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마시고 숨쉴 때마다
화학물질 무섬증
모든 소비재에 화학물질 범벅격

글/전성자 (한국소비자교육원장)

소비자의 황금시대? 불안시대?

“풍요로움”이 이 시대 특색이다. 우리는 옛 임금보다 더 잘 산다고 농을 나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승용차를 탔고, 건달 불(전등)을 켰으며, 커피를 마셨다고 알려진 고종 임금보다 훨씬 더 잘 살고 있다고 키득거린다. 있을 건 다 있고, 없는 것이 없는 것이 우리 시장의 오늘의 특색이다.
겨울에도 수박을 여름에 얼음과자를 먹을 수 있으며 세계 온갖 진미를 다가져다 먹고, 좋은 옷 다 입으며, 좋은 주거에 사는 우리는 분명 고종임금보다 더 누리며 산다.
풍요로우면 풍요로울수록 그만큼 생활 속 위험이 함께 늘고 있다는 점은 또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모순이다. 풍부해질수록 위험, 위해, 피해와 손해도 따라서 늘어난다. 이를 자각을 하는 사람들은 또 그 무서움에 벌벌 떨며 산다.
20세기 최고의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의 균 포비아는 희대의 괴기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그는 말년에는 세균이 무서워 유리 무균실(無菌室)을 만들어 그 안에서 자기 감금한 채 나체로 살았다 한다. 멸균한 음식을 멸균 스푼으로 먹었으며 물건은 멸균한 흰 손수건으로 감싸 들었단다. 머리를 자르지 않아 허리까지 늘어졌으며, 손톱이 15cm가 넘도록 자랐다 한다. 문서는 흰 장갑을 끼고 가져오게 했으며 발에는 사각 크리넥스를 통으로 신고 살았단다. 없이 살기는 가난뱅이나 마찬가지다. 그 사람이 벗고 사나, 이 사람이 벗고 사는 것이나, 그 사람이 못 먹고 사나, 이 사람이 못 먹고 사나 배곯고 헐벗고 살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과장 된 경우 이지만 현대 소비자들은 이런 저런 피해에 대한 무섬증을 가지고 산다.

심각한 소비자 위해

현대 소비자의 무섬증은 세균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다양한 위해들이 소비자를 엄습한다. 전자파가 무서워 산중으로 피난한 사람들, 약품들이 두려워 생 옥수수나 생채식만 하는 사람들, 매연이 두려워 숲속으로 피난 간 사람들, 등등 많은 유(類)의 난민들 생겨나고 있다.
그중에서도 화학물질 공포증은 세계를 엄습하고 있다. 그 유령이 한국 상공에도 휘몰아치고 있다. 옥시 사건이 그랬고 장난감 도장 페인트 사건이 그렇다. 학교의 잔디 운동장의 납 성분, 공기 중에 휘산되는 석면 성분 위해가 우리를 겁먹게 한다. 이젠 물티슈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으며 플라스틱 제품의 가소제 유연제에 대해서도 소비자는 겁먹고 있다.
사실 이런저런 소비자 위해나 피해는 소비자에겐 막대하고 큰 타격을 입히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 위해는 네 가지 특색을 지닌다. 문제가 발생했다하면 광범위하게 터진다. 일부 지역이나 국지적 발생이 아니라 거의 전국 시장에서 나타나게 된다는 광범위성이다. 세계적인 경우도 나타난다. 폭스바겐 디젤게이트 같은 경우는 그런 예다. 이런 위해는 발생했다하면 큰 타격을 주는 치명성이다. 몸이 상하기도 하고 장애를 입기도 하고 목숨을 잃기도 한다.
가장 소비자를 어렵게 하는 것은 원인규명곤란성이다.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는데도 무엇이 어디서 어떻게 발원했는지 누구의 과실인지를 찾아내기란 쉽지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고 소비자 피해로 확정 되어 버리는 억울한 경우도 더러 있다. 그보다 더 억울한 것은 가해자가 밝혀졌어도 법제의 미비로 책임이 면해지는 경우이다. 죄가 되기 위해서는 법으로 규정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법의 테두리를 살짝 벗어났기 때문에 면책이 되어버리는 황당한 경우도 흔하다. 그런 것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원인을 규명해 내지 못하거나 원인이 인위적인 작용에 의해 덮여져 갈 때이다.
터졌다하면 전국적이고, 생명에 위협을 당하게 되며 원인규명이 곤란한 형편에 이른다. 더 비극적인 것은 화학물질사용에서 나타나는 체내잔류특성이다. 중금속성이나 화학물질은 시간이 경과하여 체재 잔류가 장기간 어느 수준을 넘어 섰을 때 나타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체내 그 영향이 후세로 대물림 되는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무화학물질 생활은 불가능한 시대

오늘날 소비자가 사용하는 상품은 크든 작든, 직접으로든 간접적으로든 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환경론자들은 현대의 소비재들은 모두가 화학물질 범벅이라고 주장한다.
건강을 위해서 먹는 약도 거의 대부분은 화학물질이다. 식품도 먹기 좋게, 보기 좋게, 보관하기 좋게, 조리하기 좋게 하기 위해서는 화학물질이 필수로 쓰인다. 맛내고, 향내고, 모양내고, 색 내는 원료들이 대부분 화학물질이다. 그중 식물 추출물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 화학물질인 경우가 많다.
소위 말 하는 고급품이나 명품일수록 화학물질의 마술이 포함된 상품들이다. 상품들을 가볍고, 부드럽고, 얇고, 작게 만드는 데는 그런 물질들의 작용이 필수다. 무화학물질 생활(케미 프리 라이프)란 상정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호흡하는 공기인들 무오염은 없다.
많은 사람들은 화학물질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한 순간도 화학물질을 떠난 삶을 살 수 없는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없인 못 살겠는데, 쓰자니 두려움증이 엄습해 오는 것이다. 신경증에 걸릴 정도로 두려움에 떨며 산다.
소비자들이 이런 화학물질 무섬증에 걸린 것은 당국자들이 사건이 터졌을 때 보여준 무책임과 무원칙에 기인한 바도 크다. 일부 가해 기업들은 법조문의 미완과 미비로 오리발 내밀기의 틈을 터준데서 배짱 장사가 가능해 졌다. 함께, 기업들이 잘 못이 없다는 뻔뻔한 태도에 강하게 브레이크를 걸지 못하는 소비자 행동에도 문제는 있다.
하지만, 집단소송제나, 제조물책임법, 징벌적벌과금 제도가 미비 되어 있어 기업들이 소비자의 힘을 겁내하지 않게 된 점이 제일의 원인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인식이 바로 괴야 국민이 무섬증에서 잠시라도 해방 될 수 있을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 경제풍월 제208호 (2016년 12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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