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시사프로 목소리

[이코노미톡]


TV 시사프로 목소리
장성민의 ‘큰바위 얼굴’
DJ 막내비서, 대선 4수 비화 주역

▲ 1994년 10월 아태평화재단 세미나에서 DJ와 카터 전 미국대통령과 함께한 저자(왼쪽에서 세번째).

TV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얼굴과 목소리가 익숙해진 장성민 씨의 정치적 야망을 담은 책이 ‘큰 바위 얼굴’올 나왔다. 저자는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를 4년 가까이 진행하면서 뜨거운 이슈를 주제로 탱크 같은 열정을 쏟아내어 인기를 끌고 주목을 받아왔다. 저자는 탄핵 정국 하에 차기 대선 주자들의 당내 경선이 한창 논의되고 있을 때 “비전을 갖고 행동하는 사람은 기적을 이룬다”는 말로 자신만만한 용맹전진의 각오를 보여준다.

DJ에게 4번째 도전 보고서

장성민 씨는 방송출연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본업과는 다른 일시적 외도였을 뿐이다. 그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대통령 정무비서관과 16대 국회의원을 지낸 경력으로 ‘큰 바위 얼굴’에 도전하고 싶은 큰 꿈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큰 바위 얼굴’이란 미국 사우스다코다주 러시모어 산정에 새겨진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링컨, 루즈벨트 등 미국의 유명 4대 대통령 조각상을 뜻한다.
저자는 이 책 속에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의 핵심 비서역할에 관한 비화를 소개했다.
1992년 DJ는 대선 3선에 실패하여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식음을 전폐한 채 두문불출 했다. 동교동 자택은 그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져 적막강산 지경이었다. 이때 DJ의 마지막 비서로 자임한 장 씨가 “4번째 도전을 준비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해 찾아 갔으니 얼마나 엉뚱한 발상인가.
심지어 DJ마저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하는 수 없어 보고서를 책상에 올려놓고 “나중에라도 한번 읽어 보셨으면…”하고 물러나왔다. 겨우 1시간쯤 지나 DJ가 “내용이나 들어보자”며 전화로 불렀다.
보고서의 요지는 DJ은퇴 시 빈 공간을 메울 인물이 없으니 불가피하게 4번째 도전을 준비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고 드골 대통령 식의 은퇴와 복귀, 카터 대통령 식의 비정치 재단창립 모델을 제시했다.
금방 핵심을 파악한 DJ가 “나더러 하의도(荷衣島)로 가라는 말이냐”고 물었다. 이에 저자가 “당분간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고 대통령 당선자인 YS가 신경 쓰지 않도록 하자면 해외로 나가셔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로부터 38일 만에 실제 DJ는 영국 캠브리지대학서 공부한다는 명분으로 출국함으로써 DJ는 잠시 추억의 민주투사로만 남아 있었다.

▲ 16대 국회에서 한일의원 모임을 주도하는 모습. ▲장쩌민 전 중국국가주석과 함께...

DJ의 ‘준비된 대통령’ 이미지 구축

DJ는 6개월 뒤 1993년 7월 귀국하여 카터 식 재단으로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함으로써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했다. 이 무렵 장성민 비서는 마포 강변 한신코아 오피스텔 싱크탱크에 주력하여 DJ의 ‘준비된 대통령’ 이미지 구축에 나섰다. 종래의 강성 민주투사 이미지에다 ‘나도 부드러운 남자야’를 각색하고 문화계와 접촉을 넓혀 배우도 만나고 개그맨들도 만났다.
또한 청구동 김종필 자민련 총재댁을 방문하여 유신 본당과 손잡고 DJP 연합에도 합의했다. 이로써 DJ가 50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룩함으로써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켰으니 드골 식 은퇴와 복귀의 성공이고 카터재단 식 아태평화재단 창설과 노벨평화상 수상 등 장성민 비서가 제시한 4번째 도전 성공기록 아닌가.
이 같은 공적으로 30대의 장 비서관은 일약 정무비서관으로 발탁됐다. 그러나 그는 미국 백악관의 상황실 역할에 주목하여 국정상황실 신설을 건의하여 초대 실장을 맡았다. 이로써 DJ의 청와대는 큰 실장 김중권 비서실장, 작은 실장 장성민 상황실장 체계로 운영됐다.
그 뒤 장씨는 16대 총선 시 금천구에서 당선되어 전공인 외무통일위에서 활약했지만 사무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사퇴했으니 첫 번째 정치적 실패의 경험이었다. 이때 장 씨는 다시 국내외 여러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하고 많은 저서를 집필하고 방송출연으로 인기를 쌓아 ‘큰 바위 얼굴’을 그리며 정계복귀를 선언한 셈이다.

당돌하고 끈질긴 산촌아이의 삶과 꿈

▲ 제16대 통일외교통상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대정부 질문을 하는 저자.

저자는 전남 고흥군 산골오지에서 5남2녀의 막내로 태어나 물지게 지고 농사일 도우며 자랐다. 타고난 건강한 체질에 목소리가 우렁차 구김살 없이 뛰면서 운동 잘하고 공부도 잘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올라와 김포공항 가까이 셋방을 얻어 자취하면서 공항중학과 강서구의 영일고를 다녔다. 중고교 시절에는 종종 전라도 사투리에 시비가 걸려 격투를 벌였지만 한 번도 지지 않고 늘 이겨냈다. 대학은 정치소망생의 꿈을 실어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오고 대학원 과정도 거쳤다.
그 뒤 연세대 국제대학원, 고대 국제관계연구원, 영국 케임브리지대 국제문제연구소, 미국 듀크대 국제문제연구소 연구과정도 경험하며 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 ‘지도력의 원천’, ‘강대국의 유혹’, ‘전환기 한반도의 딜레마와 선택’, ‘중국의 밀어내기, 미국의 버티기’ 등.
이 같은 경륜에 장성민의 삶과 꿈이 너무나 뚜렷이 드러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국가 누란의 위기상황에서 한반도의 운명을 이끌어 갈 지도자는 어디 있는가”라고 물으면서 낙심천만의 DJ를 준비된 대통령으로 만든 자신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2016.1.15 한샘 발행, 255페이지)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11호 (2017년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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