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노 슈와크 감독, 1980년 미국 작품
크리스토퍼 리브, 제인 세이무어

[DVD로 만나는 명작 영화(28)]


(Somewhere in Time)
시간의 어느 곳
자노 슈와크 감독, 1980년 미국 작품
크리스토퍼 리브, 제인 세이무어


글/ 박윤행 전KBS PD, 파리특파원, 경주대 사진영상학과 교수 역임

작가 리처드 매티슨은 어느 날 오페라하우스에서 7~80년 전에 활동하던 한 여배우의 오래된 사진을 보고, 그 고상한 아름다움에 반해 문득 과거로 돌아가 이 여인과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과거로의 여행-Bid Time Return>이란 책을 쓴다.
시간여행이란 개념은 이미 공상과학 소설의 선구자인 프랑스의 줄 베르느의 <타임머신>에서 시작돼서 주인공이 까마득한 미래를 여행하고 돌아오지만, 현재에서 과거의 한 시점으로 간다는 발상은 당시로서는 신선한 공상이었고, 몇 년 후 <터미네이터>를 필두로 미래에서 현재로, 그리고 다시 과거로 오고가는 S.F영화들이 대거 출현하게 된다.
그러나 비록 오락으로, 상업적으로는 크게 성공한 영화들이 많지만, 이 영화만큼 시간여행을 서정적으로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도 드물 것이다.

▲ 보고 또 보고 ▲“당신이세요?”. <사진=필자캡쳐>

1972년 시카고의 밀휠드대학에서 극작가 지망생인 러처드 콜리어의 연극이 성공리에 끝나고 왁자지껄한 무대 뒤로 한 노부인이 걸어 들어와 리처드의 손에 회중시계 하나를 쥐어주며 말한다. “내게 돌아와”
리처드는 영문을 모른 채 어리둥절한 사이 노부인은 자리를 떠나 그랜드호텔로 돌아가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변주곡을 듣는다.
8년의 세월이 흐른 뒤 똑같은 곡을 듣고 있던 리처드는 집을 나와 여행에 나서 그랜드호텔에 묵기로 한다.
호텔 역사실에서 젊은 미모의 여인의 사진을 보는 순간 한눈에 반한 리처드가 알아보니, 주인공은 1912년 호텔 극장에서 주연을 한 엘리즈 맥케나라는 여배우로, 그가 찾아낸 그녀의 마지막 사진은 바로 그에게 시계를 주었던 노부인이었다.

▲ “오 하나님” ▲“사랑해요” <사진=필자캡쳐>

리처드는 8년 전 사망한 그녀의 유품 속에서 그녀가 몇 번씩 읽었다는 ‘시간여행’이란 책을 발견하고 심령학자인 저자를 찾아가 시간여행이 가능한지 물어본다. 저자는 주변 환경이 필수적으로 과거를 간직하고 있어야하며 현재를 나타내는 물건이 없어야 가능하다고 말해준다.
미모의 여인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리처드는 1912년으로 돌아가 그녀를 만나겠다는 욕망으로 당시의 옷을 구해 입고 “오늘은 1912년 6월 27일이다. 엘리즈는 지금 이 호텔에 있다”하며 호텔방에서 집요하게 자기최면을 시작한다. 거듭된 노력에도 실패하자 호텔 다락방에서 1912년 숙박부를 찾아내고 그 속에서 엘리즈의 이름과 함께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고 확신에 차서 다시 자기최면을 건다 “그래 나는 여기에 왔었어.”
깊이 잠들었던 그는 창밖에서 들려오는 마차소리에 어렴풋이 깨어나고 1912년 6월 27일로 돌아가는데 성공한다.
여기저기 엘리즈를 찾아다니던 그는 호숫가를 산책하던 그녀를 발견하고(관객은 유리창에 비친 그녀를 먼저 보게 된다) 아름다운 테마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따라가서 만난다. “당신이에요?”그녀의 첫 물음이다. “네”
그러나 곧 그녀의 매니저에 의해 대화가 저지되고 식당까지 따라온 리처드는 그녀와 춤을 추면서 “당신을 만나려고 얼마나 멀리서 왔는지 모를 거요” 그러나 그녀는 “우리는 서로 모르잖아요?”하며 거리를 둔다.

