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수필]

농단, 망국, 흉측, 괴변
다사다난(多事多難)

글 / 金淑(김숙) 편집위원(주부, 자유기고가)

다사다난, 일도 많고 어려움도 많다. 국어사전에 수록되어 있는 많은 말 중에, 하물며 긍정적인 의미의 헤아릴 수 없는 말 중에 하필 이 말 밖에 떠올릴 수 없는 건지 좀 시니컬하다.
물론 지금 같이 한 해가 저물어가는 막바지에는 다사다난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기도 하고 누구든 부담 없이 내뱉기도 한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들어 넘기면 그만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최근 나라 안의 급박한 사정을 그저 그러려니, 하고 강 건너 불 보듯 하기에는 너무 터무니없고 무리가 따른다.
처음 얼마간은 나쁜 꿈을 꾼 건 아닐까, 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뒤에는 루머라 여기면서도 다소간 당혹스러웠다. 그러다가 차츰 의혹이 불거졌다. 급기야 의구심은 한계상황을 뛰어 넘었고 설상가상이 점입가경의 국면으로 치 닫았다. 민중들의 궐기는 들불처럼 타올라 도심 곳곳이 촛불의 바다를 이루었다. 출생이후 처음 본 광경이었다.
그들의 농단, 소수의 망국적 행태는 끝 간 데 없었다.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았으나 유감스럽게도 부조리라는 무형의 바이러스는 이미 몸집을 불릴 대로 불려 흉측한 괴물로 변해버린 후였다. 덕지덕지한 삐에로의 분칠이 벗겨질 때마다 우리들은 날벼락을 맞고 기함을 했다.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불신의 늪으로 나가떨어졌다. 꿈에도 바란 적이 없었건만 역병 같은 무기력증이 집집마다 강제택배로 배송 되었다. 마음 편히 음식을 먹을 수도 없고 두 다리를 뻗고 잠을 잘 수도 없게 되었다. 귀중한 무엇인가가 몸속을 빠져나간 듯 가슴 한 복판이 뻥 뚫려 빈 가슴만 자꾸자꾸 쓸어내렸다. 느닷없는 이민을 꿈꾸며 기필코 이 나라를 떠나고야 말겠다는 부끄러운 충동을 억누르고자 아랫입술을 깨물기도 했다.
그런데 주변을 보라, 지금은 분명 보수, 진보를 가를 만큼 한가한 시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먹고 먹히고 물고 물리고... 책임 있는 정치인들은 눈 씻고 보려야 볼 수가 없다. 오직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삼삼오오 패를 짓는 정치꾼들만 난무할 뿐이다. 그들은 여전히 새판(?)짜기에 급급해 하며 까마귀 노는 곳에 유독 저 혼자 백로인 듯 독야청청을 부르짖는다. 결국 그 밥상에 그 나물, 도긴개긴인 것을...
삼척동자도 다 아는 오합지졸임에도 초록은 동 빛인 모양이다. 시쳇말로 호박에 줄을 긋는다 해서 수박 될 리 만무하다. 혹 모르겠다, 약삭빠른 동작으로 교묘히 재주를 부리면 순간적인 착시가 일어 언뜻 수박으로 보일른지는... 그러나 왼 쪽 눈을 한 번만 치켜떠도 [새 수박은 커녕 그 호박이 그 호박]이라는 남루한 천박함을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필자 같은 보잘 것 없는 소시민의 의식 안에는 정치적 식견이란 따로 없다. 그러니 자연, 의식의 편 가르기에 동참했을 까닭이 없다. 스스로가 보수인지 진보인지 굳이 색깔을 논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우파인지 좌파인지도 아예 관심 밖이다. 정치에 대해서는 한낱 당달봉사인데 자연인의 입장에서 보여지는 최근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일컬어 보자는 것이다.
도시속의 자연인은 욕심도 없고 거리낄 것도 없이 뱃속 편하게 아주 잘 살고 있다. 삶이라는 것도 늘상 그날이 그날이어서 여태 별스럽게 놀랄만한 일도 없었고 오늘이 어제와 특별하게 전개되어지지도 않는다. 무사안일과는 차별이 되나, 그저 지금 이 순간까지 제3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별 탈 없이 사는 게 최선이라 여기며 지내오고 있다.
이렇듯 필자는 정치의 “政”자도 모르는 ㅇㅇ에 사는 갑순이로 족하다. 재야에 묻혀있는 풀잎인 셈이다. 풀잎의 철학은 참 간단하다.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몸을 낮추고 그 쪽을 향해 누우면 그만이다. 그러나 한 줄기 바람에 곧 스러지고 말 힘 없는 무지렁이 풀잎에게도 바람은 있다. 간절한 바람이다.
다름 아닌 자기 자리에서 자기 몫을 다 하자는 것이다. 제발 정직하게 살자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이왕 쏟아진 물이다. 외양간을 방치했으니 소도 잃었다.
이제 어쩌겠는가, 같은 물을 더 이상은 쏟지 말아야 하고 외양간에 남아있는 소들을 살뜰히 보살펴야 한다. 지난날에 쏟았든 흘러갔든, 그 물은 옛 물이 되었고 외양간에는 엄연히 다른 소들이 살고 있다.
위기란 기회의 다른 이름이다. 위기에는 본질이 드러나게 마련이고 본질의 위력은 놀라운 정직성에 있다. 정직한 기회, 기회의 정직 둘 중 뭐라든 상관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우리는 저력이 있다. 저력을 바탕으로 한 긍정적 궐기가 반드시 다시 필요하다고 본다. 힘을 합쳐 꿋꿋하게 일어선다면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고 역사 앞에 당당할 수 있다. 덧붙여 정직에 방점을 찍을 수 있는 삶은 가히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늘이 높다. 꽃들은 벌써 낙엽이 되었고 낙엽들도 제 자리를 내어준 곳에 흰 눈이 덮어주기를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
한 해가 간다. 눈이 녹는 자리에 머지않아 초록이 움틀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8호 (2016년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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