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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풍추우(春風秋雨)
가는 세월 체험

글/金淑(김숙) 편집위원(자유기고가)

세월이 흘러간다 해야 할지, 달려간다 해야 할지… 쏜살같다는 말을 실감한다. 더욱이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보면 빛의 속도라 할만하다. 눈 깜빡할 사이에 반세기가 훌쩍 지나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반세기 위를 덮은 춘풍추우(春風秋雨)가 몇 해 더 있으나 그 세월까지를 손꼽아 셈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지하철 공짜 ‘지공이세요’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어떤 방법으로든 기선을 제압했던 친구를 언니로 대접했던 세월이 있었다. 실제로 어떤 친구는, 출생신고가 늦어졌던 바람에 주민등록증의 나이가 본래 나이보다 적게 기록되어 있는 것이라며 제 나름대로의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동기들끼리 언니라 불리어지는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장난삼아 언니…, 언니… 라고 하면 변방에 벼슬자리라도 하나 꿰찬 듯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곤 하던 친구들이었다.
최근에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만나면 아직까지도 초면이든 구면이든 가리지 않고 나이나 학번, 혹은 12지간 띠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몇 개월 전 일이다. 후배의 지인이었을 뿐 필자와는 일면식도 없었던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셋이 만난 지 겨우 10여분이 지났을까 하는데 그녀가 느닷없이 “지공이세요?”라고 물어왔다. 다짜고짜 지공이라니…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아무리 귀퉁이에 간신히 엉덩이만 붙이고 앉아있다손 치더라도 언어나 문자를 다루는 직업을 갖고 있는 입장에 상대의 말조차 이해할 수 없음이 당혹스러웠다. 하는 수 없이 되물었다. 대답을 들어보니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만 65세가 넘으면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데 거기에 해당되는 가를 묻는 말이라고 했다. 일단 기분이 잡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는 꽤 집요하게 묻고 또 물었다.
“60… 아직 안됐습니다만…”이라고 대답은 했으되 솔직히 불쾌감을 감출 수 없었다.
모르겠다. 만 65세라는 그녀의 눈에 필자가 동갑쯤으로 보여 그런 인사를 건넸다니 그 말이 친근함의 다른 표현이었는지는…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때 화냈던 자신이 조금은 우스워진다. 어쨌거나 그녀를 탓할 자격이 필자에게 없기도 하려니와 개개인의 시각, 느낌, 혹은 말본새까지를 나무라겠다는 것이 월권일 테고, 누군가의 입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말들이 꼭 필자의 마음에 들어야 할 까닭 또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상대에 대한 배려 없는 말로 일단 인격을 잃었다.

▲ '엄마, 내가 왜 좋아' - 김숙 作. 철 없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나이들어 바뀌는 호칭을 어찌 마다할까

나이가 들어갈 때마다 그때그때 맞는 호칭에 익숙해지기까지에는 알게 모르게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맨 처음 아줌마라고 불리어졌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충격의 폭을 줄이기 위해 요즘에는 길을 오갈 때나 혼자 있을 때 할머니, 할머니… 하고 소리 내어 발음해 보기도 한다. 바로 코앞까지 와 있는 할머니라는 호칭에 자연스럽게 적응해보려는 노력인 셈이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여자는) 어린이에서 학생으로 언니에서 아줌마로, 아줌마에서 할머니로 여러 차례 호칭이 바뀐다. 물론 20~30대까지야 별 생각 없이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인다지만 40~50이 넘으면 호칭이 바뀔 때마다 약간의 떨림도 함께 따라온다. 뭐랄까, 무심코 거울을 비쳐보다가 갑자기 눈에 띈 흰머리카락 같다고나 할까? 그게 바로 세월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지공’이라는 말에도 차츰차츰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 앞서 말한 그녀가 그다지 잘못 짚어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이다.
설이 지났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나이가 한 살 더 많아졌다.
어느새 성큼 다가와 있는 지나간 세월의 추억…
추억이라는 이름이 언제부터 얼굴을 내밀었었나…
서로 언니가 돼 보겠다던 친구들이 갑자기 보고 싶어진다. 오뉴월 하룻빛이면 군용담요 몇 트럭을 말리는지 아느냐고, 그 하룻빛을 더 쪼였으니 언니가 당연하지 않느냐고 억지 아닌 억지를 부렸던 친구들… 그 친구들이 무작정 그리워진다.
친구들은 잘 사는지…
여전히 누군가의 언니로 살고 싶은지…
밖에는 제법 굵은 눈발이 휘날리고 있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10호 (2017년 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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