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해체론, 회원사 자율의사 원칙
정부·정치권의 죄인역할 부여도 책임

[이코노미톡]

‘최순실 게이트’ 파장
‘관치죄인’ 정치타살
전경련 해체론, 회원사 자율의사 원칙
정부·정치권의 죄인역할 부여도 책임

경제개발시대 ‘한강의 기적’을 창출한 주역이라 자부할 수 있는 전경련이 4대재벌 회원사의 탈퇴로부터 해체수순을 밟고 있는 모습이 처량하고 안타깝다. 겉으로는 ‘자진해체’나 ‘발전적 변신’이라고 설명하겠지만 ‘최순실 게이트 부역자’라는 불명예를 덮어씌운 ‘정치적 타살’의 성격으로 비친다.

▲ 국회에서 열린 ‘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 전경련 해체에 찬성하느냐’ 는 질문에 손을 들어 반대 의사를 표시하던 재벌 총수들 모습. <사진갈무리=국회영상회의록시스템>

官治경제시대 타고난 숙명의 죄인

전경련은 5.16 직후 부정축재자 단죄 분위기 속에 창립되어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추진을 적극 지원하면서도 역대 정부와 정치권의 압력과 비판을 받아 왔다. 이 과정에 법과 제도를 어긴 반칙과 편법 등도 있었지만 국가와 사회를 위해 다양한 공헌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전경련 55년사에 공과(功過)가 겹쳐 있겠지만 순수한 민단단체를 정치적 잣대에 의해 강제 해체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전경련 해체론은 양극화와 불균형 논리에 의해 수시로 제기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어쩔 수 없이 타고난 숙명이나 다름없다.
재벌해체와 전경련 해체론이 제기된 최근의 죄목은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것을 최순실 게이트 부역자라고 규정했지만 아직은 일방적인 혐의에 지나지 않는다.
4대그룹은 재단 출연이 최순실에 대한 부역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정책에 기여하기 위한 행위였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박 대통령이 적극 동참을 요청하기도 했다. 재계 입장에서는 박근혜 정부 정책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검찰, 국정조사, 특검에 계속 불려 다니며 죄인 취급을 받고 있으니 사법적 판단에 앞서 ‘정치벌’로 억울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전경련은 창립 이후 관민합동(官民合同)이란 이름으로 정부주도 경제개발 시책에 적극 참여해 왔으니 요즘 잣대로 보면 ‘관치형 죄인’ 역할이다. 또 ‘정경유착’이란 죄목도 기업 입장에서는 신변안전을 위한 정치 보험금 성격으로 불가피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당시 정부 주도 경제개발이란 철저한 관치경제로 정부가 사업종목과 자금을 배분하고 독려하던 방식이었다.

역대 회장들의 어려운 역할과 시련

전경련 회원사 가운데 상위 4대그룹은 모두 회장직을 맡아 여러 측면의 어려운 역할과 정치적 시련도 경험했었다.
삼성은 이병철(李秉喆) 회장이 전경련 창립회장을 맡았지만 정치권과 ‘불가근(不可近), 불가원(不可遠)’ 방침에 따라 이건희, 이재용 3대에 걸쳐 전경련 회비는 가장 많이 부담할지언정 회장단 회의에도 참석치 않았다.
현대그룹 정주영(鄭周永) 회장은 전경련 장수회장으로 재계총리라는 호칭도 받았지만 끝내 정치권과의 불편한 관계로 정당을 만들고 선거에 참여했다가 실패한 후 YS정권으로부터 압박을 받았다.
LG그룹은 구자경(具滋暻) 회장시절 전경련 회장 감투를 사양해 오다가 떠밀려 맡았다가 단임으로 물러난 후 현 구본무(具本茂) 회장이 철저하게 전경련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SK그룹은 최종현(崔鍾賢)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아 정부와 원만한 관계를 조성했지만 DJ정부 시절 전경련이 재벌빅딜과 무선통신사업자 조정역을 맡아 SK편에 기울지 않았느냐는 혐의를 받았다.
이 때문에 최태원 회장은 후임 회장론이 제기될 때마다 극구 회피하면서 전문 경영인 손길승 회장을 대신 추대했던 것이다.
이처럼 4대그룹이 전경련 회장직을 기피하려는 풍토 속에 회비만 부담한 채 회장단 회의에 얼굴도 내밀지 않는 상황인데도 국정조사 청문회에 불려나가 최순실 부역자라는 지적을 받아야 했으니 얼마나 괴로운 심정일까. 더구나 어느 야당의원이 “전경련 해체에 반대하는 분 손들어 보세요”라고 조롱하듯 질문했으니 유구무언 아니고 무엇인가.
지금 어느 국민에게 물어봐도 이들 4대그룹 총수들이 특정 야당의원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월등히 공헌한 국가 유공자라고 답변할 것이다. 4대그룹 총수들이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직접 반박은 할 수 없었지만 국민들은 정치권의 불량, 저질 질문에 대해 질책하고 싶은 소감이다.

