년 기준으로 총 매칭펀드 규모는 45억 원이 넘었다. 2016년까지 대기업 결연 부문과 매칭펀드를 모두 합하여 총 513억 원(누적금액)이 지원되었다.

▲ 현대자동차그룹·현대차 정몽구 재단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인 ‘H-온드림 오디션 & 펠로’. <사진=현대자동차>

<도약·확대기>: 문화공헌 사업

기업의 메세나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를 더욱 높이고 활동적인 참여기회를 늘리기 위해서 협회는 ‘찾아가는 메세나’ 사업을 기획·실행했다. 사회적·환경적인 제약으로 문화혜택에 소외된 이들을 위해 직접 찾아가 공연을 펼치는 프로그램으로, 그 시작은 서울 경기여고 2003년 9월 6일에 열린 현악 3중주의 공연이다. 이후, 한국방송공사의 참여로 전국적으로 확대 진행되었다.

국민건강보험, 농협문화복지재단, LG연암문화재단(스쿨콘서트), LG화학, 한국토지공사, 현대자동차그룹, 벽산문화재단의 ‘찾아가는 메세나’ 공연이 연이어 개최되었다.

이후 찾아가는 메세나 이외에 다양한 문화공헌 사업들이 개발되었다. 2008년을 정점으로 ‘찾아가는 메세나’ 활동은 다양하고 새로운 형태의 사업으로 진화되기 시작했다. 초점은 ‘문화예술의 교육’으로 현대자동차의 ‘아트드림 콩쿠르’와 ‘H-온드림 오디션&펠로’, 한화그룹의 ‘한화예술더하기’ 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이다.

이후 찾아가는 메세나 이외에 다양한 문화공헌사업들이 개발되었다. 2008년을 정점으로 문화공헌사업은 다양하고 새로운 형태의 사업으로 진화되기 시작했다. 초점은 ‘방문공연’과 ‘문화예술의 교육’으로 한화그룹의 ‘한화예술더하기’, 한성자동차의 ‘드림그림’, 현대자동차의 ‘아트드림 콩쿠르’와 같은 예술교육 및 영재 지원 사업 뿐 아니라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H-온드림 오디션&펠로’, 프로젝트 등의 사업이 현재 진행중이다. 2016년 현재 문화공헌 사업은 45억원 규모로 14개 기업이 18개의 문화공헌 사업을 진행중이다.

▲ 2009년에 6월에 열린 ‘메세나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 <사진=한국메세나협회>

메세나 정책의 법제화(법률 제12351호)

메세나 활동은 2008년을 정점으로 다양해지고 활발해져 갔지만, 예술지원 사업 지원액은 그 시기부터 점차 감소되어 갔다. 리먼사태에 의한 금융경제위기의 여파였다.

이에 제도적인 개선 사업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시작은 2009년 3월 13일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이 개최한 ‘기업문화예술 투자 환경 조성을 위한 국회 세미나’였다. 세미나를 통해서 이 의원은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법 제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주된 취지는 세제 인센티브를 통한 기업의 예술지원 확대였다.

이윽고 같은 해 6월 국회 공청회가 열렸고, 11월에는 ‘메세나활동의 지원에 관한 법률안(일명 메세나법)’과 ‘조세특례제한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발의되었다. 하지만 미디어법 개정과 종합편성채널 선정 이슈로 상정되지 못하고 묻혔다.

2011년 4월 다시 상정되었으나 계류되었다. 같은 해 5월 한나라당 조윤선 의원이 세액공제율을 낮춰 수정 발의했으나 역시 상정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되었다. 조윤선 의원은 기획재정부와 상임위원회를 일일이 만나 설득하는 열의를 보였으나 관철되지 못했다.

19대 국회 개원 후, 새누리당 길정우 의원이 새로운 법안 명칭인 ‘문화예술후원활동의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세제 인센티브 도입에 관한 구체적인 고용 창출 효과가 예측되는 보고서에 의해 약 670억 원의 정부재정 대체 효과의 기대로 추진이 적극적이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 2013년 6월에 법안이 상정되고, 그해 12월 21일 국회 본회의 제39호 안건으로 가결되었다. 마침내 국회 입법 지원 5년 만에 ‘메세나법’이 최초로 탄생되었다.

최근 시국 동향이 문화예술계에 적지 않게 영향을 받고 있지만 기초예술이라는 비경제 부문이 국가경제의 한 축이 될 문화산업의 근간을 이룬다는 사실을 직시해보면, 한국 문예후원 사업은 대승적인 차원에서 시대정신에 맞게 나날이 발전해 가리라 여겨진다.

▲ 2016년 11월 22일에 열린 제17회 메세나대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단체기념촬영을 가졌다. <사진=한국메세나협회>

Since 1999년, ‘메세나대상’

최초의 메세나대상은 1999년 12월 29일에 열린 ‘제1회 문화예술지원 기업대상 시상식’이다.

메세나대상의 전신은 ‘문화예술지원 기업대상’으로 도입 취지는 척박한 메세나 환경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후원에 참여한 기업에 감사를 표하고 예우하기 위함이었다. 메세나대상은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을 장려하는 한편, 활발한 메세나활동으로 예술 발전에 공헌한 기업의 업적을 기리고 표창하는 국내 유일의 시상제도로 2007년부터는 한국메세나대회로 확대 개편되어 학술심포지엄과 함께 개최되고 있으며, 최고 권위인 대상의 훈격은 대통령표창이다.

제1회 시상식에서는 삼성문화재단이 미술관 설립·운영 및 지원을 통해 시민들의 전시관람 기회 확대에 기여한 공로로 대상을 수상했고, 한국전력공사, 한솔문화재단, 국민은행 등이 각각 공로상, 창의상, 보급상을 받았다.

메세나대상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제17회 메세나상 수상식이 열였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이 '대상'을,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이 메세나인상을, 중외학술복지재단이 문화공헌상을 그리고 미술품 경매사 케이옥션이 창의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 11월22일 서울 소공동 소재 조선호텔 그랜드볼륨에서 2016년 제17회 메세나대상 시상식이 열렸다. 이날 메세나인 상을 수상한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 <사진=왕진오 기자>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11호 (2017년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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