▲ 동전 하나 때문에 ▲그리운 님. <사진=필자캡쳐>

장의자에서 잠을 잔 그는 다음날 아침 그녀를 찾아가 기어코 데이트 약속을 받아내고, 모네나 세잔느의 인상파그림에 나올법한 풍경이 연출되는 아름다운 섬을 산책하면서 가까워진다. “언젠가 내 인생을 변화시킬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고 했어요. 난 그를 기다리고 있었죠. 그래서 당신이에요? 하고 말했던 거예요”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녀는 사랑에 빠져든다.
막이 오르고 엘리즈는 리처드를 바라보면서 대본에 없는 엉뚱한 대사를 한다. “이런 감정은 처음이에요. 당신을 몰라봐서 미안해요. 사랑해요” 다시 정신을 차린 듯 “마음속에 그리던 그 사람이 정말로 여기 있다면 그렇게 말했을 거야”하고 얼버무린다.
리처드를 보고 행복한 듯 살짝 미소 짓는 스틸사진은 뒷날 역사실에 걸려 리처드가 발견하게 된다.
지배인 로빈슨은 리처드를 불러내 그녀에게서 떠날 것을 요구하지만 거절하자 왈패들이 그를 폭행하고, 공연이 끝난 후 리처드의 행방을 찾는 엘리즈에게 로빈슨은 그가 떠났다고 말하며, 한 시간 후 덴버로 출발해야한다고 한다. “리처드는 나를 행복하게 해줄 사람이에요. 나는 그를 사랑해요. 반드시 그를 찾겠어요”하고 엘리즈는 말하지만, 텅 빈 리처드의 방을 보고 쓸쓸히 떠난다.

▲ 재회. <사진=필자캡쳐>

다음날 아침 마구간에 갇혀있던 리처드는 정신이 들자 포박을 풀고 호텔로 달려갔지만, 모두들 어제 떠났다는 말에 망연자실 정자에 앉아있을 때 특수렌즈로 나누어진 화면 멀리 엘리즈가 나타나(관객이 먼저 그녀를 발견한다) 리처드를 부르며 달려온다.
“당신을 잃어버린 줄 알았어요” “절대로 절대로 아니에요”
엘리즈는 틀어올린 머리를 풀어 내리고 함께 사랑을 나눈다.
올드패션이란 말에 내 옷이 어때서 그러냐며 입어보이던 리처드는 주머니에서 1979년 동전을 꺼내들었고, 현재의 물건을 가진 그는 “리처드”하고 애절하게 외치는 엘리즈의 외침을 뒤로 과거에서 빠져나와 현실로 돌아온다.
그는 다시 “오늘은 1912년 6월 29일이다. 나는 돌아간다.나는 돌아간다”하고 필사적으로 자기최면을 시도하지만, 더 이상 약발이 먹히지를 않는다.
너무나 비통한 마음으로 그녀의 사진을 바라보고 쓰다듬고 뺨을 대보지만, 다시는 그녀에게 돌아갈 수 없는 깊은 마음의 상처로 그는 식음을 전폐하고 폐인이 된다.
창밖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던 그의 얼굴에 눈물마저 마르고 며칠 후 사람들이 그를 발견하고 응급처치를 하지만, 리처드는 천천히 유체이탈, 손을 내밀고 있는 엘리즈에게 다가가서 모자를 벗고 손을 잡는다.
물론 뜬금없는 황당한 공상의 얘기다. 그렇지만 영화라는게 바로 공상의 세계 아닌가? 너무나 간절히 그리워서 죽는다는, 상사병으로 죽는다는 얘기는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코넬대학 졸업 후 줄리어드에서 전설적인 존 하우스먼에게 연기수업을 받았던 크리스토퍼 리브는 너무나 건장한 체격 때문에 수퍼맨에 발탁되어, 연기랄 것도 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면 되었지만, 이 작품을 맡아 필생의 명연기를 보이고 있고, 여배우 오디션에서 유일하게 애인이 없노라고 말했다는 제인 세이무어는 지적이면서도 신비한 분위기를 잘 살려내 환상적인 로맨티시즘을 구현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자노 슈와크 감독은 리처드가 처음 엘리즈의 사진을 보는 장면을 찍을 때, 사진을 가려두었다가 처음으로 보게 하면서 그의 첫인상을 생생하게 담았다고 하는데, 그가 다가가면서 빛이 사진에 새어드는 장면, 유체 이탈하여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장면 등, 명장면이 가득하고, 존 배리의 구슬프고도 너무나 감미로운 선율은 이 영화를 본 사람에게 “참 아름다운 영화다”하고 기리 탄식하며 잊지 못하게 만든다.
처음 흥행에 실패하고 비평가에게 너무 낭만적이라고 혹평을 받았음에도, 뒤에 케이블 TV방송과 비디오 대여 영순위에 오르고 팬클럽까지 생겨나 이젠 굴지의 클래식이 되었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10호 (2017년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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