▲경제개발시대 ‘ 한강의 기적’ 을 창출한 주역이라 자부할 수 있는 전경련이 4대재벌 회

해체이건 변신이건 회원사 자율존중

4대 재벌 가운데 LG가 가장 먼저 전경련 탈퇴를 선언하고 삼성과 SK도 탈퇴의사를 밝혔으며 현대차그룹 또한 회비 납부하지 않고 회원활동도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전경련 해체는 시간문제 아니냐고 지적할 수 있다. 이보다 앞서 정치권이 해체론을 제기한 후 한전, 인천공항, 세종문화회관, 가스공사, 석유공사 등 다수 공기업이 탈퇴하고 산은, 기은,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도 탈퇴했다.
여기에다 현 허창수 회장과 이승철 상근부회장도 오는 2월 정기총회 때 사임하겠다고 발표했으니 전경련 해체나 변신을 누가 주도할 수 있느냐는 문제마저 제기된다. 언론에서는 후임 회장으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 등이 거명된다고 보도했지만 과연 어려운 역할을 맡겠다고 나설는지 의문이다.
그렇지만 4대그룹이 탈퇴하고 공기업에 이어 일부 추가 탈퇴사가 나타나도 전경련은 아직 다수 회원사가 남아 있으니 정치적 타살이 아닌 자율적인 의사결정 방식에 의해 해체나 변신이 선택돼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미국의 보수계 싱크탱크 헤리티지(Heritage) 재단 식으로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기업과 개인 기부회원 70만 명의 헤리티지 재단 형으로 가자면 현 전경련 회원과 조직력으로는 너무나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역할을 맡는 영국 BITC(Business in the Community)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온다.
어떤 형태이든 전경련은 2월 정기총회 이후 새 회장단에 의해 새로운 운명을 선택하더라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파수꾼 역할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조언한다.

정치와 경제와의 불편한 운명관계

전경련은 5.16 직후 부정축재 단죄시기에 발족하여 박정희 혁명군을 상대하자면 삼성 이병철 회장뿐이라는 평판 때문에 초대 회장을 맡았다. 그러나 내부 회원사간 이해대립으로 1년 만에 물러나고 정치색이 무난한 중도인물로 경방 김용완(金容完) 회장이 4~5대 및 9~12대 등 6대를 중임하면서 정부와 정치권과의 관계를 무난히 이끌었다.
그 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은 13대부터 5대를 중임하면서 전경련회관을 건립하는 등 재계의 위상을 높였지만 그 뒤 정치권과는 불편한 관계를 면치 못했다. 삼성과 현대에 이어 LG그룹은 회장을 맡아야 한다는 공론에 따라 LG 구자경 회장이 18대(1987~1989) 회장을 맡았지만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단임으로 물러났다. 구자경 회장은 전경련 회장직 사임 후 아예 조기 경영은퇴로 연암축산 농장으로 낙향하고 후임 구본무 회장마저 전경련 회장 추대론이 나올 때마다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구본무 회장은 DJ정부 시절 전경련이 재벌빅딜이란 이름으로 LG반도체를 후발 현대전자로 넘겨주도록 조정한 역할에 반감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LG반도체는 현대전자로 갔다가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하이닉스반도체로 변신하여 오늘의 SK하이닉스로 발전하고 있다.
LG가(家)는 전경련에 앞서 경영자총협회 회장 추대를 기피한 전력이 있다. 경총은 1970년 전경련에서 분리 발족하면서 전남방직 김용주(金龍周) 회장이 창립회장으로 추대되었다가 후임자가 없어 무려 12년이나 중임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제2대 회장으로 LG 구자경 회장을 추대했지만 총회날에 잠적하여 구 회장을 추대했던 코오롱그룹 이동찬(李東燦) 회장이 대신 경총회장을 맡아 15년을 중임해야만 했다.
이동찬 회장 또한 후임을 찾지 못해 고심 끝에 다시 창립회장 가계에 책임을 씌워 김창성(金昌星) 전방회장이 3대 회장으로 5년간 봉사했다. 그러니까 초대 김용주 회장과 3대 김창성 회장 부자가 경총을 17년 이끌었다.
전경련이나 경총 회장 감투를 모두가 사양하는 풍토가 바로 정치와 경제와의 불편하고 민감한 관계임을 말해 준다. 감투 값으로 거액의 회비 물고 대통령 초청 청와대 회동이나 해외 국익외교에 동반하는 모습을 보여 주지만 잘해야 본전(本錢)이라는 비싼 감투라는 의미다.
오늘의 전경련 해체론도 바로 이 같은 정치와 경제관계의 숙명을 말해주지 않느냐고 관측된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10호 (2017년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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